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카파시가 AI로 위키를 만든다길래, 나도 해봤다

4,825개의 잔해

나는 22년간 글을 썼다. 워드프레스에 1,153개, 브런치에 266개, 애플 노트에 729개, 노션에 2,677개. 총 4,825개.

플랫폼을 옮길 때마다 이전 기록은 버려졌다. 워드프레스에서 브런치로 갈 때, 브런치에서 노션으로 갈 때. 옮기기 번거로워서가 아니다. 과거의 나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22년치 기록은 네 개의 섬으로 흩어져 있었다.

올해 3월, 전부 한 곳에 모았다. Obsidian이라는 노트 앱에 4,825개 파일을 몽땅 넣었다. 이 앱은 메모를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기 때문에 AI가 직접 읽고 쓸 수 있다. 그게 핵심이었다.

2004년에 쓴 법학 에세이와 2024년에 쓴 팀 운영 메모가 같은 검색창에 뜬다. 묘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뭘 할 수 있는가? 파일이 많다고 지식이 되는 건 아니다.


정리의 함정

처음에는 정리하려고 했다. 폴더 구조를 잡고, 분류 기준을 만들고, 하나씩 넣었다. 인간의 본능이다. 어지러운 걸 보면 정돈하고 싶어진다.

일주일 만에 깨달았다. 이건 끝이 없다. 4,825개를 사람이 하나씩 읽고 분류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한다고 해도, 정리는 정리일 뿐이다. 서랍에 잘 넣어둔 것과 그 서랍을 꺼내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필요한 건 정리가 아니었다. 연결이었다.


AI를 붙이다

내 노트 폴더 전체를 AI에게 열어줬다. Claude Code라는 도구를 쓴다. 터미널 — 컴퓨터에 명령어를 직접 치는 검은 화면 — 에서 내 파일을 직접 읽고, 검색하고, 새로 쓸 수 있다. 채팅창에 텍스트를 복사해서 붙여넣는 게 아니라, AI가 내 컴퓨터에 있는 4,825개 파일을 제 손으로 뒤진다. 이 차이가 크다.

처음엔 단순한 질문부터 했다.

“내가 리더십에 대해 쓴 글 다 찾아줘.”

AI가 22년치 기록을 훑었다. 워드프레스 시절 쓴 리더십 에세이, 브런치의 육아 글 속에 숨어 있던 리더십 단상, 노션의 미팅 노트에서 한 줄짜리 메모까지.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올라왔다.

점점 역할이 커졌다. 매일 밤 10시에 AI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그날의 일정, 이메일, 업무 메시지를 수집해서 하나의 리포트로 엮는다. 쌓아둔 메모를 적절한 폴더로 분류한다. 그리고 하루의 패턴을 읽어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이번 주에 약속 3개를 밀었는데, 혼자 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이걸 Chief of Staff — 비서실장이라고 부른다. 단순 비서가 아니다. 페이스메이커이자 코치다.


카파시가 쓴 글

이쯤에서 안드레이 카파시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카파시는 테슬라의 AI 총괄을 맡았고, OpenAI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사람이다. AI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엔지니어 중 하나다. 그가 최근 X(트위터)에 올린 글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는 관심 있는 연구 주제마다 AI로 개인 위키를 만들고 있었다. 논문, 아티클, 데이터셋 같은 원재료를 모아서 AI에게 주면, AI가 그걸 읽고 요약하고, 글끼리 연결하고, 주제별로 묶어서 백과사전처럼 엮어준다. 사람은 재료를 던지기만 하고, 구조를 짜는 건 AI가 한다.

그가 이 과정을 표현한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Incrementally compile a wiki.”
위키를 점진적으로 컴파일한다.

컴파일은 프로그래밍 용어다. 사람이 쓴 코드를 컴퓨터가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작업을 말한다. 카파시는 이 단어를 지식에 적용했다. 흩어진 원재료를 AI가 연결되고 탐색 가능한 형태로 번역해주는 것. 코드를 컴파일하듯이 지식을 컴파일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My own explorations and queries always add up.”
내 탐색과 질문이 항상 누적된다.

AI에게 뭔가를 물을 때마다, 그 질문과 답이 위키에 편입된다. 다음에 비슷한 걸 물으면 AI가 이전 결과까지 참고해서 더 깊이 들어간다. 쓰면 쓸수록 창고가 풍성해지는 구조. 지식이 복리로 쌓인다.

이 글을 읽고 내 작업을 돌아보니, 나도 이미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카파시의 글에는 내가 아직 안 하고 있던 것 세 가지가 있었다.


세 가지를 바꿨다

1. 지도를 만들었다

4,825개 파일에는 구조가 없었다. 파일은 많은데, 어떤 파일이 어떤 주제와 관련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없었다.

AI에게 전체를 훑게 하고, 주제별 지도를 만들었다. 리더십, 투자, 스타트업 운영, 사고 프레임, AI — 다섯 장의 지도. 각 지도는 해당 주제와 관련된 모든 글의 링크를 담고 있다. 목차가 없던 백과사전에 목차가 생긴 것이다.

2004년에 쓴 철학 에세이와 2026년의 경영 회고가 같은 지도 위에 놓인다. 나는 몰랐는데 AI가 찾아낸 연결이다. 그리고 매일 밤 AI가 새로 생긴 글을 알맞은 지도에 자동으로 꽂아 넣는다. 지도는 살아 있다.

2. 건강 검진을 돌렸다

코드에는 린터(linter)라는 게 있다.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작성하면 자동으로 훑어서 오류, 누락, 규칙 위반을 잡아주는 도구다. 코드의 맞춤법 검사기 같은 것이다. 카파시는 이걸 자기 위키에도 적용했다. AI에게 위키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게 한 것이다.

나도 똑같이 했다. AI에게 내 기록 창고 전체의 건강 검진을 시켰다. 끊어진 연결, 빠진 정보,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은 외톨이 파일, 분류 기준 위반. 6,700개 파일 중 94%가 다른 글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외톨이였다. 대부분은 옛 기록이라 괜찮지만, 최근 글 중에서도 상당수가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채 떠돌고 있었다.

검진은 “이 글이 어디에 이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강제한다. 연결이 없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3. 순환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AI에게 조사를 시키면, 결과를 읽고 끝이었다. 대화창을 닫으면 사라진다. 다음에 같은 주제가 필요하면 처음부터 다시.

이제는 AI가 내놓은 모든 결과가 노트 파일로 저장된다. 분류가 붙고, 지도에 편입된다. 다음에 비슷한 주제를 물으면 AI가 이전에 조사한 것까지 참고해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

카파시가 말한 “탐색과 질문이 항상 누적된다”는 구조. 이게 완성되자 체감이 확 달라졌다. 한 달 전의 리서치가 오늘의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도구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

이 작업을 하면서 확인한 게 하나 있다. AI 시대의 기록 관리에서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노트 앱을 쓰는지, 어떤 AI를 쓰는지는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세 가지 구조다:

  1. 누적 — 모든 탐색과 질문이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2. 연결 — 기록과 기록 사이에 줄이 있어야 한다. 혼자 떠 있는 메모는 죽은 메모다
  3. 순환 — 결과가 다시 재료가 되어야 한다. 한쪽으로만 흐르면 소비, 양쪽이면 투자다

22년간 나는 1번만 했다. 쓰고 쌓았다. 2번과 3번이 없었기 때문에 4,825개는 잔해였다.

AI가 해준 건 2번과 3번이다. 연결과 순환. 잔해가 지식의 지도가 되었다.


기록은 있는데 연결이 없다면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건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라고.

그 말을 기록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AI 시대에 가장 아까운 건 기록이 없는 게 아니라, 기록은 있는데 연결이 없는 것이다.

당신이 10년간 노션에 쌓아둔 메모, 에버노트에 모아둔 글, 구글 문서에 흩어진 회의록. 그것들은 잔해가 아니다. 아직 컴파일되지 않은 원재료다. 사람이 쓴 코드가 컴파일을 거쳐야 프로그램이 되듯이, 흩어진 기록은 연결을 거쳐야 지식이 된다.

컴파일러는 이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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