1/ 마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적이고 규칙적인 일은 어려운 시기를 버틸 힘을 준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가난과 고통도 배가된다.
2/ 스물 여덟이란 이른 나이에 프로축구에서 은퇴하고 생활이 어려워졌지만 그 힘든 상황에서도 내겐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생활 리듬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다. 생활이 불규칙해지면 생각도 흐트러진다.
3/ 청소하는 시간은 나에게 사색의 시간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지난 일들을 돌아본다. 마치 산책과도 같고 때론 참선과도 같다.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물결치던 마음은 고요히 정돈되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몰랐던 질문의 해답들이 우물처럼 차오른다.
4/ 집이 잡다한 것들로 채워지는 순간 시간과 열정을 허투루 쓸 확률도 높아진다.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소유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무엇을 소유한다’라고. 하지만 그 소유물에 쏟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도리어 뭔가를 자꾸 잃고 있는 것이다.
5/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만 파악할 수 있다면 그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이라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된다.
6/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의 문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선택, 그런 건 내 삶에는 자리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좋은 것이 진짜 좋은 것이다.
7/ 돈에 내 인생을 다 빼앗기지 말고 진짜 내 인생을 누릴 시간도 벌어야 한다. 그 시간에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공차기이면 그 시간에 공을 차면 된다.
8/ 교육이라는 말에는 ‘가르치다’를 넘어 ‘기르다’란 뜻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가르치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선수로,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중시한 것은 축구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이다. 축구를 잘 하려면 운동능력 하나로는 어림없다. 운동능력이라는 재능을 뒷받침해 줄 ‘성실한 태도’와 ‘겸손한 자세’가 겸비되어야 한다.
9/ 아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해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만 생각하면 불안함과 초조함이 차오를 틈이 없다. 욕심이 차면 그 틈새로 따라 붙는 것이 불안과 초조이다. “네가 행복하면 됐다.” 이 마음이면 충분한 것이다.
10/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열망하고, 그걸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중요한 건 여기에 있다. 그 마음 안에 있다.
1/ 제대로 된 투자자는 단순히 돈을 버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입증될 때 진정한 희열을 느낀다. 투자자란 “생업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사람”이다.
2/ 분석가는 생각하고, 투자자는 운영하는 법이다.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식투자에서도 초현실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머리가 아래에 있고 다리가 위에 있더라도 피카소의 그림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으며 고가에 거래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잘못된 정보를 무시하고 세인트 모리츠 주식을 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보 때문에 샀던 것이다.
3/ 현재의 주가는 이미 과거의 일이지만, 일반적인 정보는 경우에 따라 미래의 주가가 될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정보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종종 ‘망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4/ 70년에 이르는 나의 주식인생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돈을 번 것은 겨우 네 번 밖에 없다. 그중 두 번은 정보가 가리키는 대로, 나머지 두 번은 정보와는 정반대로 투자함으로써 얻은 결과였다. 물론 내부정보를 통해 돈을 잃은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5/ 위기를 견뎌낼 담력과 인내심이 부족한 투자자는 나중에 행운의 여신이 손을 내밀어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
6/ 아무리 예리한 감각과 합리적인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너무 과도하게 투자하거나 일시적이나마 정반대의 흐름을 견뎌낼 수 없으면, 모든 것을 일순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다.
7/ 직관이란 상상력과 결합한 잠재의식적인 논리나 다름없다.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이에 못지않게 융통성도 중요한데, 왜냐하면 주식투자자는 일단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그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8/ 융통성이 가장 좋은 특성이라면, 완고함과 우유부단함은 가장 나쁜 특성이다. 이런 특성에 얽매이는 투자자는 큰 돈을 날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9/ 잘못된 정보는 올바른 정보의 잘못된 해석보다 덜 위험하다. 잘못된 정보를 가진 투자자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따져보기 마련이다. 잘못된 정보의 잘못된 해석은 도리어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10/ 정보에는 늘 귀를 열어놓고 있어야 하지만, 매일매일의 주식동향을 살피는 것은 오히려 생각에 방해가 된다. 냉철한 투자자들도 그로 인해 초조해질 수 있다.
11/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예상할 수 없을 경우 적어도 과거의 사건들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험을 늘려주고 장차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12/ 투자자들에게는 생각 없이 뭔가를 감행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더 유용하다.
13/ 투자자는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하고, 냉정하고 심지어는 냉소적이어야 하며, 약간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당신들은 모두 엉터리고 나만 제대로 보고 있는 거야’라는 식의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증권시장은 심술쟁이처럼 때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14/ 누군가 나에게 투자의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homo ludens’로 태어나서 놀면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바, 놀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15/ 뚜렷한 주관을 갖고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람은 증권거래소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결단력이 없는 투자자들에게 주가는 항상 높거나 너무 높으며, 또한 주식을 사기에는 시기가 항상 너무 늦거나 아직 너무 이르다.
16/ 생각, 논증, 혹은 동기부여가 없는 투자자는 룰렛게임을 하는 사람과 같다. 그런 사람은 단지 도박꾼일 뿐이다.
17/ 주식을 살 때는 낭만적이어야 하고, 주식을 팔 때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에는 그것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려야 한다.
¶ 출처: 앙드레 코스톨라니, ⟪돈이란 무엇인가 –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1,000가지 돈을 다루는 방법⟫ (구매하기)
책: 앙드레 코스톨라니, ⟪돈이란 무엇인가 –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1,000가지 돈을 다루는 방법⟫ (2016)
1/ 글이라는 건 문장이 이루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나의 완벽한 문장, 또 하나의 완벽한 문장, 또 하나의 완벽한 문장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글이 되는 것이다. 그중에 한 문장이라도 불량품이 있다면 부실 건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2/ 작가란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낯설게 하기, 글쓰기의 핵. 설명만으론 가닿기 어려운 이 지점은 때로 좋은 글 한편으로 정확하게 가늠된다.
3/ 글쓰기는 용기와 관련된 행위다. 눈부신 한 편의 글 안에 전투의 상흔이 이곳저곳 깊게 배어 있는 까닭이다. 견고한 질서 완고한 관습 치밀한 통제를 부수고 깨뜨리고 균열을 내는 것, 글쓰기란 그런 것이다.
4/ 글을 쓰게 하는 본연의 힘은 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느냐, 그것도 얼마나 절실하게, 얼마나 혹독하게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5/ 제목과 첫 문장을 섹시하게 써야 한다. 독자들이 안 읽어보고는 못 배기게끔 하는 것이다.
6/ 언제나 어디서나,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손을 벼리어두어야 한다. 마음에 있는 이야기, 너에게 들은 이야기, 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오래전 죽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 오지 않은 세상에서 보내는 전언, 동네마다 서 있는 느티나무가 서리서리 품고 있는 그 이야기는 불현듯 느닷없이 나에게 온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모든 날 모든 순간 푸르게 날을 갈아두어야 한다.
7/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나는 종종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 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곳이 도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는다.
8/ 그런 시기가 있다. 어떻게든 그 시절, 그 사건을 혹은 그 기억을 복기하고 반추하고 해석해내 스스로 이해하고 납득하고 정리해야 다음 단계의 삶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므로 글방러들은 함께 글을 읽고 섬세하게 공분하고 가열차게 지지하고 적확하게 비평하는 데 맹렬하게 몰두했다, 지치지도 않고. (…) 누구도 이들에게 어떤 글을 쓰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때가 되면 불현듯 눈을 든다, 아득하고 광활한 세계, 미세하고 섬약한 생명들을 향해. 그리고 홀리듯 나아가고 다가간다. 이야기는 겹치고 흐르고 관통하고 당기고 밀며 이 시대의 풍경을 오롯이 드러낼 것이다.
9/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곧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경험을 몸에서 떼어내 세상 속으로 보내고 그 풍경을 곰곰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애증과 수치와 모욕과 공포와 분노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것으로 다룰 줄 알게 되기까지는 스스로를 ‘견디는’ 혹독한 시간과 스스로를 ‘넘어서는’ 고단한 수련이 필요하다. (…) 글이 혹은 세상이 아름다우면서 아플 수 있고 아픈 것이 나쁜 것은 아니며, 우리가 서로에게 낙하하는 것은 부서지지 않기 위함임을 보여준다.
10/ 좋은 글의 요건. 첫째,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솔직해야 한다. 셋째, 마음이 기울거나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넷째, 단순하고 담백한 문장을 쓴다.
¶ 출처: 어딘(김현아), ⟪활활발발 –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 위고 (2021) (구매하러 가기)
1/ 개인투자자 집단은 정보의 비대칭성과 가격견인력의 부족, 비합리적 확증 편향, 고빈도 매매행태로 투자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2/ 개인투자자가 주식 투자에 실패하게 되는 과정은 세 단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개인투자자는 ‘초심자의 행운’을 통해 금융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개인투자자는 본격적으로 자본을 투입하고 규모를 늘리지만, 과신 편향과 확증 편향에 빠진다. ➔ 세 번째 단계에서는 투자종목의 실적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만 투자자는 몰입상승 편향에 빠진 채 ‘물타기’ 기법을 써서 손실규모를 키운다.
3/ 첫 단계에서 개인투자자는 초보일수록 스스로 ‘잘 모른다’라는 무지를 인정함에 자연스럽게 위험을 회피하며, 비교적 확실한 투자처에서 입수한 정보만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한다. 대박을 바라거나 허황한 꿈을 꾸지도 않는다. 대다수 개인투자자는 장이 좋을 때, 주가가 오를 확률이 높은 시기에 입문한다.
4/ 두 번째 단계에서 과신 편향은 대다수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지식에 대해서는 실제 그런 것보다 높게 평가하고, 위험과 악재가 닥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실제 그런 것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태와 연관된다. 주위에서 아무리 숱한 투자실패사례를 봤음에도 ‘나는 가능하다,’ 내지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5/ 확증 편향에 빠진 개인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한 종목 혹은 전체 시장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악재의 영향을 최소화해 평가한다. 투자는 성공할 것이란 믿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자신의 믿음을 거스르는 정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객관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6/ 몰입상승 편향이란, “어떤 판단이나 의사결정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된 후에도 이를 취소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는 현상”이다(이른바, ‘매몰비용 효과’). ‘물타기’ 매매기법은 매수한 주가보다 낮은 금액에서 주식을 추가 매수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개별 종목에 투입한 자금의 규모가 커질수록 손실의 위험도 따라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증가된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판단하여 자금을 더 투입하게 되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7/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란 이익에 대한 실현을 손실에 대한 처분보다 선호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손실을 내고 있는 종목보다 이익을 안겨주는 종목에 대한 실현을 더 빨리 하는 개인투자자의 행태를 설명한다.
8/ 주가의 과거 추이를 참고한 개인투자자가 가격이 오른 주식은 곧 떨어지게 될 것이란 두려움을, 반대로 내린 주식은 곧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성향이 있다(이른바, ‘평균회귀mean reversion’). 이 때문에, 상승추세의 시장에서는 주가가 곧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수익을 빠르게 실현하여 극대화하지 못하고, 하락장의 경우 떨어진 주식도 곧 오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손실 확정의 시기를 지연하여 손실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9/ 금융시장은 아무리 고수라도 ‘한 방’에 망할 수 있는 세계다. 10번 거래를 해서 7번 수익을 봐도, 세 번의 거래에서 7번의 매매를 통해 얻은 수익 이상의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손실확정력의 부족이다. 손실 확정이란, 진입한 주식 혹은 파생상품이 음의 수익률을 보일 때, 청산거래를 통해 남은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투자에 입문한 이라면 늘 명심해야 할 투자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꼽힌다. 하지만 ‘승률이 높은’ 개인투자자일수록, 손실확정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투자자일수록, ‘자신의 예상대로 회복 될 것이다’는 믿음으로 손절을 꺼린다는 것이다.
10/ 개인 전업투자자들은 금융시장에서 개인투자자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부분적으로나마 간파(partially penetrate)’한다. 이들은 개인투자자가 성공하기 힘든 심리적 이유와 금융시장에서 정보의 격차, 작전세력, 공매도·세금 등 제도적 측면에 대해서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적극적으로 맞서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다른 경쟁자를 ‘이겨’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에 관해 골몰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점점 더 많은 수의 개인투자자가 금융시장에 유입되고, 마침내 퇴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 출처: 김수현,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 서울 매매방 개인 전업투자자의 꿈과 금융시장 간파⟩, 서울대학교 인류학 석사학위논문, 2019. (책 구매하기)
1/ 변화가 누적되고 서로 영향받으며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숱하게 목격하며, 세상에는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변화의 방향이 합의되는 메커니즘이 있음을 납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운명론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선호하고,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2/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게 답이 아니다. 잘못된 방향이면 열심히 소진된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충실히 해야 한다. 생각을 먼저 하면 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까. ‘Just do it’이 아니라 ‘Think first’가 되어야 한다.
3/ 모든 것이 나우 데이터now data로 기록되는 시대이다. 이 투명한 시대에는 의사결정 과정과 근거, 나아가 우리 삶 또한 투명해야 한다. 투명성의 가장 큰 이슈는 단계별 충실함이다. 이제는 모든 단계가 좋아야 하고, 과정이 중요해진다. 열심히 해야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4/ 당신의 소비는 의미가 된다. 거꾸로 브랜드들은 지금부터 의미를 팔게 될 것이다. 콘텐츠 또한 메시지가 된다.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또한 메시지다. 네트워크가 메시지가 된다면 함부로 관계 맺을 수 없다. 내가 누구를 팔로우하고 있느냐도 누군가에게는 판단의 근거가 될 테니까.
5/ 이제는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고 성장의 기록을 채록하는 것이 곧 나의 프로파일이 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직접 해야 한다. 둘째,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기록은 곧 공감이고, 의도의 진정성을 따지는 ‘근본’이다. 이제 우리는 근원적으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
6/ 진정성authenticity의 어원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이다. 결국 진정성 있는 행동이란 내가 의도하고, 내가 행한 것이다. 업의 관점에서는 ‘주체성’과 ‘전문성’이란 덕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면, 우리는 신뢰를 얻는다.
7/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없으니 좁힐 필요는 있다. 수많은 선택지 중 나의 본진을 설정하고, 먼저 시작함으로써 ‘근본’이 되는 것이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걸 해야지, 나오는 걸 하는 순간 카피캣이 된다.
8/ 발견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해야 하고, 오래 해야 한다. 일관성consistency이 중요하다. 지향점이 한결 같아야 하므로 그걸 설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원을 그리고, 그 원에 내가 하는 활동을 정합시키는 작업을 하라는 것이다.
9/ 내 행동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완결되어야 하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는 맥락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게 앞으로의 미션이자 비전이 될 것이다. 루이비통은 160년, 파타고니아는 40년 걸렸다.
10/ 생각이 공감을 얻으려면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의 철학을 어떤 상징과 스토리에 담아낼지 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나의 의지를 이해하는 사람, 내 고민의 가치를 알아줄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물건이 아닌 상징을 팔고 이야기를 파는 것이다.
11/ 대행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해야 한다. 생활근육이 성장의 지표이다. 성장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의 훈장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현행화를 꾸준히 해야 한다.
12/ 앞으로의 시대는 생각 없는 근면이 아닌, 궁리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냥 하지 말라’는 이유이다. 근본 있고 애호와 전문성 갖추며, 그런 자신을 브랜딩 할 수 있는 개인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깊게 하면 오래 하게 되고 자연스레 역사가 생긴다. 그러면 믿고 지지해 줄 팬덤이 생긴다.
“이 책이 기업 스토리를 가장한 성공 신화나 위인전이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에필로그에 적힌 장병규 의장의 말이다. 독자로서 나의 바람도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서술은 정말이지 적나라하다.
한 기업의 10년사를 이렇게 솔직하게 담아낸 책은 처음 봤다. 임직원의 비판, 불평, 불만, 때로는 비난과 비아냥, 심지어 퇴사하는 이들의 마지막 호소는 물론이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게시된 글까지 실려 있다. 일부 가감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읽을 때는 진땀이 났다.
반복되는 사업의 실패 속에서 경영진과 임직원은 상처를 주고 받았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자금줄이 말라 임금 2개월분 정도만 남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장병규 의장과 크래프톤의 경영진은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의견을 받아 감정이 상하고 욕지거리가 나오더라도 어떻게든 응답을 했다.
소통에 관한 장병규 의장의 메시지를 아래에 옮겨본다:
오랜 세월 경영을 해보니 결국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던 것 같다. (…) 경영자의 소통이란 결국 이기심과의 싸움이다. 이기심과의 끊임없는, 너무나도 지루한 싸움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절대 없어지지 않으며, 성장하는 회사일수록 심지어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일수록 이기심이 가득할 것이다. (…) 경영자가 소통에 실패하거나 게을러지면 너와 나를 가르는 행위가 조금씩 시작된다. 편을 가르는 사내 정치가 시작되며, 사일로 현상이 본격화된다. (…) 소통 과정에서 경영자는 인간적 상처도 많이 받을 것이다. (…) 절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버려서는 안 된다. 경영은 본질적으로 사람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사실상 멋진 경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장병규의 메시지 #4 소통에 대하여
책: 이기문, 크래프톤 웨이, 김영사, 2021.
크래프톤의 전신 블루홀 창업 초반의 설렘은 잠깐. 이어지는 기나긴 고난의 시간들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그 고통이 생생히 전해졌다. 배틀그라운드의 초대박 성공이라는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힘들었다. 블루홀 10년사의 클라이막스라 할 배틀그라운드 기획 이야기는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야 등장한다.
공동창업자이자 투자자인 장병규 의장은 블루홀 창업 전에는 게임 제작에 관하여 잘 알지 못했다. 제작팀을 믿고 창업했고, ‘경영과 제작의 분리’라는 원칙을 지켰다. 단 하나의 게임을 만드는데 3년, 300억을 썼지만 부족했다. 4년, 400억을 써서 출시했지만 기대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작을 맡았던 공동 창업자 4명 중 3명이 회사를 떠난다.
처음부터 글로벌을 겨냥했다. 북미 시장을 두드렸지만 실패한다. 중국 시장에서도 진출해보지만 실패한다. 게임 시장이 PC에서 모바일로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목도하고 모바일 게임 제작팀을 중국 현지로 보내서 개발하는 모험을 감행하지만 역시 실패한다.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정말 징하게 실패한다.
수많은 도전은 대부분 실패한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어떻게 실패하느냐도 중요하다. 사업적 성공에 실패하더라도 구성원의 성장은 이뤄야 한다. 사업은 실패해도 조직이 혹은 개인이 실패하게 두어선 안 된다. 조직은 경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장병규의 메시지 #6 도전에 대하여
블루홀 2.0과 배틀그라운드
2012년 겨울, 전체 직원의 20%를 내보내는 대규모 인원감축을 한다. 2013년 2월 강남에서 판교로 사옥을 이전한다. 임대료를 아낀다. 2013년 여름, 장병규 의장은 번아웃을 토로하며 회사 매각을 고민하지만, 김강석 전 대표가 만류한다. 김강석 전 대표는 차기작 출시 전까지 버틸 방법을 구상한다. “끝까지 하기 위한 지혜로운 실행들”(장병규 의장)을 모색한다.
전략을 수정한다. 단 하나의 명작에 회사의 명운을 걸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넓힌다. 군소 게임 제작사(스튜디오)를 인수합병하여 연합군을 꾸린다. 이른바 ‘블루홀 2.0’이다. 그리고 2014년 11월, 연합군에 합류한 지노게임즈의 김창한 PD(현 크래프톤 대표)가 결국 일을 낸다. 2015년 11월, 김창한 PD는 지금의 배틀그라운드 게임의 기획서를 제안한다.
제안을 받은 경영진은 이 기획이 말이 된다고 느끼면서도 말이 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경영과 제작의 분리’라는 원칙은 숱한 실패 속에서 이미 폐기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업그레이드 되었다. 경영은 제작 리더십을 존중하되 사전에 협의한 마일스톤으로 견제한다. 실제로 이 제작 관리 프로세스를 거치며 게임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영진을 향해 “지금 이 바람이 느껴지지 않느냐”며 “지금은 완벽함보다 속도가 더 중요한 때”라며 장문의 이메일을 쓴 김창한 PD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블루홀에 합류하기 전까지 포함하면 김창한 PD 역시 17년 간 3개의 게임을 만들었지만 모두 ROI(투자 대비 수익)을 달성하지 못했다. 가혹한 말이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경영과 제작은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로, 같이 살길을 도모해야 한다. 게임 출시에 실패한 개발자는 죄인이 아니고, 게임회사 경영인은 악마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업을 위해 그저 제 일에 충실할 뿐이다. 블루홀에서 게임 개발을 하는 일은 중단되는 게임을 계속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개발 중단은 상처가 아니라 다음 성공을 위한 훈련 과정일 분이다. 실수한 순간에 그대로 멈추면 실패이지만, 딛고 일어서면 성공이 된다.
⟨경영인을 이해하기⟩
배틀그라운드는 전대미문의 대흥행을 거두며 회사를 살려냈고, 크래프톤은 코스피 상장을 앞두고 있다(2021. 8월 예정). 그래서 이 스토리는 성공으로 끝난 것일까. 배틀그라운드는 그토록 바라던 “10년 동안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걸까. 글쎄, “그 미래가 어디인지,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이야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크래프톤의 상장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장병규 의장과 공동창업자들, 투자자들 그리고 임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부를 얻게 될 것인지를 이야기 한다. 억 단위 숫자가 언급된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책을 읽고 나면 지금 크래프톤 상장이라는 사건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장병규 의장, 김강석 전 대표, 김창한 대표가 직접 쓴 이메일과 그들이 참여한 회의록 일부가 (약간의 각색을 거쳐) 그대로 실려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어려운 상황일수록 소통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성공은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과거 제 프로젝트에서 결여된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봤어요. 개발자는 먼저 로망을 가지고, 그다음 도전과 혁신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도전과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김창한 대표
비전을 향하는 성장
성공이냐 실패냐. 세상 사람들을 결과에 관심이 많다. 결과는 물론 중요하다. 다음 도전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성공이란 결과에 머무르면? 그 성공은 더는 성공이 아니다. 선물처럼 찾아온 잠깐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반복되는 실패에 낙담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의 길을 걸으려면 함께 하는 꿈, 즉 비전을 중심으로 좋은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블루홀에서 크래프톤으로. 10년의 시간 동안 비전의 변경(MMORPG의 명가 → 게임 제작의 명가)은 있었지만, 방향을 잃지는 않았다. 한결같이 “비전을 향하는 성장”을 추구했다. 성공이란 결과는 하늘의 일임을 알았지만, 사람의 일, 조직의 일을 최선으로 해내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고민했다.
김강석 전 대표는 사내 소통 행사에서 “앞으로 5년 후 블루홀이 어떤 회사로 있기를 기대하고 예상하나요?”라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출시한 게임의 흥행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소망이 있다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이 한 문단에 기업 경영의 정수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경영진과 제작진이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막힘없이 토론하고 거침없이 비판하는, 그러나 합의된 결론을 향해 한마음으로 달리는 회사. 제작의 리더십과 실무진이 신뢰와 존중으로 팀을 이루어, 때로는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잡는 프로젝트를, 때로는 세상에 쉽게 나오지 않을 독특한 아이디어를 과감히 프로젝트로 만드는 회사. 실패한 팀에 손가락질하지 않고, 성공한 팀이 그렇지 않은 팀을 무시하지 않는, 성공과 실패 모두에 겸허하게 열려 있는 회사.
김강석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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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회장/CEO 로버트 아이거(Robert Allen Iger, ‘밥 아이거’)의 자서전 ⟪디즈니만이 하는 것⟫(The Ride of a Lifetime)을 읽었다.
방송국 말단 제작 보조로 시작하여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제6대 CEO가 된 저자의 입지전적 이력과 한역 제목(“디즈니만이 하는 것”)이 주는 뉘앙스 때문에 이 책을 든 나는 마치 처세와 출세의 비급(祕笈)을 손에 넣은 듯 흡족했다.
그런 속물적 선입견을 갖고 책을 읽다가 아래 문장을 만났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인생 책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탁월함과 공정함은 서로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 (Excellence and fairness don’t have to be mutually exclusive.)
⟨1. 바닥에서 시작하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제품과 사람 둘 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제품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과 (제품을 완벽하게 만든답시고) 조직 내에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있고, 마땅히 분리되어야 한다. 밥 아이거가 주는 첫 번째 리더십 교훈이다.
그렇다. 이 책은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밥 아이거는 진정한 리더십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말한다(낙관주의, 용기, 명확한 초점, 결단력, 호기심, 공정성, 사려 깊음, 진정성, 완벽주의, 고결함). 아쉽지만 우리가 이 추상화 된 원칙을 모두 암기한다고 해도 밥 아이거의 ‘경험’과 ‘직관’을 훔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밥 아이거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읽었다. 이 솔직한 상상은 주로 밥 아이거와 나의 차이점, 나의 부족함을 확인하면서 끝났다. 천하의 밥 아이거와 나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었으니 자괴감이 들진 않았다. 외려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밥 아이거가 45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회복력, 균형감각 그리고 정치력을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회복력
밥 아이거에게는 유독 결정적 순간이 많다. 그 순간들마다 밥 아이거가 견지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 있으니, 바로 “하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I didn’t quit, though.)이다. 퇴사와 이직, 창업도 물론 좋은 옵션이다. 하지만, 명심하라. 기회를 얻으려면 게임을 그만둬서는 안 된다.
밥 아이거는 자신을 미칠 지경으로 몰아붙이는 상사를 만나도 “그의 좋은 면에 대해서는 동기를 부여받고, 나쁜 면에 대해서는 사적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상사의 변덕스러운 기분에 휘둘리는 대신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이 몸담은 직장의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밥 아이거의 ‘회복력’(resilience)은 ABC가 캐피털시티즈커뮤니케이션즈(Capital Cities Communications, ‘캡시티즈’)에 매각된 후에도 빛을 발한다. 방송을 모르는 촌스러운 놈들이 회사를 망친다며 사람들이 회사를 떠날 때도 ABC에 남기로 결정한다. 새로운 상사들을 만났고, 그들의 장점을 흡수한다.
밥 아이거가 캡시티즈/ABC의 사장 겸 COO로 승진한 직후, 캡시티즈/ABC가 디즈니에 매각되어 회사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밥 아이거가 회사를 떠났다면, 다른 더 큰 성취를 이뤘을지는 몰라도 디즈니의 CEO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밥 아이거는 조직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조직 내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이런 밥 아이거가 중시하는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을 소개한다. 자신의 상사이자 디즈니의 2인자였던 마이클 오비츠(Michael Ovitz)에 대하여 평한 부분이다:
그[마이클 오비츠]는 체질적으로 조직생활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나쁜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오판으로 자신과 맞지 않는 조직에 들어온 것뿐이었다. (…) 오비츠는 거대한 상장기업의 조직문화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4. 디즈니에 들어가다⟩
밥 아이거는 같은 회사에서 무려 45년을 일했다. 그 사이 첫 직장이었던 ABC가 캡시티즈에 인수되고, 다시 캡시티즈가 디즈니에 인수되었을 뿐이다. 회사를 옮기지 않는 밥 아이거의 성향(?)은 어쩌면 성장 과정의 영향일 수도 있다. 밥 아이거는 아버지의 잦은 이직과 실직을 봤고, 그런 아버지 대신 일찍부터 가장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퇴사와 이직(창업)이 나쁜게 아니다. 자신과 맞는 조직에 들어갈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커리어 옵션이다. 다만,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조직의 문화를 나에게 맞출 수는 없다. 내가 맞춰야 하는 부분이 더 크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결정을 할 때,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Bob Iger, CEO and chairman of The Walt Disney Co., and Mickey Mouse rang the opening bell at the New York Stock Exchange in November 2017. Iger’s new book is an account of what he has learned running Disney.
균형감각
밥 아이거는 평생을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했다. 그래서 조직에 창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동시에 작품의 재정적 성과를 챙기는 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밥 아이거는 이를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경영을 한답시고 창작 과정에 무분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작품이 망쳐질 때까지 방치해서도 안 된다. 이 절묘한 균형의 중요성이 책 곳곳에서 강조된다.
아무리 리더라고 해도 모르는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다.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메타인지가 부족한 경우도 있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지적 겸손함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밥 아이거는 리더로서 배우는 자세 못지 않게 지나친 겸손도 경계해야 한다고 쓴다:
첫 번째 규칙은 그 무엇도 허위로 가장하지 않는 것이다. 겸손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된 척하거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또한 리더의 위치에 있으므로 영이 서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겸손한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이제껏 내가 이 교훈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다.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은 물어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인정을 하되, 사과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을 가능한 한 빨리 익히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모르는 것은 배우고 행하는 것은 믿는다⟩
커리어 면에서 야망과 현실 사이의 ‘균형’도 중요하다. 밥 아이거는 야망에 호의적이었다. 사람들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 더 큰 책임을 떠맡고자 하는 의욕은 조직 관점에서도 좋다는 것이다. 다만 주어진 기회보다 야망이 지나치게 앞서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쓴다. 야망에 초점을 맞추면 현재의 직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인내심을 잃고 조바심을 부리게 된다.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인내심을 유지하며 기여와 확장, 성장을 위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 동시에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보스의 뇌리에 적임자로 떠오를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수 있도록 태도를 가다듬고 에너지와 집중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5. 2인자에 오르다⟩
일과 삶의 ‘균형’ 역시 중요하다. 차기 CEO 후보로서 디즈니 이사회로부터 검증을 받던 밥 아이거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며 불안발작 증세를 보였다. 이 일을 겪으면서 밥 아이거는 일은 일일 뿐이고, 일 때문에 가족이 악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한 번 더 새긴다. 책에 자세히 서술되지는 않지만, 밥 아이거는 그 바쁜 중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밥 아이거가 대단한 이유는 이렇게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데 머무르지 않고, 사업적으로 대담한 결정을 과감히 실행했다는 점에 있다. 반대로 말하면, 절묘한 균형으로 쌓아올린 안정적인 지지 기반 덕분에 밥 아이거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었다. 밥 아이거는 “고품질의 브랜드 콘텐츠를 만든다”(the creation of high-quality branded content)는 전략적 우선사항(strategic priority)을 바탕으로 픽사, 마블 그리고 루카스필름을 연달아 인수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밥 아이거가 디즈니의 제6대 CEO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추진한 픽사 인수는 산업적 파급효과가 매우 큰 전략이었다. 디즈니 입장에서 픽사는 ⟨토이 스토리⟩ (1995), ⟨벅스 라이프⟩ (1998), ⟨몬스터 주식회사⟩ (2001) 등 메가 히트를 친 애니메이션의 공동 제작 파트너인 동시에 위협적인 경쟁사였다. 픽사가 성장하면서 이 파트너십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 전임 CEO 마이클 아이즈너와 스티브 잡스의 관계 마저 원만하지 않았다.
디즈니와 픽사의 파트너십 종료로 픽사가 잃을 것은 거의 없었다. 반면, 과거 10년 간 픽사와 공동 제작한 영화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흥행작을 내지 못했던 디즈니는 픽사와의 파트너십이 끝나면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술을 자체 개발해야 했다. 픽사의 후발 주자로 열심히 뒤를 쫓으며 픽사가 애니메이션 시장을 잡아먹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될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밥 아이거의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함으로써 디즈니의 약점과 리스크를 한 번에 해결한다. 또한, 픽사를 인수한 후에 디즈니가 픽사의 기업 문화를 존중하는 좋은 선례를 보임으로써 뒤이은 마블, 루카스필름 인수 건을 순조롭게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픽사 인수를 통해 세계적 존경을 받던 스티브 잡스와 신뢰관계를 쌓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또한 큰 이득이었다.
레거시 기업이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여 디지털 전환을 이루어내는 일은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는 대담함이 필요하다. 밥 아이거는 가만히 앉아서 ‘혁신의 딜레마’의 희생자가 될 수는 없다며 ‘혁신이 아니면 죽음을’(If you don’t innovate, you die)을 부르짖고,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Disney+)라는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하는데 성공한다. 거의 10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기업 디즈니가 신생 유망 테크 기업인 넷플릭스와 스트리밍 산업에서 자웅을 겨루는 구도를 만들어냈다. 넷플릭스가 대단한 걸까, 디즈니가 대단한 걸까.
밥 아이거의 전략 방향 제시와 이사회의 빠른 결정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이 전략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더라면 디즈니는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의 인수를 통해) 고품질의 브랜드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내면서도, 스트리밍 시장의 급성장이라는 미디어 지형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불확실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디즈니 테마파크 매출이 급감하고, 영화관이 문을 닫는 미래를 누가 예견이나 했을까.
고품질 브랜드 제품이 변화된 시장상황에서 더욱 큰 가치를 보유할 가능성은 있는가? 어떻게 하면 고객들에게 우리의 제품을 더욱 적절하게, 더욱 창의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 새로 형성되고 있는 소비 습관은 어떤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적응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기술로 인한 붕괴 혹은 파괴의 희생자가 되지 않고, 성장을 위한 새롭고 강력한 도구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가?
⟨14. 핵심가치⟩
정치력
‘무엇이 밥 아이거를 디즈니 CEO로 만들었을까. 또 무엇이 그를 성공한 CEO가 되게 했을까.’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면서 모든 참가자가 주목했던 질문이었다. 밥 아이거는 소위 스펙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스펙과 경영능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까?) 대신에 밥 아이거는 특출한 능력을 가졌는데, 그게 바로 위에서 설명한 조직문화 적응력과 아래에서 설명할 정치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력’은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력, 타인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의 원제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에서 Influence에 해당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밥 아이거는 기본적으로 자신과 맞지 않는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상사를 존중하고 그를 공격하지 않는 모습을 유지했다. 인내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인내심, 이것이 밥 아이거의 정치력이다. 생각보다 이걸 어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상사와 불화하고, 대립하고, 기회가 되면 상사를 갈아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위에 언급한 데일 카네기의 책을 추천한다.
밥 아이거는 특히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조카 로이 E. 디즈니(‘로이’)와 감정을 풀고 화해하는 일에서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한다. 로이는 전임 CEO 마이클 아이즈너에 의해 이사회에서 축출된 상태였다. 밥 아이거는 CEO에 취임하기 전, 대기기간 동안 참모들과 함께 취임 후 6개월 이내에 완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그 첫 번째로 로이와 화해하기를 꼽았다. (이 업무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한 것부터가 밥 아이거의 정치력 레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로이]는 다만 존중받길 원하는 한 사람에 불과했고, 지금까지 그에게 타인의 존중은 쉽게 얻을 수 없었던 것일 뿐이었다.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즉 자존심과 자존감에 관한 문제 같았다.
⟨8. 존중의 힘⟩
밥 아이거는 로이에게 ‘디즈니 명예이사’ 자리를 주면서 그에게 존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로이가 이사회로 돌아오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밥 아이거 자신의 신임 과정을 부정하다고 공격한 로이였지만, 밥 아이거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최선의 의사결정을 했다. 로이의 자존심은 지켜주고, 자신의 자존심은 내려놓았다.
약간의 배려와 존중은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그것의 결핍은 종종 엄청난 비용 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A little respect goes a long way, and the absence of it is often very costly.)
⟨8. 존중의 힘⟩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픽사 인수 건에서도 밥 아이거의 정치력이 또 한 번 발휘된다. 밥 아이거는 마냥 높은 인수가를 제시한다고 해서 픽사 인수를 성사시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픽사를 인수하려면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친해지고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했다. 스티브 잡스에게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한 후에도 픽사가 망쳐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어야 했다.
밥 아이거는 그렇게 했다. 피인수기업인 픽사의 조직 문화를 지켜내겠다는 약속을 담보하는 것에는 밥 아이거 자신이 일하던 ABC가 캡시티즈에 인수되었을 때, 다시 ABC/캡시티즈가 디즈니에 인수되었을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피인수회사 출신으로 설움도 많았다. 밥 아이거는 기업 인수를 통해 기업이 실제로 인수하는 것은 사람들이라는 사실, 특히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에서는 바로 사람들에게 기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밥 아이거는 스티브 잡스와 픽사의 존 래시터(John Lasseter), 에드 캣멀(Ed Catmull)의 마음을 얻어낸다.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픽사에 합류하여 픽사의 IPO와 매각을 진행한 로렌스 레비의 회고를 읽어보면, 디즈니에 매각될 당시 픽사의 상황이 마냥 장밋빛은 아니었고 디즈니 매각은 픽사 입장에서도 매우 좋은 딜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디즈니의 픽사 인수가 밥 아이거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해도, 디즈니-픽사의 관계 회복에 밥 아이거의 정치력이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Apple Computer CEO Steve Jobs, left, shakes hands with Disney CEO Bob Iger, left, during announcement at an Apple event in San Francisco, Tuesday, Sept. 12, 2006. Apple Computer, which pioneered the online distribution of music and television shows, appears poised to jump into the movie business. (AP Photo/Paul Sakuma)
CEO에서 물러나는 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밥 아이거는 자신이 탄 ‘놀이기구’(ride)에서 내려야 할 때가 다가오자(CEO 퇴임일자가 가까워지자) “한 사람이 과도한 권력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가지면 결코 좋지 않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고 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의견에 관심을 보이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 나는 지근거리에서 함께 일하는 임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만약 내가 지나치게 오만하거나 인내심을 잃은 모습을 보이면 나에게 꼭 알려주어야 합니다.”
⟨14. 핵심가치⟩
인간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승리와 상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서서히 잃어간다. 우리가 밥 아이거 같은 출세를 하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밥 아이거의 타고난 자질이 우리에게도 숨어있을지, 그에게 주어진 무수한 행운이 우리에게도 주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도 자기 자신을 잃어갈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나에게 막강한 힘이 있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온 세상이 부추기더라도 본질적 자아에 대한 인식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리더십의 비결이다. 세상이 하는 말을 지나치게 믿기 시작하는 순간,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이마에 자신의 직함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삶의 방향은 사라진 것이다. 삶의 여정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든 나는 언제나 지금까지의 나와 같은 사람이다.
⟨14. 핵심가치⟩
“삶의 여정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든 나는 언제나 지금까지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본질적 자아’에 대한 인식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게 만든다. 인내하게 만들고, 타인의 의견을 귀담아 듣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밥 아이거가 전하는 리더십의 비결이다.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보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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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정리광’으로 유명했던 곤도 마리에는 ‘정리’를 단순한 스킬이 아닌 기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으며 미국을 뒤흔들었다.
곤도 마리에, ‘젊은’ 절세고수
곤도 마리에는 1984년생이다. 정리의 고수라길래 나이가 적지 않은 어른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젊다. 이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정리법이 남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곤도 마리에는 어려서부터 ‘정리’에 푹 빠져서 살았다고 한다. 등하교길에도 정리와 관련된 자료를 읽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 방법을 실천하는데 골몰하며 시간을 보냈단다. 곤도 마리에가 가족들의 물건을 마음대로 버려서 다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서점에 가도 생활잡지의 정리 관련 코너를 항상 찾아서 읽었다. 정리도구, 수납도구 같은 것들도 직접 구입하여 써봤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활동으로 정리정돈부를 하겠다고 손을 든 유일한 사람이란다.
the life-changing magic of tidying up (marie kondo)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 한 번에, 단기간에, 완벽하게
곤도 마리에 정리법을 한마디로 하면 “한 번에, 단기간에,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저자의 어조는 매우 단호하다. 다른 정리법도 있지만 이 방법이 제일 좋다 수준이 아니다. 오로지 이 방법 뿐이라는 것이다.
정리란 매일 조금씩 하면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더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니, 최대한 빨리, 단숨에 해치워 버리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수납상자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콸콸 늘어놓는다. 대체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나에게 있었는지, 여기저기 숨어 있었는지, 그 광경에 1차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물건들 속에 들어가서 ‘남길 것’만 고른다. 이 작업은 매우 직관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물건을 집었을 때 나에게 “찌릿”하고 설렘을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판단 기준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바닥을 가득 메운 물건들 속에서 ‘남길 것’을 골라낼 때 이성적 판단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아직 쓸만하다’(기능적 가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정보 가치), ‘추억이 있다’(감정적 가치),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희소가치)를 변명거리로 삼으면, 버리기를 주저하게 되고,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면서, 결국 정리는 마무리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정리는 물건별로, 난이도 낮은 의류부터 시작하라
그래서 정리에도 순서가 있다. 우선, 정리는 장소별, 방별로 하는 게 아니고 물건별로 한다.
정리할 물건에도 순서가 있다. 난이도가 낮은 의류에서 시작해서 책 → 서류 → 소품 → 추억의 물건 순이다.
의류를 정리할 때도 상의 → 하의 → 외투 → 양말 → 속옷 → 가방 → 악세사리 → 이벤트 물건(수영복 등) → 신발 순으로 정리한다.
책 정리에도 순서가 있다. 일반 서적 (소설 등) → 실용서 (참고서, 요리 레시피 등) → 감상용 서적 (사진집 등) → 잡지 순으로 정리한다.
왜 이 순서대로 정리를 하라는 걸까, 라는 의문이 살며시 고개를 드는 순간 저자는 죽비를 들어 매섭게 내려친다: “나의 정리 인생을 통틀어 말하건대, 이 순서대로 정리하면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남겨진 것들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다. 큰 봉투로 몇 개가 나올지 모른다. 이게 2차 충격이다. 그 다음 깨끗해진 집을 본다. 이게 3차 충격이다. 이런 ‘의식’을 겪고 나면 사람이 바뀐다.
저자는 “정리를 통해 ‘과거를 처리’하기 때문”에, “정리를 통해 인생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게”된다고 설명한다.
책 정리하는 법도 따로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이다.
우선, 책장에서 전부 책을 꺼낸다. 책장에 꽂은 채로 정리한다?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다. 정리의 기본은 동일하다. ‘버리기’다. 무슨 기준으로? 책을 만져보고 설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때, 절대 내용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성적인 판단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책을 버리기 힘든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언젠가 읽을 것 같다’이다. 저자는 살면서 이런 핑계를 대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을까. 이 대목에서 한 번 더 뼈를 때리는 듯한 문장이 등장한다:
내 경험상 단언하는데,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누구의 추천을 받아 구입한 책이든, 또는 읽을 거라고 생각했던 책이든 한 번 읽을 시기를 놓친 책들은 읽지 않게 된다. 그런 책들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구입한 당시에는 읽고 싶었겠지만, 결국 읽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 그 책의 역할이다.
아시겠는가. 그 책의 역할은 이미 다 했다. 그러니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
이어지는 저자의 단호한 조언: “읽지 않은 책들은 과감히 전부 버리자. 여러 해 방치된 읽지 않은 책보다, 지금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읽고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 책을 가볍게 여겼다. 기껏해야 정리를 도와준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 읽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리에 대한 저자의 철학은 예상 외로 깊이가 있었다. 정리를 하면 왜 좋은가? 집이 넓어보이는 효과가 있다! 집이 깨끗해지면 기분이 좋다! 이 수준을 넘어 심오한 구석이 있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부분:
책을 많이 쌓아두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보의 감도를 높인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깨닫기 쉬워진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다. 우리는 물건 하나하나와 마주해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경험을 거쳐 존재하는 지금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공간은 과거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자신을 위해 써야 한다.
세미나에서 받은 자료는 전부 버릴 것이라는 각오로 수강하도록 하자. 배운 것은 반드시 실행하도록 하자. 오히려 나는 자료가 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를 해서 물건을 줄이면 생활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가치관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자신이 설레는 물건을 골라내는 작업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물건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마주하는 것으로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때 느낀 감정이 진짜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정리를 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선택의 역사를 정확히 말해 준다. 정리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는 자신에 대한 ‘재고 조사’다.
지금 갖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다. (1) 지금 마주한다, (2) 언젠가 마주한다, (3) 죽을 때까지 마주하지 않는다, 가 그것이다. 여러분이 어느 길을 택할지는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지금 마주하는 것’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경험의 연속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으로 결단력이 키워진다.
완벽히 정리를 끝낸 상태가 되면, 정리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므로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다음 과제가 명확해진다.
정리를 통해 과거를 처리함으로써 오늘의 내가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미래를 선명하게 준비할 수 있다. 어떤 물건을 남길 것인가, 이 직감을 통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고, 이 결단력은 결국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설레지 않는 물건을 과감히 버릴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결단력을 갖게 된다면, 앞으로 설레지 않는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 일과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멋지다. 정말 마법 같다. 책장을 덮고 나니 이 책의 제목 –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 이 과장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책으로 빽빽한 책장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앞의 책장 속 가득한 책들이 마치 정리되지 못한 과거 같이 보인다. 지금 나는 현재에 충실하고 있는 것일까. 미래에 대한 비전은 있는가.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설레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려라
설레는 것만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 버려라. 이 책에 관해서라면 이 단순한 메세지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이 책은 입이 쩍 벌어지는 신기에 가까운 수납 요령 같은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수납에 대해 (온갖 잔기술을 부릴 것이 아니라) 단순한 편이 좋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 장점 덕분에 이 책이 더욱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정리? 까짓거 어디 한 번 해보지 뭐’ 하는 만만한 마음을 먹게 한다. 좋은 책이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곤마리 정리법’에 관심이 생기셨나요? 곤도 마리에의 신간을 아래 링크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affiliation link: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모튼 한센, ⟪아웃퍼포머, 최고의 성과를 내는 1%의 비밀⟫ (김영사, 2019) 읽었다. 원제는 Great at Work: How Top Performers Do Less, Work Better, and Achieve More.
책: 모튼 한센, ⟪아웃퍼포머, 최고의 성과를 내는 1%의 비밀⟫
똑똑하게 일한다는 것은 몇 가지 활동을 선택하고 그것을 목표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내 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모튼 한센, ⟪아웃퍼포머, 최고의 성과를 내는 1%의 비밀⟫
똑똑하게 일하는 법
책의 주제는 ‘똑똑하게 일하는 법’이다. 유사한 주제를 다룬 책은 시중에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차별점은 대규모 연구 — 약 5,00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량조사 — 를 토대로 하여 신뢰성을 높였다는 데 있다. (저자의 연구 방법은 이 책 ⟨부록⟩에 설명되어 있다.)
저자가 제시한 똑똑하게 일하는 법 7가지는 아래와 같다:
일을 줄이고 집요하게 매달리기
업무를 가치 중심으로 재설계하기
요령 있는 순환 학습을 통해 역량 계발하기
열정과 목적의식을 일치시키기
동료를 감화시키고 지원을 얻으며 일하기
팀의 토론과 결속을 극대화하기
원칙 있는 협업을 하기
위 목록 중 1~4.항까지는 ‘맡은 업무에서 고수가 되는 법’으로, 5~7.항까지는 ‘남들과 일하는 데 고수가 되는 법’으로 묶을 수 있다.
위 7가지 법칙(또는 습관) 중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1. 일을 줄이고 집요하게 매달리기”이다.
이 습관은 나머지 다른 어떤 습관보다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우리는 흔히 이 법칙을 두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저자는 이 말의 진짜 의미가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이들은 “선택과 집중”을 여러 업무와 목표 중 몇 개의 우선 순위를 선택하여 가짓수를 줄이는 활동 정도로 이해한다.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집중, 초점(focus)을 맞춘다는 말은 선택한 사항에서 탁월한 결과가 나오도록 헌신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탁월한 결과를 내려면 초점을 맞추기로 선택한 영역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혹독한 과정이 필요하다.
모튼 한센, ⟪아웃퍼포머, 최고의 성과를 내는 1%의 비밀⟫
집중 x 집착 = 성과
저자는 약 5,000명의 조사 대상을 집중과 집착의 정도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유형별 성과 정도를 평가했다:
우선사항을 많이 정해놓고 노력은 많이 들이지 않는 유형: ~집중 & ~집착 (‘많이 수락하고 설렁설렁 한다’)
핵심 우선사항에 집중하지만 노력은 하지 않는 유형: 집중 & ~집착 (‘일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많은 책임을 수락하고 완수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감당 못하는 유형: ~집중 & 집착 (‘일을 늘리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몇 가지 우선사항을 선택하고 집착에 가까운 노력을 하는 유형: 집중 & 집착 (‘일을 줄이고 집요하게 매달린다’)
어느 유형의 성과가 가장 높았을까. 4.항 유형에 속한 그룹의 성과가 가장 높았고, 1.항 유형에 속한 그룹의 성과가 가장 낮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3.항 유형에 속한 그룹의 성과가 2.항 유형에 속한 그룹의 성과와 비교했을 때 크게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3.항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성과는 많이 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4.항 유형에 속한 그룹과 3.항 유형에 속한 그룹의 성과 차이는 매우 컸다. 저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0점 만점에 무려 28점이나 높았다. 같은 노력이라면 핵심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드라마틱한 성과 차이를 낼 수 있단 뜻이다.
집중과 노력(집착) 그리고 성과
아문센의 개썰매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 어릴 적 위인전집에서 만났던 이름을 이 책에서 다시 접하니 반가웠다. 저자는 아문센 팀과 스콧 팀의 1911년 남극점 탐험 경쟁을 소개하며 ‘선택과 집중 그리고 집착’의 실제 사례로 아문센 팀의 개썰매를 꼽는다.
Amundsen vs. Scott (c)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인류 최초로 남극점 탐험에 성공한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아문센 팀이었다. 두 번째로 남극점에 도달했고 끝내 귀환에 실패한 스콧 팀이 자원과 인력에서 아문센 팀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스콧 팀은 더 큰 배, 2배의 예산, 3배의 인력을 갖고 있었다.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탐험 경쟁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과 설명이 있다. 저자인 모튼 한센 교수는 “아문센 팀이 원정 범위가 더 좁았다”고 쓴다. 이동 수단만 5가지를 사용했던 스콧 팀과 달리 아문센 팀은 단 하나의 이동 수단, 개썰매에 의존했다. 아문센 팀은 ‘오로지’ 개썰매에만 집중한 덕분에 경쟁에서 이겼다.
아문센의 집착은 남달랐다. 그는 이미 몇 해 전의 북서항로 개척 때 이누이트로부터 썰매 개 다루는 법을 배웠고, 뛰어난 개를 확보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최고의 개를 확보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또한, 자신보다 노련한 개몰이꾼을 팀에 합류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손에 쥔 옵션을 늘리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만들어내야 할 때’와 ‘옵션이 뭔지는 알지만 어느 쪽을 택할지 확실할 수 없을 때’는 일시적이나마 일을 늘리는 게 낫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한 옵션에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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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일하자” — ⟪일을 버려라! – 꼭 필요한 일에만 집중해 탁월한 성과를 내는 회사의 비밀⟫를 읽고 쓴 메모. 직원의 시간과 집중력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직 운영 철학이 담겨있다.
바쁜 사람은 항상 바쁘다 — 신수정 KT 부사장 페이스북 글. 여유롭게 일하는 3가지 비결이 담겨 있다.
집중과 제거의 중요성 — 배기홍 스트롱벤처스 대표 블로그 글. 워런 버핏이 목표 우선 순위를 정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제거의 힘’(The Power of Elimination) 개념을 설명한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에 관심이 생기셨나요? 아래 링크를 통해 빠르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affiliation link: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