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ripe 28번째 직원에서 Linear COO까지, 실험이 전략이 되는 법 (Cristina Cordova, COO at Linear)

    Cristina Cordova. Stanford 정치학 전공. Stripe에 28번째 직원으로 합류해 7년 반 동안 파트너십 조직을 처음부터 만들었고(Shopify, Apple, Google), Notion에서는 Head of Platform & Partnerships로 API 런칭과 셀프서브 성장을 이끌었다.

    First Round Capital 파트너를 거쳐, 현재 Linear COO. 80개 이상 스타트업의 투자자이자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그녀가 SaaStr 무대에서 풀어놓은 이야기에서, 스타트업 COO가 가져가야 할 에센스를 뽑았다.


    1. 실험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전략의 씨앗이다

    초기에는 누구나 무능감에 시달린다. 다른 사람은 다 자기 할 일을 아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감각.

    “초기에 제가 잘했던 게 있다면, 이것저것 실험하면서 감을 찾아간 겁니다. 파트너 후보들에게 콜드 이메일을 정말 많이 보냈는데, ‘어, 이런 이메일에 반응이 오는구나’ 싶으면 바로 전부 그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Early on, what I did well was kind of like experimenting my way to something. I sent a lot of cold emails to prospective partners, and when I would notice like, ‘Oh, this kind of email seemed to work,’ I would change all of my emails to that.”

    그러다 페르소나별로 다른 메시지가 먹힌다는 걸 알게 되면, 타겟팅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핵심은 이 대목이다:

    “지금도 똑같은 걸 합니다. 다만 이제는 그게 전략이 된 거죠. 실험하고, 시도하고, 상대방이 제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것 — 그게 제 방식이 됐습니다.”

    “I still kind of do those things now, but now it’s like a strategy. Experimentation, trying things, thinking about different people and how they’re going to perceive your message — is just how I tend to do things.”

    같은 행동인데, 프레임이 달라졌다. 초기엔 “어둠 속에서 더듬는 것”이었고, 지금은 “의도적 실험 전략”이다. 바뀐 건 행위가 아니라 확신의 유무다.

    이건 COO에게 특히 중요한 메시지다. 경영의 상당 부분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시도하고, 되는 걸 반복하고, 안 되는 걸 버리는 과정이다. 그 과정 자체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게 전략 수립의 정석이다.


    2. 취약함을 보여라 — 팀이 따라온다

    Cristina의 초기 매니저가 해준 조언:

    “팀 앞에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뭘 확신하지 못하는지, 아직 뭘 파악하는 중인지 말하세요. 그 여정에 팀을 같이 태우는 겁니다.”

    “You kind of need to be a little bit more vulnerable with your team. Tell your team what you’re unsure of, what you’re still trying to figure out. Kind of bring them along in that journey.”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팀원들이 “같이 풀자”고 나선다. 반대로 다 아는 척하면, 팀은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 집단이 된다.

    “그러면 팀원들이 아이디어를 들고 옵니다. ‘이 사람이 전략 다 짜서 시키겠지’ 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요.”

    “They’re coming to you with ideas versus just assuming that you have the strategy or just going to tell them what to do.”

    이건 리더십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 흐름의 설계다. 리더가 불확실성을 공유하면, 팀은 문제 해결자가 된다. 리더가 확실한 척하면, 팀은 실행자로 축소된다.


    3. 고객에게 투자하듯 베팅하라 — Shopify 이야기

    Stripe에 입사한 첫날, 첫 미팅. 파트너였던 Shopify가 다른 결제사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30명짜리 회사에서, 핵심 파트너를 잃는 상황.

    보통이라면 “다음 파트너를 찾자”고 넘어간다. Cristina는 그러지 않았다.

    “저는 그걸 ‘끝났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 살릴 수 있는가? 다른 결정을 하게 만들 수 있는가?”

    “I’m not someone who kind of takes that as the end all be all. The question is, can we save it? Can we convince them to make a different decision?”

    왜 떠나려 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경험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는지 제안했다. 문제는 엔지니어 3명을 코어 프로덕트에서 빼야 한다는 것. 30명 회사에서 엔지니어링의 약 15%를 한 고객에게 쏟는 결정.

    당시 Shopify는 50~60명짜리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또 다른 스타트업 하나” 잃는 것일 수 있었다.

    Cristina의 판단 기준:

    “마치 제가 투자자이고 그들이 피칭하는 것 같았습니다. 듣고 있으면서 ‘이건 투자하겠다’ 싶었습니다.”

    “It was almost like if I was an investor and they were pitching me their idea, I’d be like, I’d invest in that.”

    고객을 투자 대상처럼 평가했다. 이 회사의 전략이 맞는가? 비전이 설득력 있는가? 데이터를 보니 Stripe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가?

    “이미 손 안에 있는 새입니다. 그걸 날려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We have a bird in hand, and I do not want to let that fly away.”

    이게 전략적 고객 선별이다. 모든 고객을 동등하게 대할 수 없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이 고객에 엔지니어링 자원을 걸 가치가 있는가”를 투자자의 렌즈로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Shopify는 Stripe의 성장을 견인한 핵심 파트너가 되었다.


    4. 커뮤니티는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Notion에서 배운 것. 온보딩 경험을 개선하면서 직군별 템플릿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HR이면 경비 정책 템플릿, 엔지니어면 스프린트 보드.

    그러자 유저들이 알아서 템플릿을 만들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사람들이 알아서 템플릿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이게 진짜 커뮤니티의 핵심입니다 — 회사가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생겨나서 스스로 돌아가는 커뮤니티.”

    “You started to see that people in the community were starting to build those templates too. It’s kind of happening organically. And I think that’s a really key part of true community — not forced corporate ipsum community, but a community that actually existed and started on its own.”

    진짜 커뮤니티는 회사가 설계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움직임이다. 회사의 역할은 그걸 발견하고 증폭하는 것이지,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5.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 — “공짜로 풀어라”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Notion의 매출 중 20%가 개인 사용자(소비자)였다. 그걸 전부 무료로 전환했다.

    “그냥 무료로 풀기로 했습니다. 그 매출을 통째로 포기하고, ‘이 제품은 이제 무료입니다’라고 선언한 거죠.”

    “We decided, let’s just make that free. We just gave away all of that revenue and said, actually, the product is free now.”

    왜? 결혼 준비에 Notion을 쓰던 사람이, 회사에서도 Notion을 도입한다. 소비자 경험이 B2B 확장의 파이프라인이 되는 구조.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로드맵의 명확성이었다.

    “순수하게 소비자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건 재미있는 20% 사이드 프로젝트 정도입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시간을 쏟을 영역은 아닌 거죠.”

    “If it’s just a pure consumer play, that’s like your fun 20% side project. This is not something that we’re going to do as a significant portion of our time.”

    돈을 버리는 결정이 아니라, 집중을 사는 결정이다. 뭘 안 만들지 결정하는 게, 뭘 만들지 결정하는 것보다 어렵다. 매출 20%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B2B 회사다”라는 선언이 조직 전체에 정렬되었다.


    6. 세일즈 채용 — 면접이 아니라 함께 일해본다

    Linear의 모든 직군은 Work Trial을 거친다. 세일즈도 예외 없다. 3일간 유급으로 함께 일한다.

    두 가지를 본다:

    하나, 피치와 데모. 제품을 직접 배워서 데모를 하고 세일즈 덱으로 피칭한다.

    “놀라실 겁니다. 제품 데모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세일즈가 정말 많습니다. 중요한 건 뭔가를 외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직접 제품을 만져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한 뒤 저에게 설명할 수 있느냐입니다.”

    “You’d be surprised. There are so many salespeople who have never demoed a product. So it’s not like, can you memorize something, but actually, can you navigate the product and understand how it works and then explain it back to me?”

    Cristina는 의도적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모르는 질문에 아는 척을 할 건가요? 아니면 ‘좋은 질문이십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확인하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할 건가요? 저에게는 후자가 훨씬 나은 답입니다.”

    “Are you going to pretend that you know the answer to a question you don’t know? Or are you going to say, ‘Actually, that’s a good question. I’m not quite sure. I’ll get back to you’? That to me is a better answer.”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게 고객 앞에서도 신뢰를 만드는 사람이다.

    둘, 어카운트 플랜. 실제 고객 콜 녹음을 주고, 그걸 바탕으로 계정 전략을 짜게 한다.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 다음 스텝은 뭔지, 구조적 사고가 되는지.

    “회사와 총 4~5시간 대화하고, 앞으로 4~5년을 보낼 곳을 결정한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Isn’t it kind of silly that you spend maybe four to five hours with a company in total to decide where you’re going to spend the next four to five years of your life?”

    4~5시간 면접으로 4~5년을 결정하는 게 더 이상한 거다. 3일이 길어 보이지만, 잘못된 채용의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7. “의심이 드는 순간이 답이다” — 해고의 타이밍

    “이 지점까지 와서 다시 되돌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안 되겠다’ 싶은 그 순간이 오면…”

    “We have never reached this point and been able to come back from it. Once you know that someone isn’t working out…”

    매니저는 항상 결정이 가장 느리다. 직접 뽑고, 가르치고, 기대했으니까. 하지만 Cristina의 경험칙은 명확하다: “안 되는 것 같다”는 감각이 드는 지점에서 돌아온 적이 없다.

    더 흥미로운 건 성과 지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고객과의 콜 퀄리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딜은 따요. 실은 제품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 세일즈가 판 게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숫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The call wasn’t very good with the customer, and actually our product is doing the work here, not the salesperson. So it’s not even always about the metrics.”

    쿼터를 채우고 있어도, 실제 콜을 들어보면 제품이 팔아주고 있는 건지 사람이 팔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된다. 후행지표(매출)가 아니라 선행지표(콜 퀄리티, 동료 영향력)를 봐야 한다.


    8. 4배 성과, 하지만 문화를 해치면?

    극단적 질문. 쿼터의 3~4배를 달성하지만, 내부적으로 브랜드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훌륭한 세일즈는 자기가 잘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사람까지 잘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A great salesperson is not just someone who sells, but someone who makes the people around them great too.”

    자기 성공을 공유하고, 동료가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매니저가 되고, 조직의 기울기를 높인다.

    “우리 창업자들은 ‘내가 창업자가 아니어도 여기 다니고 싶을까?’를 기준으로 회사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Our founders wanted to create a company that they would enjoy working at, even if they weren’t founders.”

    Linear 창업자들은 “창업자가 아니어도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려 했다. 이 기준이 채용과 해고의 최종 필터다. 성과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9.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

    Linear의 대형 딜 하나에 150번의 미팅이 들어갔다. 고객과 공유 Slack 채널을 만들어 DM으로 개인적 관계를 쌓는다.

    “내부에서 ‘Linear 정말 좋다’는 스크린샷을 찍어서 저희에게 공유해줍니다. 사실 저희가 알면 안 되는 정보인데, 관계가 있으니까 흘러들어오는 겁니다.”

    “People are sharing screenshots of people being like, ‘Oh, Linear is amazing,’ and they’re sharing it back to us. So we’re getting this internal knowledge that we probably shouldn’t have.”

    이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고객 조직 내부의 비공식적 온도를 읽는 것. 신뢰 기반의 정보 비대칭을 만드는 것.

    Cristina가 잃었던 큰 딜의 교훈:

    “더 했어야 했습니다.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조직 안에서 적절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지 못한 겁니다.”

    “We should have done more. This was knowable. It was that kind of loss of personal connection to the right people within the organization.”

    기술이 부족해서 진 게 아니다. 사람과의 연결이 부족해서 졌다. 그리고 그건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10. 논란은 전략이 아니다

    “제품 런칭할 때 의도적으로 논란을 만드는 회사가 많습니다. 하루치 트래픽을 끄는 데는 좋을 수 있죠. 하지만 처음엔 느려 보이더라도 의도를 갖고 성장하는 쪽이 결국 훨씬 유리합니다.”

    “There’s a lot of attention-grabbing controversy to launch your product. I generally think it’s a great way to maybe get one day website visitors. It’s much more advantageous to focus on what may feel like slower growth at first, that is more intentional.”

    자극적 런칭으로 하루짜리 트래픽을 사는 회사들. Cristina는 이게 장기 브랜드를 갉아먹는다고 본다.

    “‘사람들에게 레버리지를 준다’고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더 빠르게 스케일할 수 있게 해준다’고요.”

    “Why don’t you talk about giving people leverage, letting people scale faster?”

    “X 직군을 대체하겠다”는 메시지 대신, “사람에게 레버리지를 주겠다”고 말하라. 같은 제품이라도 프레이밍이 브랜드를 만든다.


    Takeaway

    • 실험은 전략의 전 단계가 아니라 전략 그 자체다. 패턴을 발견하고 반복하는 과정이 플레이북이 된다.
    • 고객을 투자자의 눈으로 봐라. 초기 스타트업에서 자원은 유한하다. “이 고객의 비전에 베팅할 가치가 있는가?”가 자원 배분의 기준이다.
    • 커뮤니티는 설계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걸 찾아서 증폭하라.
    • 채용은 면접이 아니라 협업이다. Work Trial 3일이 면접 5시간보다 낫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 “안 되는 것 같다”는 감각을 무시하지 마라. 매니저의 결정은 항상 늦다. 쿼터가 아니라 콜 퀄리티를 봐라.
    • 성과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동료를 성장시키는 사람이 조직의 기울기를 높인다.
    •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건 관계다. 150번의 미팅, 공유 Slack, 비공식적 온도 — 이건 자동화되지 않는다.
    • 브랜드는 논란이 아니라 일관성에서 온다. “대체”가 아니라 “레버리지”라고 말하라.

    출처: SaaStr 세션 — Cristina Cordova (Linear COO, 전 Stripe·Notion)

  • 명료함, 리더의 제1임무는 ‘일 잘한다’의 기준을 세우는 것

    이 책은 한 조직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 기준의 정의와 전달에 있어서의 ‘명료함’이라는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개념을 최대한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독자인 나는 이 노력이 꽤 성공했다고 느낀다.

    반면, 어떤 독자는 이 책의 설명이 충분히 명료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명료함이라는 개념어가 가지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조직의 추상적인 가치 기준을 최대한 명료하게 만들고 최대한 구체화 해서 구성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리더의 임무라는 것이다.

    역으로 위 역할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에게 리더의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불성실한 리더를 탓할 분들은 그럴 시간에 직접 명료함을 추구하여 리더로서 우뚝서시기를!

    또 하나 이 책에서 건진 용어가 있는데 바로 인간 등대. 문화의 수호자,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통해 인정 받는 사람, 결과와 행동 모든 측면에서 모범을 보이는 사람, 조직의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 상징적 인물을 일컫는다.

    레퍼런스가 있는 용어인지 찾아봤지만, 스티브 펨버튼(Steve Pemberton)이란 저자가 자신의 책 『등대 효과: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에 비범한 영향을 미치는 방법(The Lighthouse Effect: How Ordinary People Can Have an Extraordinary Impact in the World)』에서 인생 여정에서 우리를 아낌없이 인도해주는 멘토, 선생님, 친구, 동료들을 “인간 등대”라고 불렀다고 하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추가: 저자인 탁민 오님이 직접 확인해주신 바, ‘인간 등대’는 다른 레퍼런스 없이 직접 고안하여 사용하시는 개념이라고 한다.

    탁민 오, 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책에서 찾은 문장들:

    • 직원들이 (리더인) 당신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성과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구성원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 구성원들이 그걸 모르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리더인 당신조차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조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리더의 불성실함’이 기준 없는 조직을 만든다.
    • 리더로서 당신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이다. 조직 안에서 일을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하고, 인재 곡선 상에서 두 그룹을 구분하는 선을 최대한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 만약 당신의 팀, 조직, 회사에 질서가 부족하다면 증가하는 복잡성을 억누르고 질서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간섭하는 사람과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 비결이 바로 선명한 기준을 만드는 것, 명료함을 구축하는 것이다.
    • 명료함의 3단계: 1단계 – 리더의 머릿속에 어떤 기준도 없다. 2단계 – 리더에게는 명료한 기준이 있지만 구성원은 그걸 모른다. 3단계 – 리더와 구성원 모두 명료한 기준을 알고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동료는 누구인가? 그 사람의 어떤 행동 때문에 당신은 그를 최고의 동료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행동으로 인해 조직에 어떤 효과가 발생했는가? 그 행동에서 추출 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최고의 동료 5명, 보통의 동료 5명의 차이점을 분석해보라!)
    • 구체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감각을 이용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의 눈, 코, 입, 감각으로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 구체적인 것의 힘이다.
    • 리더십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구체화의 신일 것이다. 구체화하고 또 구체화하라. 더 이상 구체화하기 어려울 때까지 구체화하라. (…) 가능한 다른 해석이 없는 수준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 구체성의 4단계: 1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공통 가치가 없다. 2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가치 목록이 있다. 하지만 그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의되지 않았다. 3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가치 목록이 있다. 그리고 그 가치들에 부합하는 행동들도 정의되어 있다. 4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를 구체적인 행동 레벨에서 정의한다. 그리고 그 행동을 고유한 기준에 따라 한 차원 더 구체화한다.
    • 어떤 조직은 리더의 타고난 약점을 보완하거나, 강점을 더 활용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치를 활용한다.
    • 구체화의 기술 5단계: 1단계 – 우선순위 가치를 정하라. 2단계 – 조직 가치의 의미를 한 문장의 글로 표현하라. 3단계 – 가치에 대한 기대 행동을 정의하라. 4단계 – 명료함 캔버스로 정리하라. 5단계 – 명료함 캔버스를 심화시켜 활용하라. (명료함 캔버스란 가치, 가치에 대한 설명, 그리고 행동 양식을 보여주며, 직급별/부문별로 작성된다.)
    • 명료한 조직은 무엇인가. 명료한 조직은 전력을 다해 인재 곡선의 중심을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회사다. 그러려면 인간 등대(조직에서 행동과 결과를 통해 다른 구성원의 모범이 되는 인물)의 리텐션에 집중해야 한다. 성과가 아닌 행동에 인정과 보상을 해야 한다. 구성원의 성과보다는 그들의 행동을 관리해야 한다. 성과는 가치관의 수단이다.
    • 리더는 참여하는 모든 회의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회사의 핵심 가치관이나 권장 행동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리더의 의무로 삼아야 한다.
    • 리더가 피드백 할 ‘행동’이란 조직의 핵심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한다면 조직의 핵심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 구성원의 업무에 대해 평가하고, 인정하고, 피드백 하는 일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임 중 하나다.
    • 당신이 리더라면 일대일 미팅을 조직의 핵심 가치관과 행동 기준을 알려주는 기회로 활용하라.
    • 당신은 채용 과정을 통해 지원자가 당신의 조직에서 권장하는 행동 양식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채용은 본질적으로 지원자가 우리 조직의 인간 등대가 될 만한 잠재력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 리더는 세일즈맨이 아니라 마케터가 되어야 한다. 모든 리더는 조직 내에 명료함을 확산시키라는 미션을 받은 마케팅 담당자와도 같다. 명료함 마케팅이란 보통의 인재가 우리 조직에 들어와, 우리의 기준을 열렬히 사랑하고 지지하는 인간 등대로 발전하는 과정을 ‘설계’하는 일이다.
    • 오직 명료한 개인이 명료한 리더가 된다. 따라서 명료함의 원칙을 적용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 개인의 삶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은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아 중에서 어떤 존재를 내가 따라야 할 리더로 삼을지 결정하는 일이며, 그 존재가 누구인지 명료하게 만드는 일이다.
  • “고통과 고난을 드립니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말하는 AI 시대의 인재상과 채용 철학

    젠슨 황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이 사람은 경영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33년간 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몸으로 부딪힌 것들을 말한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가 풀어놓은 인재관과 채용철학은,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사람을 뽑고 키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곱씹어볼 만하다.


    61명의 CEO가 있는 회사

    엔비디아의 경영진 구조는 독특하다. 젠슨 황에게 직속 보고하는 사람이 약 60명이다. 일반적인 CEO의 직속 보고 라인이 6~10명인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더 흥미로운 건 그가 이 60명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 60명은 모두 다른 회사에서 세계적인 CEO가 될 수 있는 인재들이다. 나는 이들 앞에서 끊임없이 추론한다. 말 그대로 항상.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은 그들 앞에서 내렸다. 그들 앞에서 추론 과정을 보여줬다. 성공도, 좌절도, 도전도, 역경도 모두 그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여러 면에서 엔비디아에는 61명의 CEO가 있는 것이다.”

    “There are 60 people who could be world-class CEOs for many other companies, and I reason in front of them constantly. Literally all the time, and every single decision I made, I’ve made in front of them. I’ve reasoned through it in front of them. I’ve spoken about successes and setbacks and challenges and adversity all in front of them. And so, in a lot of ways, Nvidia has 61 CEOs.”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구조적 설계다. 의사결정의 맥락이 60명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면, 그 조직은 CEO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게 된다. 회복탄력성이 구조에 내장된다.

    “엔비디아는 다른 어떤 회사와도 다르게 건설되었고, 그만큼 회복탄력성도 뛰어나다.”

    “Nvidia has just been built like no other company ever has been built, and it also speaks to our resilience like no other company will have.”

    CEO가 혼자 판단하고 결과만 전달하는 조직과, 60명이 판단의 과정을 함께 목격하는 조직. 둘의 차이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위기가 왔을 때 드러난다.


    “빈 의자가 잘못된 사람으로 채워진 의자보다 낫다”

    채용에 관한 젠슨 황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빈 의자가 잘못된 사람으로 채워진 의자보다 낫다. 그래서 나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회사는 계속 돌아갈 것이다.”

    “An empty chair is better than a chair filled with the wrong person, and so I’m never in a hurry. The company will keep moving on.”

    그는 CFO 콜레트(Colette)를 채용하기 전에 22명의 후보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녀가 첫 주에 “얼마나 오래 CFO를 맡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답은 이랬다 — “우리가 살아있는 한(For as long as we shall live).” 다른 답은 틀린 답이라고. 끝나는 시점은 오직 그녀가 엔비디아가 더 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할 때뿐이라고.

    이 철학이 작동하려면 전제가 하나 있다. 자리가 비어있어도 회사가 돌아가야 한다. 젠슨 황은 이 전제를 믿는다.

    “이 두 가지 아이디어 — 빈 의자, 그리고 회사는 계속 돌아간다 — 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적합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엄청난 시간을 벌 수 있다. 여러 가지 조건의 조합을 충족하는 사람, 단순히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는 것까지 포함해서.”

    “If you can convince yourself of what I just said, that these two ideas, the empty chair and the company is going to keep moving on, then it buys you enormous amounts of time until you find somebody that is a combination of a lot of things, including you just like them.”

    많은 스타트업이 이 반대를 한다. 자리가 비면 불안해서 빨리 채운다. “일단 뽑고 안 맞으면 바꾸자”는 논리다.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에서는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젠슨 황의 관점은 다르다. 잘못된 사람이 앉은 자리는 빈 자리보다 더 큰 비용을 만든다. 조직 문화가 오염되고,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결국 그 사람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비용이 발생한다.

    22명을 인터뷰하는 인내심. 그건 여유가 아니라 확신이다. 적합한 사람이 올 때까지 견딜 수 있다는 조직적 자신감.


    기업의 특성(Corporate Character)이라는 마법

    젠슨 황에게 “훌륭한 직원이나 리더를 만드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놀랍게도, 나는 그 답을 모른다. 그들은 모두 똑똑하다. 모두 유능하다. 아무 CFO나 데려와 봐라. 유능할 것이다. 충분히 유능할 것이다.”

    “Surprisingly, I don’t have the answer. They’re all smart. They’re all competent. You find me a CFO somewhere, and I promise you, they’re competent. And they’re competent enough.”

    모든 후보는 똑똑하고 유능하다. 전 세계의 CEO들도 모두 유능하다. 그건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 그가 꼽는 건 다른 것이다.

    “엔비디아의 마법을 만드는 건, 함께 있는 사람들의 화학 작용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은 기업의 특성(corporate character)이다. 그 특성은 어딘가에서 온다. 그것이 위대한 회사를 정의한다.”

    “What makes the magic of Nvidia is a combination of the chemistry of the people that are together. But mostly, I would tell you that it’s just corporate character, and that character comes from somewhere. That’s what defines great companies.”

    엔비디아는 GPU를 발명했지만, 생산량 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GPU 회사다. 젠슨 황 본인도 이 아이러니를 인정한다 — “모든 사람이 우리보다 더 많은 GPU를 만든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Everybody makes more GPUs than I do. It sounds weird, but we are).” 기술이나 규모가 아니라, 역경 속에서 팀이 어떻게 함께하는지에서 마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Grace Blackwell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은 회사를 거의 파산시킬 뻔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Grace Blackwell을 생산에 올리는 과정은 회사의 등을 거의 부러뜨릴 뻔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건 100% 특성(character)의 문제다. 지능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다.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도 많다. 그건 100% 특성이다.”

    “Getting Grace Blackwell into production almost broke our company’s back, but we wouldn’t let it. That’s 100% character. That’s not intelligence. That’s not hard work. There are a lot of people that work hard. There are a lot of people that are super smart. That is 100% character.”

    여기서 주목할 건 그 다음 문장이다.

    “나는 거의 누구든 엔비디아에 데려오면, 우리가 그 사람에게 특성을 심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I actually kind of believe that you can bring almost anybody into Nvidia, and we will instill character into you.”

    즉, character는 채용 시점에 완성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 조직이 만들어낼 수 있다.


    실수해도 해고되지 않는 문화

    엔비디아의 인재 철학에서 가장 반직관적인 부분이 여기다.

    많은 회사에서 큰 도전을 겪으면 누군가가 뒤처지고, 비난받고, 해고되고, 나쁜 감정으로 떠난다. 젠슨 황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보통 이런 엄청난 도전을 겪고 나면 누군가가 나쁜 감정 때문에, 비난받아서, 해고되어서 떠난다. 게임이 끝나면 우리는 팀으로서 진 것이지만, 누가 패스를 떨어뜨렸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명확히 한다. 실제로 명확히 한다.”

    “Usually, what happens is you go through one of these incredible challenges, and then somebody leaves because of a bad feeling, or because they were blamed, and they were fired. At the end of the game, we lost as a team, but there’s no question who dropped the pass, and so we have to be clear about that. And we are clear about that.”

    실수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두 안다. 그것에 대해 명확히 한다. 하지만 그 다음이 다르다.

    “과거에 패스를 떨어뜨린 모든 사람들 — 나 자신을 포함해서, 나도 수많은 패스를 떨어뜨렸다 — 아무도 패스를 떨어뜨렸다고 해고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회사는 관용과 용서, 그리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문화, 성격을 발전시켰다. 팀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All the people who dropped passes in the past, including myself, and I’ve dropped plenty of passes — nobody’s been fired for dropping passes. And so this company has developed a culture, a personality, that tolerance and forgiveness and learning from mistakes. So long as the teammates gave everything of themselves, that’s good enough for me.”

    이건 관대함이 아니다. 전략이다.

    고난을 견디고 반복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려면, 실패의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실패의 비용이 해고라면, 사람들은 도전을 피한다. 도전을 피하는 조직은 Grace Blackwell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젠슨 황은 회사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듯이, 팀원들도 회사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한다.

    “60명 모두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 그들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괜찮은 수준이었다. 회사가 고통 속에서 우리의 위대함을 끌어냈고, 놀라운 특성을 우리에게 단련시켰다. 이것이 이 회사의 마법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사람을 잃지 않고, 동시에 회사가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위대함이다.”

    “100% of those 60 people are different today than they were when they started. I can tell you they’re great today. We were fine in the beginning. We’re good in the beginning, like anybody else. And so, the company tortured greatness out of us, and the company forged incredible character into us. That’s the magic of this company, that you could do that, not lose the person, and the company not giving up on you. Simultaneously. That’s our greatness.”

    “사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회사가 포기하지 않는다(not lose the person, and the company not giving up on you, simultaneously)” — 이 한 문장에 엔비디아의 인재 철학이 압축되어 있다.


    고통과 고난이 비밀 소스

    젠슨 황은 고통과 고난(pain and suffering)이 엔비디아의 비밀 소스라고 대놓고 말한다. 인터뷰어가 “That’s our secret sauce?”라고 되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Yeah”라고 답한다. 엔비디아에서 일하는 것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도, “Pain and suffering is a big part of it”이라고 말한다.

    왜 이것이 매력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젠슨 황은 20대의 에너지와 속도를 인정하면서도, 그 시절에 빠진 것들을 짚는다.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더 현명해지는 능력, 더 미묘해지는 능력, 더 전략적이 되는 능력,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그런 것들을 직접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배우는지 나는 모르겠다.”

    “The thing that I would say is completely missed is all of the ability to be wiser, to be more nuanced, to be more strategic, to think longer term. I don’t know how you learn those things by not living those things.”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으로 간접적으로 배울 수도 있지만, 고난을 견디는 끈기(grit)와 감정적 고통을 겪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둘째, 고통을 함께 겪으면 유대가 형성된다. 수만 명의 삶이 결정에 달려 있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과 취약성 — 이런 감정들을 직접 겪지 않고는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을 함께 겪은 팀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두려움은 회사를 운영할 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수만 명의 삶이 달려 있다. 상황이 잘 안 풀릴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불안을 느끼지 않고, 취약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 사실 그것은 나쁜 리더가 되는 것이다.”

    “Fear is a real thing in running companies. We have the lives of tens of thousands of people in the decisions we make. When things are not going well, to not feel fear, to not feel anxiety, to not feel vulnerability, makes you, in fact, a bad leader.”

    회사를 운영하면서 두려움, 불안, 취약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경고. 이건 약점이 아니라 리더의 필수 조건이다.


    엔비디아가 찾는 사람의 조건

    젠슨 황은 채용 기준을 길게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간결하게 말한다.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 싸가지 없는 사람이면 안 된다. 이기적이면 안 된다. 간단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일할 수 없다. 그게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다. 정말로 팀의 일원이 되고 싶어하고, 투명하고, 취약성을 드러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 모든 것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위대함을 단련시켜 줄 것이다.”

    “So long as I enjoy working with them — they can’t be a jerk. They can’t be self-serving. I can’t work with people that can’t answer simple questions. That’s my trigger. To the extent that they really want to be part of the team, they can be transparent, they can be vulnerable, and they can learn. They don’t have to know it all — they just have to learn it all. To the extent that all of that is true, we’ll forge greatness into them.”

    목록을 다시 보자. IQ도, 학력도, 경력도, 기술 스택도 없다. 전부 태도(attitude)와 성품(character)에 관한 것이다.

    특히 “간단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눈에 띈다. 그가 가장 못 참는 것도 이것과 연결된다.

    “중요한 순간에 내 질문을 듣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답하지 않는 사람.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답하지 않으면, 거의 즉시 화가 치민다.”

    “People who don’t listen to my question, understand my question, answer my question during important times. When we’re dealing with very hard situations and we need facts, if somebody doesn’t answer it, it triggers me almost instantaneously.”

    이건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에 빠르게 도달하려는 의지의 문제다. 자기 방어 대신 사실을 말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질문의 핵심을 파악해서 정직하게 답하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조직에서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경영을 해본 사람은 안다.


    “가장 똑똑한 사람”의 재정의

    젠슨 황에게 “가장 똑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한 명을 꼽을 수 없다고 답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전환을 한다.

    “똑똑하다의 정의는 지능적이고, 문제를 풀고, 기술적인 사람이다 — 하지만 그건 이제 기본값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공지능이 그 부분을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곧 증명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 궁극의 똑똑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AI가 가장 먼저 해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다.”

    “The definition of smart is somebody who’s intelligent, solves problems, technical — but I find that that’s a commodity. We’re about to prove that artificial intelligence is able to handle that part easiest. Everybody thought software programming is the ultimate smart profession. Look what is the first thing that AI is solving? Software programming.”

    지능, 문제 해결 능력, 기술적 능력은 상품(commodity)이다. AI가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똑똑함은 다른 곳에 있다.

    나의 개인적인 똑똑함의 정의는, 기술적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적 공감 능력을 가진, 그 교차점에 있는 사람이다. 말하지 않은 것을, 모퉁이 너머를, 알 수 없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 모퉁이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이다.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선제할 수 있는 것, 단지 바이브를 느끼기 때문에. 그 바이브는 데이터, 분석, 근본 원칙, 삶의 경험, 지혜, 타인을 감지하는 것의 조합에서 온다. 그런 사람은 SAT에서 끔찍한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My personal definition of smart is someone who sits at that intersection of being technically astute, but human empathy, and having the ability to infer the unspoken, the around the corners, the unknowables. People who are able to see around corners are truly smart. To be able to preempt problems before they show up, just because you feel the vibe. And that vibe came from a combination of data, analysis, first principle, life experience, wisdom, sensing other people. That person might actually score horribly on the SAT.”

    AI 시대에 인재를 뽑는 CEO라면 이 정의를 곱씹어볼 만하다. 코딩 능력, 분석력, 문제 해결 속도 — 이런 것들은 점점 상품화된다. 남는 건 맥락을 읽는 힘, 말하지 않은 것을 듣는 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감지하는 힘이다.


    무지(Ignorance)라는 초능력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젠슨 황은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의 답이 인상적이다.

    “엔비디아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기 때문에, 엔비디아가 가능했다. 사실 엔비디아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엔비디아를 만들 수 없다. 그냥 안 된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설득할 수 없었다. 내가 더 잘 몰랐기 때문에.”

    “Nvidia would not be possible today if not for the fact that I was ignorant to the fact that it’s impossible to build Nvidia. In fact, it’s impossible to build Nvidia. You can’t build Nvidia. You just can’t. But nobody can convince me otherwise because I didn’t know any better.”

    그리고 지금 세대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설득할 수 없다. 그들은 너무 무지하다. 진실에 너무 무관심해서 낙관적이다. 그게 어떻게 나쁜 것인가? 나는 우리가 매우 냉소적이고, 너무 많이 아는 세대를 키우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이 본질적으로 냉소적이어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I think optimistic people, you can’t convince them that they can’t make it better. They’re so ignorant. They’re so oblivious to the truth that they are optimistic. How is that a bad thing? And I feel that we’re raising a generation of very cynical, too informed. They’re cynical not because they’re inherently cynical. They’re cynical because they just see so much stuff.”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회의적(cynical)이 된 세대.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의 내적 자원을 쌓고, 좋은 것만 볼 수 있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지금 아는 모든 것 — 좌절, 실망, 고난 — 을 그때 알았다면, 엔비디아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인정한다. “나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I would never do it).”

    이건 채용에도 시사점이 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왜 안 되는지”를 안다. 경험이 적은 사람은 “왜 안 되는지”를 모른다. 때로는 후자가 전자보다 더 멀리 간다. 물론 무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유능하고 근면한 사람에게 무지가 더해지면, “얼마나 어렵겠어?(How hard can it be?)”라는 태도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끝이 없는 것(no endgame)도 초능력이다.

    “엔비디아에는 엔드게임이 없다. 사람들이 묻는다, 젠슨, 계획이 뭐냐? 없다.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계획이다. 젠슨, 인생 목표가 뭐냐? 없다. 그냥 일하고,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좋은 일을 하고, 놀라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그것이 목표다.”

    “Nvidia has no endgame. People ask me, Jensen, what’s your plan? We don’t have one. Staying in business is our plan. Jensen, what are your life goals? I don’t have any. Just working, staying employed, being able to do good work, surrounded by amazing people. That’s the goal.”

    특정한 목표가 없다는 것. 이것이 33년간 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Takeaway

    젠슨 황의 인재 철학을 정리하면 몇 가지 원칙으로 수렴한다.

    • 채용에서는 인내하라. 빈 자리의 불편함보다 잘못된 채용의 비용이 크다. 적합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조직적 체력을 만들어라.
    • 똑똑함을 재정의하라. 기술적 능력은 상품화되고 있다. 맥락을 읽고, 말하지 않은 것을 추론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감지하는 사람을 찾아라.
    • 태도와 성품을 보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고, 투명하고, 취약성을 드러내고, 배우려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위대함은 조직이 만들어낼 수 있다.
    • 실패에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라. 실패의 비용이 해고라면, 사람들은 도전을 피한다. 도전을 피하는 조직은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 고통을 회피하지 마라. 고통과 고난은 성장의 원료다. 그것을 함께 겪은 팀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 의사결정의 맥락을 공유하라. CEO 혼자 판단하고 결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과정을 팀이 함께 목격하게 하라. 그것이 조직의 회복탄력성을 만든다.

    엔비디아를 만든 건 GPU가 아니다. GPU를 만든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젠슨 황이 33년간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칩이 아니라, 칩을 만드는 조직의 특성(character)이었다.


    *출처: Jensen Huang: Founder and CEO of NVIDIA (A Bit Personal with Jodi Shelton 인터뷰 영상)

  • 안드레이 카파시가 AI로 위키를 만든다길래, 나도 해봤다

    4,825개의 잔해

    나는 22년간 글을 썼다. 워드프레스에 1,153개, 브런치에 266개, 애플 노트에 729개, 노션에 2,677개. 총 4,825개.

    플랫폼을 옮길 때마다 이전 기록은 버려졌다. 워드프레스에서 브런치로 갈 때, 브런치에서 노션으로 갈 때. 옮기기 번거로워서가 아니다. 과거의 나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22년치 기록은 네 개의 섬으로 흩어져 있었다.

    올해 3월, 전부 한 곳에 모았다. Obsidian이라는 노트 앱에 4,825개 파일을 몽땅 넣었다. 이 앱은 메모를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기 때문에 AI가 직접 읽고 쓸 수 있다. 그게 핵심이었다.

    2004년에 쓴 법학 에세이와 2024년에 쓴 팀 운영 메모가 같은 검색창에 뜬다. 묘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뭘 할 수 있는가? 파일이 많다고 지식이 되는 건 아니다.


    정리의 함정

    처음에는 정리하려고 했다. 폴더 구조를 잡고, 분류 기준을 만들고, 하나씩 넣었다. 인간의 본능이다. 어지러운 걸 보면 정돈하고 싶어진다.

    일주일 만에 깨달았다. 이건 끝이 없다. 4,825개를 사람이 하나씩 읽고 분류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한다고 해도, 정리는 정리일 뿐이다. 서랍에 잘 넣어둔 것과 그 서랍을 꺼내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필요한 건 정리가 아니었다. 연결이었다.


    AI를 붙이다

    내 노트 폴더 전체를 AI에게 열어줬다. Claude Code라는 도구를 쓴다. 터미널 — 컴퓨터에 명령어를 직접 치는 검은 화면 — 에서 내 파일을 직접 읽고, 검색하고, 새로 쓸 수 있다. 채팅창에 텍스트를 복사해서 붙여넣는 게 아니라, AI가 내 컴퓨터에 있는 4,825개 파일을 제 손으로 뒤진다. 이 차이가 크다.

    처음엔 단순한 질문부터 했다.

    “내가 리더십에 대해 쓴 글 다 찾아줘.”

    AI가 22년치 기록을 훑었다. 워드프레스 시절 쓴 리더십 에세이, 브런치의 육아 글 속에 숨어 있던 리더십 단상, 노션의 미팅 노트에서 한 줄짜리 메모까지.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올라왔다.

    점점 역할이 커졌다. 매일 밤 10시에 AI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그날의 일정, 이메일, 업무 메시지를 수집해서 하나의 리포트로 엮는다. 쌓아둔 메모를 적절한 폴더로 분류한다. 그리고 하루의 패턴을 읽어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이번 주에 약속 3개를 밀었는데, 혼자 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이걸 Chief of Staff — 비서실장이라고 부른다. 단순 비서가 아니다. 페이스메이커이자 코치다.


    카파시가 쓴 글

    이쯤에서 안드레이 카파시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카파시는 테슬라의 AI 총괄을 맡았고, OpenAI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사람이다. AI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엔지니어 중 하나다. 그가 최근 X(트위터)에 올린 글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는 관심 있는 연구 주제마다 AI로 개인 위키를 만들고 있었다. 논문, 아티클, 데이터셋 같은 원재료를 모아서 AI에게 주면, AI가 그걸 읽고 요약하고, 글끼리 연결하고, 주제별로 묶어서 백과사전처럼 엮어준다. 사람은 재료를 던지기만 하고, 구조를 짜는 건 AI가 한다.

    그가 이 과정을 표현한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Incrementally compile a wiki.”
    위키를 점진적으로 컴파일한다.

    컴파일은 프로그래밍 용어다. 사람이 쓴 코드를 컴퓨터가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작업을 말한다. 카파시는 이 단어를 지식에 적용했다. 흩어진 원재료를 AI가 연결되고 탐색 가능한 형태로 번역해주는 것. 코드를 컴파일하듯이 지식을 컴파일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My own explorations and queries always add up.”
    내 탐색과 질문이 항상 누적된다.

    AI에게 뭔가를 물을 때마다, 그 질문과 답이 위키에 편입된다. 다음에 비슷한 걸 물으면 AI가 이전 결과까지 참고해서 더 깊이 들어간다. 쓰면 쓸수록 창고가 풍성해지는 구조. 지식이 복리로 쌓인다.

    이 글을 읽고 내 작업을 돌아보니, 나도 이미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카파시의 글에는 내가 아직 안 하고 있던 것 세 가지가 있었다.


    세 가지를 바꿨다

    1. 지도를 만들었다

    4,825개 파일에는 구조가 없었다. 파일은 많은데, 어떤 파일이 어떤 주제와 관련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없었다.

    AI에게 전체를 훑게 하고, 주제별 지도를 만들었다. 리더십, 투자, 스타트업 운영, 사고 프레임, AI — 다섯 장의 지도. 각 지도는 해당 주제와 관련된 모든 글의 링크를 담고 있다. 목차가 없던 백과사전에 목차가 생긴 것이다.

    2004년에 쓴 철학 에세이와 2026년의 경영 회고가 같은 지도 위에 놓인다. 나는 몰랐는데 AI가 찾아낸 연결이다. 그리고 매일 밤 AI가 새로 생긴 글을 알맞은 지도에 자동으로 꽂아 넣는다. 지도는 살아 있다.

    2. 건강 검진을 돌렸다

    코드에는 린터(linter)라는 게 있다.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작성하면 자동으로 훑어서 오류, 누락, 규칙 위반을 잡아주는 도구다. 코드의 맞춤법 검사기 같은 것이다. 카파시는 이걸 자기 위키에도 적용했다. AI에게 위키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게 한 것이다.

    나도 똑같이 했다. AI에게 내 기록 창고 전체의 건강 검진을 시켰다. 끊어진 연결, 빠진 정보,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은 외톨이 파일, 분류 기준 위반. 6,700개 파일 중 94%가 다른 글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외톨이였다. 대부분은 옛 기록이라 괜찮지만, 최근 글 중에서도 상당수가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채 떠돌고 있었다.

    검진은 “이 글이 어디에 이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강제한다. 연결이 없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3. 순환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AI에게 조사를 시키면, 결과를 읽고 끝이었다. 대화창을 닫으면 사라진다. 다음에 같은 주제가 필요하면 처음부터 다시.

    이제는 AI가 내놓은 모든 결과가 노트 파일로 저장된다. 분류가 붙고, 지도에 편입된다. 다음에 비슷한 주제를 물으면 AI가 이전에 조사한 것까지 참고해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

    카파시가 말한 “탐색과 질문이 항상 누적된다”는 구조. 이게 완성되자 체감이 확 달라졌다. 한 달 전의 리서치가 오늘의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도구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

    이 작업을 하면서 확인한 게 하나 있다. AI 시대의 기록 관리에서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노트 앱을 쓰는지, 어떤 AI를 쓰는지는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세 가지 구조다:

    1. 누적 — 모든 탐색과 질문이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2. 연결 — 기록과 기록 사이에 줄이 있어야 한다. 혼자 떠 있는 메모는 죽은 메모다
    3. 순환 — 결과가 다시 재료가 되어야 한다. 한쪽으로만 흐르면 소비, 양쪽이면 투자다

    22년간 나는 1번만 했다. 쓰고 쌓았다. 2번과 3번이 없었기 때문에 4,825개는 잔해였다.

    AI가 해준 건 2번과 3번이다. 연결과 순환. 잔해가 지식의 지도가 되었다.


    기록은 있는데 연결이 없다면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건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라고.

    그 말을 기록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AI 시대에 가장 아까운 건 기록이 없는 게 아니라, 기록은 있는데 연결이 없는 것이다.

    당신이 10년간 노션에 쌓아둔 메모, 에버노트에 모아둔 글, 구글 문서에 흩어진 회의록. 그것들은 잔해가 아니다. 아직 컴파일되지 않은 원재료다. 사람이 쓴 코드가 컴파일을 거쳐야 프로그램이 되듯이, 흩어진 기록은 연결을 거쳐야 지식이 된다.

    컴파일러는 이미 있다.

  • 일을 해체하면 조직이 보인다 — AI 시대, 팀 구조의 첫 번째 질문

    잘못된 질문

    “AI를 어디에 쓰지?”

    회의실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CTO가 기술 데모를 보여주고, 팀장들이 “우리 팀에서는 이걸 쓸 수 있겠다”고 말한다. 회의록 요약, 고객 문의 자동 응답, 리포트 자동화. 하나씩 붙인다. 한두 달 뒤 돌아보면 — 기존 프로세스 위에 AI를 얹었을 뿐, 일하는 방식은 하나도 안 바뀌었다.

    이건 마차에 엔진을 다는 것이다. 마차의 구조를 유지한 채 동력만 바꾸면 더 빨라지긴 하지만, 자동차는 아니다. 자동차를 설계하려면 질문 자체가 달라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일 = 지식 + 방식

    이 프레임에서 출발하자.

    모든 일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지식 —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리고 방식 — 그걸 실제로 실행하는 것. 지금까지 둘 다 사람이 했다. 도메인 전문성도 사람, 실행도 사람. SOP를 만들어서 실행의 편차를 줄이긴 했지만, SOP를 실행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AI가 바꾸는 건 이 후반부다. SOP가 명확한 실행은 AI agent가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에게 남는 건 무엇인가?

    방식을 한 단계 더 쪼개면 답이 보인다.

    구분설명AI가 할 수 있는가?
    방식 — 반복SOP화 가능한 프로세스 실행Yes. AI agent의 영역
    방식 — 판단예외 처리, 의사결정, 설계부분적. AI가 보조하되 사람이 최종
    방식 — 관계1:1, 코칭, 협상, 신뢰 구축No.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식 자체 — 도메인 전문성, 맥락, 경험에서 오는 판단 — 이건 여전히 사람의 것이다.

    핵심은 이거다: 각 역할에서 “방식-반복”을 빼면 뭐가 남는가? 그 남는 것이 그 사람의 진짜 가치다.


    반복을 빼면 진짜가 보인다

    구체적으로 보자.

    HR 담당자의 업무를 해체해보면 — 급여 계산, 연말정산 처리, 인사 데이터 관리. 이건 전부 “방식-반복”이다. AI agent가 급여대장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이상치만 사람이 승인하면 된다. 온보딩도 체크리스트와 계정 세팅은 AI가 하고, 사람은 새로운 동료와의 관계 형성에 집중한다.

    그러면 뭐가 남는가? 매니저 육성, 조직 문화 설계, 평가 체계 구축. 이건 방식-판단과 방식-관계의 영역이다. 방식-반복을 빼면, HR 담당자는 “급여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설계자”가 된다. 사실 원래부터 그게 본질이었는데, 반복 업무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리크루터도 마찬가지다. 소싱, 스크리닝, 인터뷰 코디네이션, 파이프라인 관리 — 전부 자동화 가능하다. 남는 건? 채용 기준 설계, 채용 매니저와의 조율, 후보자 클로징. 인재 전략가의 일이다.

    재무 담당자는 어떤가. 전표 처리, 월 결산, Billing, 데이터 취합 — AI agent의 몫이다. 남는 건 캐시 플로우 시나리오 설계, 전략적 예산 배분, 경영진에게 숫자 너머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 재무 전략가.

    패턴이 보이는가? 방식-반복을 빼면, 모든 역할이 한 단계 올라간다. 실행자에서 설계자로. 처리자에서 전략가로. AI가 “How”를 가져가면, 사람에게 “What”과 “Why”가 남는다.


    두 가지 전환 모델

    이걸 실제 조직에 적용하면 두 가지 경로가 있다.

    모델 A: 도메인 전문가 + Agent Fleet

    급진적 접근. 기능별 팀을 해체하고, 각 도메인의 전문가 한 명이 AI agent fleet을 관장하는 구조.

    HR팀 3명이 아니라, People Architect 1명 + AI agent들. 리크루팅팀 5명이 아니라, Talent Strategist 2명 + AI agent들. 각 사람이 “실행자”가 아니라 “설계자+감독자”가 된다.

    모델 B: 레이어 전환

    점진적 접근. 기존 팀 구조는 유지하되, 횡단 AI 레이어를 깐다. 기존 실행 인력이 점진적으로 “AI 관리자”로 역할을 전환한다. AI agent의 output을 검증하고, 예외를 처리하고, prompt를 설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모델 A로 수렴한다.

    어느 쪽이든 도착점은 같다. 다만 모델 B가 한 가지를 더 관리한다 — 사람의 전환.


    구조보다 어려운 세 가지 질문

    솔직히 말하면 위의 구조 재편은 쉬운 부분이다. 진짜 어려운 건 구조 너머에 있다.

    1. 채용의 역설

    연 100명을 뽑기 위해 리크루터 5명이 필요하다. AI-native로 소싱과 스크리닝이 자동화되면, 리크루터 2명이 100명을 더 잘 뽑을 수 있다. 하지만 잠깐 — AI-native 조직이면 100명이 필요한가? 다른 팀도 인원이 줄면 채용 수요 자체가 줄어든다.

    채용 자동화가 채용 수요를 줄이고, 줄어든 수요가 다시 채용팀 규모를 줄인다. 자기참조적 축소. 이걸 위기로 볼 수도 있고, 해방으로 볼 수도 있다. 적은 인원으로 더 정교한 채용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나쁜 게 아니다.

    2. 정체성 위협

    이게 진짜 장벽이다.

    3년간 급여 처리의 전문가로 일한 사람에게 “이제 AI가 급여를 처리합니다”라고 하면, 그건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 이유의 위협이다. AI 도입에 대한 저항은 기술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게 아니다. 내가 쌓아온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

    그래서 AI-native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는 시스템 아키텍처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다. 전환 경로가 없는 AI 도입은 조직 파괴다. 급여 전문가가 조직 설계자로 가는 경로, 소싱 담당자가 인재 전략가로 가는 경로 — 이걸 먼저 그려야 한다.

    3. “팀”이라는 단위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팀”이라는 조직 단위 — 이것도 재검토 대상이다.

    현재 조직은 기능별로 팀이 나뉜다. HR팀, 재무팀, 법무팀. AI-native에서는 프로세스별 agent + 도메인별 사람이 더 자연스럽다. “HR팀”이 아니라 “People 도메인을 책임지는 한 사람 + 그가 감독하는 agent fleet”이 하나의 단위가 된다.

    이건 조직도의 기본 단위가 바뀌는 것이다. 작지 않은 변화다.


    첫 번째 질문을 바꿔라

    AI 시대의 조직 설계는 결국 “일을 어떻게 해체하느냐”에서 시작한다.

    지식과 방식을 분리하고, 방식을 반복·판단·관계로 쪼개고, 반복을 AI에게 넘기면 — 사람에게 남는 것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 윤곽이 새로운 조직의 설계도다.

    “AI를 어디에 쓰지?”라고 묻는 한, 마차에 엔진을 다는 것을 넘어서기 어렵다. 자동차를 설계하려면 질문이 달라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조직만이 AI-native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답 속에는 반드시 — 구조 너머에서 —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이 함께 있어야 한다.

  • 위대한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희소합니다 — AI 시대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이 업계에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다 집어삼킨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실제로 몇 주 만에 SaaS 시가총액이 수천억 달러 증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ICONIQ에서 발행한 글(A Coming Age of Reason: Evolutionary Innovation and the New Layers of Agentic Software)을 읽으면서, 흐릿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정리되는 경험을 했어요.

    글의 출발점은 역사입니다. 메인프레임에서 클라이언트-서버로, 다시 클라우드로 — 소프트웨어의 모든 플랫폼 전환은 대멸종이 아니라 참여의 확장이었다는 거예요. Siebel이 사라진 건 CRM이 필요 없어져서가 아니라 Salesforce가 클라우드 위에서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죠. 레거시 모니터링은 Datadog에게, 온프레미스 데이터 웨어하우스는 Snowflake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카테고리는 죽지 않았어요. 재발명됐을 뿐.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그 다음 전환입니다. AI Agent 시대에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하는 주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요. Agent는 온보딩 시간이 필요 없고, 시스템과 언어를 넘나들며, 24시간 작동합니다. 클라우드 전환조차 겸손해 보일 정도의 participation explosion이 시작되고 있어요.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AI로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되면, 평범한 제품의 설 자리가 사라져요. 하지만 동시에, 위대한 제품의 프리미엄은 역사상 가장 커집니다. 글에서는 이걸 “위대한 분류(Great Sorting)“이라 부르는데, 저는 이게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속도는 AI가 만들어주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조각들을 하나의 훌륭한 제품으로 엮어내는 건 여전히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니까요.

    특히 와닿은 건 산호(Coral)-조류(Algae)의 비유입니다. 수년간 축적된 도메인 데이터와 워크플로우가 산호(Coral)처럼 기반을 이루고, AI Agent가 그 위에서 조류(Algae)처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구조. 핵심은 이겁니다 — Agent가 Data Context Layer를 하루아침에 만드는 건 불가능하고, 반대로 Data Context Layer가 최고 수준의 Agent를 만드는 것도 전혀 다른 역량이라는 것. 둘 사이의 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에요.

    채널톡에서 이걸 매일 체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년간 쌓아온 수십만 고객사의 상담 데이터, CRM 컨텍스트, 운영 워크플로우 — 이게 산호예요. 기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가 워크플로우를 표준화해서 효율을 줬지만 기업들을 비슷하게 만들었다면, AI 에이전트 ALF는 그 구조적 안정성 위에서 각 비즈니스의 맥락에 맞게 유연하게 작동합니다. 이 데이터 없이는 복제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에요.

    AI 시대에 소프트웨어가 죽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소프트웨어가 죽는 겁니다. 그리고 그 sorting의 기준은 결국, 대체 불가능한 데이터 위에 얼마나 뛰어난 AI 경험을 올릴 수 있느냐가 될 거예요. 채널톡에서는 다음 세대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위대한 제품을 “Future Classic Product”라고 불러왔습니다. AI 시대에도 이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위대한 제품은 여전히 희소합니다.

  • Crosby — 도구를 파는 게 아니라, AI 로펌이 되겠다는 회사

    스타트업에서 법무를 맡아본 사람이라면, 영업 계약서 검토가 병목이 되는 경험을 해봤을 겁니다. 영업팀은 이번 주에 닫고 싶고, 상대방은 MSA 수정본을 보내왔고, 나는 이 계약서 말고도 검토할 게 열 개쯤 쌓여 있고. 외부 로펌에 넘기자니 느리고 비싸고, 혼자 다 보자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Crosby의 CEO Ryan Daniels도 정확히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한 스타트업에서 유일한 법무 담당자로 일하며, 회사가 10명에서 100명으로 성장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영업 계약서에 쏟아야 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계약 검토 병목이었다고.

    그래서 그가 만든 회사는 AI 도구가 아니라, AI 로펌입니다.


    Crosby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Crosby는 2025년 초에 설립된 뉴욕 기반의 등록 로펌입니다. 다만 작동 방식은 전통 로펌과 완전히 다릅니다.

    고객은 Slack이나 이메일로 계약서를 보냅니다. Crosby의 플랫폼 “Bailiff”가 이를 자동으로 접수하여 계약 유형, 우선순위, 예상 처리 시간을 판단하고, 적합한 변호사에게 수초 내에 라우팅합니다. AI 에이전트가 계약서를 분석하고, 모든 조항을 시장 표준과 비교하여 수정 제안(redline)을 생성합니다. 해당 고객의 과거 선호도와 폴백 포지션이 자동으로 반영되므로, 매번 반복 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속 변호사(대부분 빅로 출신)가 최종 검토한 뒤 돌려보냅니다.

    중위 처리 시간 58분. 건당 고정 요금 약 $400. 빌러블 아워 없음.

    MSA, NDA, DPA — B2B 영업에서 매일 마주치는 계약서들이 주력입니다. Daniels는 복잡도의 스케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NDA는 2페이지, MSA는 15페이지인데, 협상해야 할 조항이 훨씬 많아서 복잡도는 80배. M&A 계약은 거기서 다시 1,000배. Crosby는 지금 NDA와 MSA/DPA에 집중하고 있고, M&A 계약은 아직 범위 밖입니다.

    현재 AI 에이전트의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로펌의 인력 구조를 그대로 AI로 매핑하고 있는데, 지금은 들어오는 모든 업무를 분류하고 라우팅하는 “패러리걸(법률 사무보조) 에이전트”를 구축한 상태이고, 다음 단계는 주니어 어소시에이트, 시니어 어소시에이트, 주니어 파트너 수준의 AI 에이전트를 순차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로펌의 인력 피라미드를 AI 에이전트 피라미드로 전환하는 셈이죠.

    고객 목록에는 Cursor, Polymarket, Clay, Unify 같은 실리콘밸리 최고 성장 기업들이 올라 있고, 월간 30%씩 신규 GTM팀이 온보딩되고 있다고 합니다.

    Daniels는 Cooley(실리콘밸리 대표 테크 로펌) 어소시에이트 출신으로, 이후 HiredScore(Workday에 인수)와 A.Team(파운딩 팀, $60M 펀딩) 등 스타트업에서 GC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CTO John Sarihan은 Ramp(핀테크 유니콘)의 초기 엔지니어링 리더 출신이고요.

    Sequoia Capital이 시드($5.8M)를 리드했고, 4개월 만에 Index Ventures와 Bain Capital Ventures가 리드한 시리즈 A($20M)를 클로즈했습니다. Daniels의 전 직장인 Cooley와 Stripe CEO Patrick Collison도 시리즈 A에 참여했습니다.


    빌러블 아워(Billable Hour)의 사망, 그리고 데이터 모트(Data Moat)

    Crosby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장 급진적인 부분은 기술이 아니라 과금 체계입니다.

    빌러블 아워(Billable Hour)는 1950년대에 보급된 비교적 새로운 관행이지만, 70년간 놀라울 정도로 견고했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AI 자동화와 충돌합니다. 일을 더 빨리 끝내면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AI가 검토 속도를 10배 높이면, 빌러블 아워 모델에서는 변호사의 매출이 10분의 1로 줄어듭니다. 기존 로펌이 AI를 적극 도입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과금 모델 자체가 AI 도입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인 거죠.

    Crosby는 문서 건당 고정 요금을 적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더 빠르게 처리할수록 마진이 올라가는 구조. 핵심 지표도 아예 다릅니다. 기존 로펌의 핵심 지표가 “빌러블 아워 극대화”라면, Crosby의 핵심 지표는 TTA(Total Turnaround Time, 총 처리 시간) 입니다. 이 수치를 줄이는 것이 곧 회사의 성장 동력이라는 건데, 기존 로펌과 인센티브 방향이 정확히 반대입니다.

    TTA와 함께 HURT(Human Review Time, 인간 검토 시간)라는 지표도 추적합니다. 변호사가 직접 개입하는 시간을 줄이되 품질은 유지하는 것. 다만 속도만 추구하다 고객의 협상력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별도의 가드레일 지표도 운영한다고 합니다. 법률적으로 정확한지뿐 아니라, 고객의 위험 프로필과 협상 이익에도 부합하는지까지 확인하는 겁니다.

    이 과금 모델이 가능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 계약서가 몇 번이나 왔다갔다할지”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Crosby는 협상 결과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데, Sequoia 팟캐스트에서 CTO Sarihan의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특정 협상에서 델라웨어 준거법을 수용할 확률이 얼마인지를 실제 수치로 제시할 수 있다.” 변호사의 감(vibes)과 휴리스틱을 정량화하는 것이 Crosby의 기술적 야심입니다.

    법인 구조도 독특합니다. Crosby Legal Inc.(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하는 테크 회사)와 Crosby Legal PLLC(법률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라이센스를 가진 로펌)의 이중 구조입니다. 전통적 로펌 파트너십은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고(지분 판매 불가), 파트너만이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투기적 기술 투자를 할 인센티브도 수단도 없습니다. 이중 법인 구조는 테크 회사로서의 속도(VC 투자, 빠른 이터레이션)와 로펌으로서의 자격(변호사-의뢰인 특권, 과실보험, 법률 자문 제공 권한)을 동시에 확보합니다.

    그리고 로펌이라는 구조는 하나 더 중요한 것을 제공합니다. 기밀 계약 데이터에 대한 접근입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이 훈련 데이터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실제 고객 계약서를 학습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Daniels의 표현을 빌리면, “공개된 최고의 법률 데이터셋은 SEC 공시에 첨부되는 EDGAR인데, 이미 과도하게 활용되었고 소규모 기업의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서비스를 수행할수록 독점 데이터가 쌓이고, 모델이 좋아지고, 고객이 더 유입되는 플라이휠. 서비스 자체가 데이터 모트(Data Moat)가 되는 구조입니다.


    90%에서 99%까지: AI와 변호사의 역할 분담

    Crosby에서 AI가 하는 일과 변호사가 하는 일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CTO Sarihan은 팟캐스트에서 핵심 기술 과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90% 정확도를 거의 무료로 달성한다. 위험한 함정은 여기서 만족하는 것이다. 90%에서 99%, 99.99%로 가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 그리고 이 갭을 메우는 핵심 레버가 고객별 fine-tuning과 eval이라고 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렬(alignment)” 대상에 대한 관점입니다. “두 명의 합리적인 변호사도 하나의 계약서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일반적인 RLHF(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로 정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개인에게 정렬해야 한다. 그 사람은 내적으로 일관적이기 때문이다.” 즉, 범용 모델을 법률 일반에 맞추는 게 아니라, 특정 변호사 한 명의 판단 기준에 맞추는 방식. 그래야 ‘맞다/틀리다’를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겁니다.

    AI가 특히 강점을 발휘하는 영역은 명확합니다. 요약과 설명 작성. “이 언어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를 상대방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코멘트를 AI가 생성하면, 상대방이 수정 이유를 이해하고 수용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집니다. 5~6번 왔다 갔다 하던 협상이 2~3번으로 줄어드는 거죠. 또한 계약 협상은 회사별로 매우 특수한데, 고객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 — 예를 들어 Cursor가 IDE를 어떻게 판매하는지, Clay가 영업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 를 바탕으로 변호사에게 필요한 컨텍스트를 적절한 시기에 계약의 적절한 부분에 제공하는 것도 AI의 역할입니다.

    반면 AI의 약점도 명확합니다. Sarihan은 “commercially reasonable”과 “reasonable”의 차이를 예로 듭니다. 이 두 표현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이지만, 임베딩 공간에서는 매우 유사하게 보입니다. 이런 미묘한 법률 언어의 차이는 여전히 변호사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모든 계약서에 대해 소속 변호사가 AI 산출물을 최종 검토합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프로세스입니다. Daniels는 “변호사 없이는 사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습니다. 법률 서비스는 경제학에서 “신용재(credence good)” — 소비한 이후에도 품질을 소비자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고 전문가의 평가에 의존해야 하는 재화 — 로 분류됩니다. CEO도 자기 법률 검토의 품질을 독립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Crosby는 등록된 로펌이며, 과실보험(malpractice insurance)을 보유하고, 모든 작업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집니다. 이것이 단순 AI 도구와의 근본적 차이입니다.

    한 가지 더. Crosby 내부에서는 변호사들이 직접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AI를 가르치도록 적극 장려한다고 합니다. 기존 로펌에서는 변호사들이 빌러블 아워로 평가되지만, Crosby에서는 “업무에 대한 메타 인식을 갖고 측정하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 변호사가 Miro를 활용하여 전체 업무 프로세스 맵을 만들고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례가 엔지니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복적인 업무 속에서 더 큰 그림을 보는 변호사. 이것이 Crosby가 찾는 인재상입니다.


    코파일럿에서 오토파일럿으로

    Crosby를 이해하려면, Sequoia Capital 파트너 Julien Bek이 최근 발표한 “Services: The New Software“라는 글의 프레임을 알아야 합니다.

    코파일럿은 AI 도구를 전문가에게 팝니다. 변호사가 여전히 일을 하되, 더 빠르게. Harvey가 대표적입니다. 2025년 말 기준 ARR $190M에 밸류에이션 $11B. AmLaw 100 로펌 과반을 고객으로 확보한 몬스터 기업이죠. 하지만 Harvey는 로펌에 도구를 파는 것이지, 법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토파일럿은 AI가 업무 결과물을 최종 고객에게 직접 팝니다. Crosby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고객은 로펌이 아니라 계약서가 필요한 기업의 영업팀, RevOps, 사업부입니다.

    Julien Bek의 핵심 통찰은 이겁니다. 어떤 직종에서든 도구 예산보다 업무 수행 예산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소프트웨어에 $1을 쓸 때, 서비스에는 $6을 씁니다. 코파일럿은 $1 시장을 놓고 경쟁하지만, 오토파일럿은 $6 시장을 처음부터 차지합니다.

    그리고 코파일럿에서 오토파일럿으로의 전환은 기존 코파일럿 기업이 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Harvey가 Crosby처럼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면 자기 고객인 로펌과 경쟁하게 됩니다. 혁신자의 딜레마. 이것이 Crosby 같은 “처음부터 오토파일럿으로 출발한” 기업의 구조적 이점입니다.

    Daniels 자신도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Sequoia 팟캐스트에서 “계약은 비즈니스의 API”라는 비유를 씁니다. API가 소프트웨어 시스템 간의 인터페이스라면, 계약은 비즈니스 간의 인터페이스다 — 그런데 이 인터페이스가 워드 프로세서 이후 40년간 거의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 비전은 “에이전트 vs 에이전트” 협상입니다. 양쪽 당사자가 각자의 AI 에이전트를 두고, 각 에이전트에 위험 허용치, 협상 한계, 바텀라인을 입력해두면, AI끼리 계약 조건을 사전 시뮬레이션하여 합의점을 자동으로 찾아내는 시나리오. 이때 양측 데이터는 완전히 분리되어 — 로펌에서 팀 간에 정보 차단벽(Chinese Wall)을 세우는 것처럼 — 작동하고, 협상 과정은 감사 가능한 기록으로 남습니다. 인간 변호사는 예외적이고 고판단이 필요한 조항에만 개입하고요.


    한국에서 이게 왜 중요한가

    솔직히 말하면, Crosby의 모델이 한국에 내일 당장 복제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법률 서비스 시장 구조가 많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Crosby가 보여주는 몇 가지 구조적 전환은 한국에서도 이미 시작되었거나, 곧 시작될 것들입니다.

    과금 모델의 문제. 한국 대형 로펌에서도 빌러블 아워는 지배적입니다. AI가 검토 속도를 극적으로 높이면, 이 과금 모델은 AI 도입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이 됩니다. “더 빨리 끝내면 매출이 줄어드는” 시스템에서 변호사가 AI를 적극적으로 쓸 인센티브가 있을까요? Crosby의 건당 과금 전환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고, 어쩌면 더 어렵고 더 중요한 혁신입니다.

    스타트업 인하우스의 현실. 한국 스타트업의 인하우스 변호사는 대부분 1~3명입니다. 혼자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커버해야 하는 범위는 계약, 노무, 개인정보, 지적재산, 투자, 규제 대응까지 엄청나게 넓습니다. 외부 로펌에 NDA나 MSA 검토를 의뢰하면 건당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Crosby 모델 — AI가 1차 처리하고, 변호사가 최종 확인하고, 건당 고정 요금 — 은 이 상황에서 직접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법률 사각지대”의 해소. Daniels는 미국 로펌의 92%가 개인 고객(양육비, 임대차 계약 등)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로펌인데, 이들의 고객은 사실상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AI가 이 영역을 자동화하면, 변호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현재 아무도 수행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법률 서비스”가 열린다는 겁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 계약, 근로 계약, 소규모 사업자의 약관 검토 등 “변호사를 쓰기엔 비싸고, 안 쓰기엔 위험한” 영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합니다.

    “코파일럿 vs 오토파일럿” 프레임의 확장. 이 프레임은 법률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회계, 세무, 보험, 컨설팅, 고객 서비스 — 지식 노동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같은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한국 리걸테크 시장은 아직 코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 전환은 생각보다 빠르게 올 수 있습니다.


    의미와 열린 질문들

    Crosby에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닙니다. 모든 계약서에 변호사가 개입해야 하므로 순수 소프트웨어 같은 스케일링은 불가능하고, 관할권별 면허 문제가 글로벌 확장의 제약이며, NDA에서 MSA로의 복잡도 점프(80배)를 넘어 M&A 계약(1,000배)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AI 모델 자체가 상품화되면 기술적 차별화가 약화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Daniels는 이 전환의 끝을 이렇게 그립니다. 변호사가 시간당 2건의 계약을 검토하던 것을 500건으로 늘릴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미래에는 시니어 파트너가 AI 에이전트 대군을 관리하는 쪽으로 역할이 바뀌고, 대규모 법무팀보다는 초전문화된 AI 퍼스트 회사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그는 이것을 “법률 산업의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이 회사가 중요한 이유는 특정 리걸테크 스타트업의 성패 때문이 아닙니다. Crosby가 보여주는 것은, AI가 도달한 어떤 전환점에 대한 증거입니다. “전문가를 돕는 도구”에서 “전문가의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 그리고 그 전환이 일어나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과금 모델, 법인 구조, 신뢰 메커니즘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

    한국에서는 아직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이 논의의 중심입니다. Crosby의 사례는 그 질문에 대한 더 정교한 답을 제시합니다. AI는 변호사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AI를 내장한 새로운 형태의 법률 서비스 조직이, 기존 형태의 법률 서비스 조직을 대체합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 전환에서 기회를 보는 사람과 위협만 보는 사람을 가르는 지점일 겁니다.

  • 안락한 중간 지대는 끝났다: a16z가 말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두 갈래 길

    ‘소프트웨어 다 죽는다’, ‘SaaS는 붕괴한다’…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전망이 나왔습니다: There are only two paths left for software

    미국의 Top VC인 a16z의 David George가 던진 경고는 단순합니다. 안락한 중간 지대(Safe Middle Ground)는 끝났으며, 이제 소프트웨어 기업에겐 오직 두 갈래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1. 12~18개월 내, 진짜 AI 신제품으로 성장률을 10%p 이상 끌어올리거나.
    2. 주식 보상(SBC)을 포함한 ‘실질’ 영업이익률을 40% 이상으로 재건하거나.

    이 사이 어딘가에서 “적당한 성장과 적당한 마진”을 유지하며 표류하고 있다면, 시장은 더 이상 당신의 기업을 ‘성장주’로 대접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글이 유독 진지하게 읽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 많은 기업이 FCF(잉여현금흐름) 개선을 말하지만, 주식 보상(SBC)을 실제 비용으로 처리하고 나면 여전히 무인지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장은 느리고 지분은 희석되는, 주주에게는 최악의 구간입니다.
    • 인원을 10% 줄이는 식의 조직도 모서리 다듬기(trims the edge of the org chart)는 답이 아닙니다.
    • 비즈니스 모델을 좌석 기반(Seat-based)에서 성과/소비 기반(Token-based)으로 통째로 바꾸는 강한 형태의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기존 제품에 채팅 UI만 얹는 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 12개월 안에 전체 매출 곡선의 기울기를 바꿀 수 있는 AI 네이티브 제품 출시에 R&D의 50%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채널톡은 2023년부터 단순히 기능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제품과 비즈니스를 AI 에이전트 중심으로 재편해왔습니다. 우리는 상담을 돕는 도구를 만드는 회사에서 머물지 않고, AI agent로 상담 시장을 변혁하는 회사로 진화해왔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비관론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결국 이 격변 속에서 누가 고객의 본질적인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입니다. 순탄한 여정은 아니겠지만, 채널톡은 이미 그 해답을 실행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산업의 변곡점을 함께 만들어 갈 인재를 모시고 있습니다. 안락한 중간 지대보다 치열한 최전선을 즐기는 분이라면, 지금 채널톡 채용 페이지를 확인해 주세요!

  • 2026 사내변호사의 현실, 그리고 변화의 방향

    AI 기반 계약 자동화 플랫폼 Juro가 매년 인하우스 변호사 현황을 조사한 2026년 “State of In-House” 리포트를 발간했다.

    미국과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16개국의 인하우스 변호사 132명 대상 Survey로,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Head of Legal 또는 General Counsel(“GC”)이며, 43%가 2~5명 규모 팀, 30%가 1인 법무로 일하고 있다. 스케일업·테크 기업 비중이 높은 표본이다.

    나라는 달라도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사내변호사의 삶은 어디서나 팍팍하다.)

    인하우스 변호사의 일과 삶 — 힘든데 보람 있고, 보람 있는데 힘들다

    스위치 오프가 안 된다

    숫자부터 보면 꽤 무겁다.

    • 77%가 정규 시간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일하고 있으며, 18%는 거의 매일 초과 근무를 한다.
    • 95.5%가 연차나 병가 중에도 법률 업무를 처리한다. 36%는 대부분의 휴가 기간 동안 그렇다고 답했다.

    Codat의 CLBO Rebecca McKenzie는 이렇게 말한다:

    A lot of the findings around long hours and the inability to switch off really resonate with me, especially coming from a startup. I had a relatively relaxed private practice experience, but the hours are definitely longer now. I’m more senior, we run a deliberately lean team, and budget pressure limits our ability to use external counsel. For the first two to three years here, I worked through every holiday.” (장시간 근무와 스위치 오프 불가에 대한 결과가 정말 공감된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 더 그렇다. 로펌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는데, 지금은 더 시니어이고, 팀은 의도적으로 린하게 운영하며, 예산 압박으로 외부 자문 활용도 제한적이다. 처음 2~3년은 매 휴가마다 일했다.)

    번아웃은 심화되고 있다

    작년 서베이에서 약 25%가 지난 12개월간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는데, 올해는 압박이 더 심해졌다.

    • 52%가 스트레스나 번아웃으로 인해 현재 역할을 떠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Juro의 GC Michael Haynes는 이 패턴이 왜 깨기 어려운지를 설명한다:

    Many in-house lawyers are anxious overachievers by nature. They’re high performers and get a lot of satisfaction from performing well. And technology now lets them deliver far more in the same amount of time, and you can get a kick out of that. The problem is that this mode of striving to achieve isn’t sustainable on its own. If it becomes your only driver, you can find it harder to switch off or find balance elsewhere in life. And that’s where burnout often starts.” (많은 인하우스 변호사들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과잉 성취자다. 높은 성과를 내고 거기서 만족감을 얻는다. 기술 덕분에 같은 시간에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고, 그것도 쾌감이 된다. 문제는 이 성취 추구 모드가 그 자체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동력이 되면 스위치를 끄기가 어려워지고, 삶의 다른 영역에서 균형을 찾기 힘들어진다. 번아웃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런데 사기는 높다

    여기서 반전이 있다.

    • 55%가 팀 사기를 긍정적으로, 11%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90%가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이 의미 있다고 느끼며, 25%는 매우 강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 68%가 다시 선택해도 인하우스 커리어를 가겠다고 했고, 81%가 후배 변호사에게 인하우스를 추천하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리포트는 답이 근무 조건이 아니라, 일 자체를 경험하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비즈니스에 가까이 있고, 자기 일의 ‘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Beamery의 GC Nicolette Nowak:

    We didn’t become lawyers because we wanted to coast through life — we actively chose a mentally challenging profession.” (편한 삶을 원해서 변호사가 된 게 아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도전적인 직업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Tessl의 GC Stephanie Dominy도 비슷한 시각이다:

    There is a self-selecting group of people who prefer to work this way, and their expectations are aligned with that. They know they are not opting into a nine-to-five.”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자기 선택적 그룹이 있고, 그들의 기대치는 그에 맞춰져 있다. 9 to 5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2026년 전망 — 과도기의 압박

    전문가들은 2026년 인하우스 법무의 웰빙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Dominy는 현재의 압박이 AI와의 과도기에서 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If pressure in the role is rising, it is likely linked to AI and the uncertainty around its potential. In-house legal teams are waiting to see whether AI can unlock more capacity before hiring. That creates increased workload in the short term, before the benefits are fully realised. You can save some time today, but not yet enough to offset the time you need to invest in learning how to use AI.” (역할의 압박이 커지고 있다면, AI와 그 잠재력에 대한 불확실성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하우스 팀은 채용 전에 AI가 용량을 확보해줄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업무량이 늘어난다. 오늘 시간을 좀 아낄 수는 있지만, AI 사용법을 배우는 데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상쇄할 만큼은 아직 아니다.)

    Haynes의 비유가 특히 날카롭다:

    I fear that most legal teams still won’t take the time to think strategically about their workload, and to prioritise investing in the technology and processes needed to scale their impact over the coming years. Instead, many of the teams reporting burnout will focus all their energy on trying to swim to stay afloat, rather than dedicating time and energy to build a boat.” (대부분의 법무팀이 여전히 업무를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향후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프로세스에 투자하는 시간을 내지 못할까 봐 우려된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팀 대부분은 배를 만들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기보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헤엄치는 데만 온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Nowak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What is the point in all of the tools coming into play if we still work this much? The time we’re saving just fills with other work. Why?” (이 많은 도구가 도입되는데 여전히 이만큼 일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아낀 시간은 그냥 다른 일로 채워질 뿐이다. 왜?)

    로펌과의 관계 — AI가 빌러블 아워의 가장 약한 전제를 드러냈다

    리포트에서 가장 날카로운 파트다. LLM이 법률 업무를 가속화하면서, 인하우스 팀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법률 결과물을 더 빨리 만들 수 있다면, 여전히 같은 비용을 내야 하는가?

    리포트의 표현을 빌리면, “AI가 빌러블 아워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 가장 약한 전제 — 시간이 여전히 가치의 신뢰할 만한 대리 지표라는 것 — 를 드러냈다.”

    로펌의 AI 도입은 블랙박스
    • 로펌이 AI를 도입하고 이를 공개한 곳: 7%
    •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안 알려준다”: 38.6%
    • “전혀 알 수 없다”: 38.6%

    인하우스 변호사 대다수는 로펌의 AI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AI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것이 가치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이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효율성의 이득은 누가 가져가는가
    • 약 80%가 “로펌이 AI로 빨라졌으면 비용이 줄어야 한다”고 생각
    • 84%는 AI 도입으로 인한 비용 절감을 전혀 체감하지 못함
    • 11%는 비용이 오히려 올랐다고 답함
    • 72%는 AI 효율성의 이득을 로펌이 전부 또는 대부분 가져간다고 인식
    • 이득이 공유된다고 보는 응답자는 겨우 2%
    그런데 가치 인식은 올랐다 — 왜?

    로펌에 대한 “좋다(Good)” 평가가 전년 53%에서 66%로 올랐다. 비용은 안 줄고, 투명성은 낮은데 가치 인식이 오른 것은 직관에 반한다. 리포트는 세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

    첫째, 빌링 외 부가가치가 늘었다. McKenzie는 로펌이 웨비나, 뉴스레터 등을 통해 청구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무료’ 가치를 더 많이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둘째, 아웃소싱되는 업무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여기서 Haynes의 프레임이 인상적이다:

    There are only three reasons to outsource legal work. First, expertise and judgement. Second, capacity. Third, insurance… AI is shrinking the second category. By using technology to do work faster and at scale, we no longer need to turn to law firms for capacity.” (로펌에 일을 보내는 이유는 세 가지뿐이다. ① 전문성 — 내가 답할 수 없는 것, ② 용량 —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는 것, ③ 보험 — 답은 알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서 세컨드 오피니언이 필요한 것. AI가 줄이는 건 두 번째 ‘용량’ 영역이다.)

    용량 업무가 인하우스로 돌아오면, 로펌에는 고난도·고위험 업무만 남는다. 자연히 가치를 높게 느끼게 되고, 비용이 올라도 납득이 되는 구조다.

    셋째, 로펌도 아직 AI 비용 절감을 실현하지 못했을 수 있다. Dominy의 분석이다:

    It is possible that firms are producing higher-quality work with AI, but are not passing on the savings because they have not unlocked them yet. Many are still implementing tools, learning how to use them, and training teams.” (로펌이 AI로 더 높은 품질의 결과물을 내고 있을 수 있지만, 절감분을 넘기지 않는 건 아직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많은 곳이 아직 도구를 도입하고, 사용법을 배우고, 팀을 교육하는 단계다.)

    이 관점은 Harvard Law School의 Center on the Legal Profession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빌러블 아워 모델이 AI 도입 비용을 회수하는 메커니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터뷰한 로펌 중 AI 투자 비용을 고객에게 직접 전가할 계획이 있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인하우스 팀이 실제로 원하는 것

    인하우스 변호사들이 빌러블 아워의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은 노력(effort)이 아니라 결과(outcome)를 반영하는 가격 모델이다.

    Haynes는 AI가 비용과 가치 사이의 오래된 단절을 드러냈다고 본다:

    Traditional hourly billing models are risk-averse and defensive. They protect firms’ margins by being directly linked to input costs, but they don’t reflect value for the client… AI should change that dynamic. It allows firms to deliver the same or better outcomes with far lower input costs. That makes value-based pricing more viable, and potentially more profitable, than ever before.” (전통적 시간 기반 빌링은 위험 회피적이고 방어적이다. 투입 비용에 직결되어 로펌의 마진을 보호하지만, 고객 입장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 AI가 이 역학을 바꿔야 한다. 훨씬 낮은 투입 비용으로 같거나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치 기반 가격 모델을 그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하고, 잠재적으로 더 수익성 있게 만든다.)

    Nowak은 이 대화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Law firms have been reusing templates for years and billing significant time for generic legal advice. AI is another example of savings not being redistributed. That said, I do think AI and increased competition are forcing firms to change how they operate.” (로펌은 수년간 템플릿을 재사용하면서 일반적 법률 자문에 상당한 시간을 청구해왔다. AI는 절감분이 재분배되지 않는 또 하나의 사례다. 다만, AI와 경쟁 심화가 로펌의 운영 방식을 바꾸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본다.)

    인소싱과 인하우스 AI 도입 — 자신감이 눈에 띄게 올랐다

    예산은 줄고, 수요는 늘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법무 예산은 여전히 압박 아래 있다. 인하우스 변호사의 1/3만이 팀 성장을 기대하며, 66%는 팀 규모가 동일하거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동시에 비즈니스의 법무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많은 인하우스 팀이 내부적으로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에 대해 오히려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

    • 44%가 가상의 외부 법률 예산 50% 삭감에도 자신 있거나 어느 정도 자신 있다고 답했다.
    • 91%가 법무팀이 AI 수혜에 있어 다른 부서만큼 또는 그 이상 유리하다고 응답했다.

    예산은 줄었는데 자신감이 오른 이유?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도구를 가지고 일하고 있다. 작년 서베이에서 99% 이상이 AI가 1년 안에 역할을 바꿀 것이라 믿었고, 90% 이상이 이미 Claude나 Gemini 같은 LLM을 매일 또는 매주 사용하고 있었다.

    가장 보수적인 조직 중 하나인 법무팀이 이 정도의 자신감을 보인 것은 상당한 변화다.

    업무를 다시 안으로 가져오기

    향후 2년을 내다봤을 때, 대부분의 응답자는 현재 로펌에 보내는 업무 중 최소 일부를 AI로 내부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 47%가 현재 아웃소싱 업무의 11~25%를 내부 흡수 가능하다고 추산
    • 20%는 25% 이상이 가능하다고 보며, 그 중 9%는 절반 이상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 기대는 경험에 기반해 있다. AI를 법률 업무에 실제로 써본 응답자 중 56.8%가 긍정적 또는 주목할 만한 영향을, 16%가 매우 긍정적 영향을 보고했다.

    McKenzie는 이 트렌드를 직접 목격하고 있다:

    I’ve seen real acceptance and adoption of AI over the last six months. Five years ago, the focus was on self-serve and finding tools to support it. Now, enterprise LLM licenses are already in place across the business, and we’re actively encouraged to use them. People may still be battling for headcount and budget, but 10–15% of day-to-day repetitive work can already be lifted using AI that’s already there.” (지난 6개월간 AI에 대한 실질적 수용과 도입을 목격했다. 5년 전에는 셀프서브와 이를 지원할 도구를 찾는 것이 초점이었다. 지금은 기업용 LLM 라이선스가 이미 회사 전체에 깔려 있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권장받는다. 여전히 인력과 예산을 위해 싸우고 있지만, 일상 반복 업무의 10~15%는 이미 있는 AI로 덜어낼 수 있다.)

    계약 업무가 자동화에 가장 적합하다

    법무팀 전체에서 계약 업무는 일상 업무량의 불균형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측 가능한 형식으로 도착하고, 정해진 플레이북을 따르며, 법적 복잡성이 아니라 단순한 볼륨 때문에 병목이 된다.

    정형 계약을 법무팀의 일상적 관여 없이 처리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 54%가 “가능하다”
    • 13%가 “이미 하고 있다”
    • 22%가 “아마 아니다”
    • 9%가 “확실히 아니다”

    약 2/3가 계약 셀프서비스를 현실적으로 보고 있으며, 상당수가 이미 실행 중이다.

    인하우스 변호사의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다

    AI가 반복적이고 낮은 가치의 업무를 치워주면서, 많은 팀이 드디어 다르게 운영할 공간을 찾고 있다. McKenzie는 이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As AI tooling removes low-value work from lawyers’ desks, I think we’ll see more T-shaped lawyers emerge. People are regaining the headspace to become the business leaders they want to be and are well placed to lead with a more holistic, bird’s-eye view of the organisation.” (AI 도구가 낮은 가치의 업무를 치워주면서, T자형 변호사가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비즈니스 리더가 될 여유를 되찾고 있고, 조직 전체를 조감하는 시야로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즉 2026년의 인하우스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하느냐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판단력을 적용하고, 방향을 설정하고, 법률 의사결정을 비즈니스 전체로 확장하느냐로 평가될 것이다.

    다만 Haynes는 가장 큰 이득이 단순히 새 도구를 켜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Many in-house teams are chasing the efficiency gains AI promises, but aren’t prioritising time to engage strategically with technology and processes to achieve them. Scaling your impact as a lawyer requires deliberate time investment in processes and systems.” (많은 인하우스 팀이 AI가 약속하는 효율성을 쫓고 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 기술과 프로세스에 전략적으로 관여할 시간을 우선하지 않는다. 변호사로서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대한 의도적인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채용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이 변화는 채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력 연수, 이전 로펌 경력 같은 전통적 시니어리티 지표가 영향력의 예측자로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Dominy의 예측이 인상적이다.

    I do not think what someone did ten years ago is as relevant anymore. What matters more is what they have achieved in the last two years, their mindset, and how they think about the future of law. If we hire the same profiles as before, we will not fully benefit from today’s technology. The next hire might be a legal engineer rather than a traditional lawyer.” (10년 전에 뭘 했는지는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최근 2년간 무엇을 했고, 마인드셋은 어떤지, 법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다. 기존과 같은 프로필로 채용하면 오늘의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 다음 채용은 전통적 변호사가 아니라 legal engineer일 수도 있다.)

    리포트의 마무리도 좋다 — “대부분의 경우, 수년 전에 했던 일이 변호사로서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오늘 의도적으로 쌓고 있는 역량이 결정할 것이다.

    한국 사내변호사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포인트

    미국/EMEA 대상이고 스케일업·테크 기업 비중이 높아서, 한국 상황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빌러블 아워 모델의 비중, 인하우스 팀의 규모와 구조, AI 도입 속도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방향성은 시차를 두고 한국에도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헤엄치기”에서 “배 만들기”로. Haynes의 비유가 핵심이다. 번아웃을 호소하면서도 전략적 투자를 하지 못하는 팀과, 시간을 내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팀의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한국 법무팀도 같은 갈림길에 있다.
    • 변호사의 가치 기준이 이동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처리하느냐”에서 “어디에 판단력을 집중하느냐”로. 리포트가 말하는 T-shaped lawyer — 법률 전문성이라는 깊이 위에 비즈니스와 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변호사상이다.
    • 로펌과의 역할 분담이 재정의될 수 있다. AI로 ‘용량’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면, 로펌에 기대하는 것은 진짜 전문성과 고위험 판단뿐이 된다. 가치 기반 가격 모델에 대한 논의도 한국에서 언젠가는 본격화될 구조적 변화다.
    • AI가 절약하는 시간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Nowak의 질문이 가장 근본적이다 — “아낀 시간이 다른 일로 채워질 뿐이라면, 왜?” AI 도입의 목적이 단순히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인지. 한국의 AI 기본법 시행과 맞물려, AI compliance·legal ops 역할의 수요가 구조적으로 커질 텐데, 이 질문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 “법률 + AI” 교차점에 서는 사람이 필요해지고 있다. Legal engineer, AI compliance officer —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법률 지식 위에 기술적 이해를 갖춘 사람의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다.

    동료 사내변호사분들, 다들 고생이 많다.

  • AI Native Legal Team, AI 중심 법무 조직이라는 화두

    요즘 법무조직을 고민하다 보면, 마음속에 자꾸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AI가 정말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많은 팀들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데… 법무조직은 이 변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야 할까?

    최근에 Guy Alvarez의 The Rise of AI-Native Law Firms란 글을 읽고, Canva의 CLO가 공개한 AI-Native Legal Team Charter란 자료까지 살펴보면서, 제 고민이 조금 더 선명해졌습니다.

    “법무팀의 미래는 ‘AI를 잘 활용하는 팀’을 넘어서, ‘AI를 중심에 두고 다시 설계된 팀’이 될 가능성이 크겠구나.”

    아래 내용은 그 고민의 기록이자, 앞으로 법무조직이 어떤 방향을 향해 가게 될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탐색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가? → 그건 핵심 질문이 아니다

    AI 이야기를 하면 항상 이런 질문이 따라옵니다.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거 아니야?”

    확실히 AI가 잘하는 건 명확합니다. 방대한 법령·판례를 몇 초 만에 정리하고, 계약서나 정책의 차이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초안과 대안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일.

    반대로, 사람이 해야 하는 일도 분명합니다. 비즈니스의 맥락을 읽고, 어떤 리스크가 “진짜 중요한 리스크”인지 판단하고, 관계를 설계하고, 조직 안팎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 같습니다: “AI가 많은 일을 대신해줄 때, 법무 조직은 어떤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을까?”

    결국 AI 덕분에 반복 업무를 덜어낼수록, 법무팀은 판단, 전략, 커뮤니케이션, 관계와 같은 더 핵심적인 영역에서 가치를 낼 수 있게 됩니다.

    Canva가 보여준 힌트: AI-Native와 AI-Assisted의 차이

    Canva의 CLO가 공유한 AI-Native Legal Team Charter는 제가 평소에 생각해오던 질문들에 작은 방향성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확합니다: AI-Native는 ‘도구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원칙들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 People Centered: 인간 중심. AI는 인간을 강화하는 역할에 그친다.
    • AI Mindset: 무조건 쓰는 게 아니라, 계속 의심하고 검증하며 함께 사고한다.
    • Built-In, Not Bolted-On: 프로세스 처음부터 AI 활용을 전제로 설계한다.
    • Strategic Relay: AI와 사람의 역할 분담을 명시적으로 설계한다.
    • Company Brain: 조직의 지식이 “흩어져 있는 메모”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학습되는 하나의 지적 시스템이 되도록 만든다.

    왜 작은 팀이 더 먼저 AI Native로 갈 수 있을까

    Guy Alvarez는 곧 등장하게 될 AI-Native Law Firm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AI가 기본값(default)인 운영모델
    • 전통적인 “어쏘-파트너 피라미드”의 축소
    • 소규모 팀이 대규모 케이스를 처리하는 구조
    • 시간 기반 과금 모델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 데이터·지식 기반의 운영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인하우스 법무팀이야말로 AI-Native로 전환하기 좋은 조건을 가진 조직이 아닐까?

    왜냐하면 작은 팀일수록 구조 전환이 빠르고, 제품·기술팀과 가까워서 실험이 가능하고, 의사결정 사이클도 훨씬 짧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타트업의 법무팀이라면, 이 변화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 일찍 고민해야 하는 화두

    AI가 법무조직에 가져올 변화에 대해 누구도 정답 알고 있진 않습니다. (세상에 없는 세 가지: 공짜, 비밀 그리고 정답) 오히려 지금도 많은 부분이 실험이고, 시행착오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은 있습니다: AI를 잘 쓰는 것과 AI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법무팀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는 각 조직이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AI Native Legal Team, AI 중심 법무 조직이라는 화두는 먼 미래의 전망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훨씬 가까이 와 있는 실질적인 질문이라는 점을 환기하고 싶습니다.

    이 질문을 일찍 고민하는 조직이 앞으로 더 빠르게, 더 지능적으로 성장하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 AI ARR, AI 시대 SaaS의 새로운 Metric

    왜 새로운 지표가 필요한가?

    SaaS 업계에서 ARR(Annual Recurring Revenue)는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성장 지표였습니다. ARR은 실질적인 반복 매출의 힘을 보여주는 핵심 언어였죠.

    그런데 최근 흐름을 보면, 기존의 단일 ARR 정의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 AI 기능이 기존 제품에 빠르게 붙고,
    • 사용량 기반(usage-based) 과금 모델이 SaaS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AI가 실제로 매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지표가 바로 AI ARR이라는 견해.

    AI ARR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AI ARR = AI 기능이 포함된 솔루션에서 발생하는 연간 반복 매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 AI 기능이 탑재된 SaaS 계약에서 발생하는 약정형 매출
    • AI 사용량 기반 과금(usage-based overage)에서 발생하는 반복성 매출

    을 합친 값입니다.

    즉, 단순히 ARR 안에서 구분되는 세부 수치가 아니라, “AI가 실제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왜 중요한가?

    1. 투자자 커뮤니케이션
      • 단순히 “AI 기능이 있다”와 “AI가 매출을 만든다”는 전혀 다름
      • AI ARR은 후자를 숫자로 보여주기 때문에, 투자자 설득에 직접적인 힘이 됨
    2. 내부 운영
      • 전체 ARR과 AI ARR을 분리 관리하면, AI 전환이 실제 재무적 성과로 이어지는지 팀 단위로 추적할 수 있음
    3. 제품 전략
      • AI ARR을 따로 관리하면, 어떤 기능이 고객 사용량 증가와 매출 증대로 연결되는지 선명히 드러남

    Case Study: Verint의 AI ARR

    CX 자동화 SaaS 기업 Verint는 AI ARR을 가장 투명하게 정의하고, 외부에 적극적으로 공개한 대표 사례입니다.

    • Subscription ARR: $710M (+6% YoY)
    • AI ARR: $354–355M (+24% YoY) → 전체 Subscription ARR의 50% 차지
    • Non-AI ARR: -7% 감소 → 사업 포커스가 AI로 완전히 이동

    Verint의 CFO Grant Highlander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The AI ARR is all of the ARR derived from our solutions that include AI functionality… It represents the quarterly run rate value of both active or newly signed SaaS agreements.

    핵심은, Verint는 단순 매출 감소(-6% YoY)에도 불구하고, AI ARR을 성장 엔진으로 강조하며 기업 가치를 재포지셔닝했다는 점입니다.

    이 투명성 덕분에, Verint는 최근 사모펀드 Thoma Bravo의 인수 대상이 되었고, 포트폴리오사 Calabrio와 합병해 AI 기반 CX 자동화 플랫폼으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SaaS 기업이 참고할 만한 포인트

    1. AI ARR은 새로운 ‘공용어’
      – 총매출보다 “AI에서 나오는 반복 매출이 얼마인가”가 투자자와 인수자의 초점
    2. 투명한 정의·공시가 차별화 요소
      – Verint처럼 AI ARR을 구체적으로 정의·공시하면 신뢰를 높이고 밸류를 끌어올림
    3. ARR 기반 운영
      – ARR → FCF로 직결되는 관리 모델 구축 필요
    4. Land & Expand, AI 방식
      – 고객은 소규모 AI 기능 도입 후 ROI를 확인하면 빠르게 확장
      – 이 확장이 곧 AI ARR 증가로 직결됩니다.

    결론: AI ARR은 SaaS의 새로운 운영 시스템

    앞으로 SaaS 시장에서는 “총 ARR이 얼마냐”보다 “그 중 AI ARR이 얼마나 되나?”라는 질문이 더 자주 던져질 것 같고, 투자자와 인수자 역시 이런 시각으로 회사를 평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Verint는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첫 사례일 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SaaS 기업들이 AI ARR을 정의하고, 공시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AI ARR은 단순한 지표가 아니라, AI 시대 SaaS 기업의 전략·운영·투자자 커뮤니케이션을 연결하는 운영 시스템이 되고 있습니다.

    References

  • 사내변호사로서 고객 중심으로 일하는 법

    기업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은 “리스크를 줄이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GC(General Counsel, 법무 총괄)에게 요구되는 건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성장을 가속화하는 법무이다. Intercom과 Front에서 법무팀을 처음부터 구축해온 Adam Glick은 이 과제를 “고객 중심”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내변호사로서 어떻게 고객 중심으로 일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자.


    고객이 없다면 법무팀도 없다

    Adam Glick은 이렇게 말한다.

    “Without customers, there is no legal department.”

    많은 사내변호사들이 협상, 리스크 관리, 소송 대응을 본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Adam은 빠르게 성장하는 B2B SaaS 기업에서는 법무팀이 성장을 촉진하는 부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회사를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촉매제(enabler)라는 것이다.

    소송 변호사에서 테크 기업 GC로

    Adam은 전형적인 길을 걷지 않았다. 대형 로펌 출신도 아니었다. 그는 커리어 초반 소송 전문 로펌에서 형사·민사 사건을 맡았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이런 자각을 했다.

    “I just quickly realized that I did not want to litigate for a living. I absolutely found the practice to be far too combative; it was a constant tug of war with the other side, too much motion work. I just did not see myself being a litigator for the next 30 or 40 years of my career.”

    즉, 지속적인 대립과 모션(motion work: 각종 신청서 작성·공방 업무)에 매몰된 소송 생활은 평생의 직업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때마침 2000년대 초반, 실리콘밸리에서는 첫 번째 기술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Adam은 테크업계로 방향을 틀었고,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의 라이선스 컴플라이언스 매니저로 입사했다. 고객사들의 계약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역할이었다. 인기 있는 직책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곧 한 스타트업의 첫 사내변호사 제안으로 이어졌다.

    고객 중심적 GC의 철학

    Adam이 강조하는 고객 중심 접근은 크게 세 가지다.

    • 고객은 회사의 생명줄
      고객사와의 계약이 아무리 치열해도, 관계를 존중하고 장기적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그는 Intercom에서 엔터프라이즈 고객과의 협상에 “three, four, five, six, nine, or even twelve months”를 매달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단 계약이 성사되면 장기적으로 회사의 핵심 고객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 내부 고객도 고객이다
      “Don’t forget about your internal clients.”
      세일즈팀, 제품팀, 엔지니어링팀은 법무의 내부 고객이다.
      법무는 “No”라고 답하기보다, “here’s another way we can do this properly”라는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 성장과 리스크의 균형
      “To be successful as a legal leader at a high-growth company, aligning the level of risk with the objectives of the business is paramount.”
      성장을 위해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와 절대 감수할 수 없는 리스크를 구분하고, 전자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고객 획득에서 법무가 할 일

    전통적으로 법무팀은 거래 후반부, 계약서가 오간 뒤에 등장한다. Adam은 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I subscribe to the theory that a legal department should be involved with customer acquisition much earlier; ideally, when the sales team begins to discuss the ‘legal element’ of the transaction.

    • 초기 개입: 세일즈 초반부터 법무가 함께해야 고객의 오해를 줄이고 협상을 매끄럽게 만든다.
    • 교육적 접근: 고객이 조항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삭제하려 한다. 미리 배경을 설명하면 불필요한 삭제를 막을 수 있다.
    • 관계 구축: “Strong relationships with a customer’s legal counsel has its benefits — I can streamline negotiations in advance by picking up the phone or sending a simple email.

    Intercom에서의 경험

    Intercom에 합류했을 때 그는 회사의 첫 Head of Legal이었다.

    • 고객이 늘면서 계약 규모와 복잡성이 커졌고, 그는 계약 프로세스를 재설계해 속도를 높였다.
    • 데이터 프라이버시 규제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We take that obligation very seriously, and we have built robust security measures to protect this data”라고 강조하며 GDPR 대응을 총괄했다.
    • 동시에 그는 마케팅, People, 엔지니어링 등 여러 부서와 협력하며 “성장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필요한 법무 구조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네트워킹과 멘토십

    Adam은 네트워킹과 멘토십을 고객 중심 철학의 연장선으로 본다.

    • 네트워킹은 진정성 있는 호기심과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 멘토십은 단순 조언이 아니라, 상호 배움과 우정으로 발전한다.
    • 그는 IPO 경험이 있는 GC와의 만남에서, “Zoom 회의 → 커피 미팅 → 저녁 자리”로 이어진 관계를 통해 깊은 멘토십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팀 빌딩과 리더십

    Intercom에서 법무팀을 처음부터 세우며 Adam은 이런 원칙을 세웠다.

    • 30·60·90일 플랜: 첫 분기에는 비즈니스 이해, 전략 목표 파악, 전사 관계 구축에 집중.
    • 채용 기준: “Do they have subject matter expertise? Or do they have the ability to learn quickly?” 그리고 문제 해결력·EQ.
    • 솔루션 지향성: 법적 문제에 대해 단순히 “불가”라고 말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인재를 원했다.
    • 최종 단계에서는 커피 미팅을 통해 “do we like each other, do we get each other enough to work well together?”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했다.

    정리: 사내변호사로서 고객 중심으로 일하는 법

    • 존중(Respect): 고객과 내부 팀 모두와의 관계에서 존중을 잃지 않는다.
    • 솔루션(Solutions): “No” 대신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 관계(Relationships): 네트워크, 멘토십, 신뢰가 법무 리더십의 자산이다.

    Adam Glick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내변호사로서 고객 중심으로 일한다는 것은, 곧 비즈니스와 사람을 연결하는 리더가 된다는 것이다. 법무팀은 성장을 늦추는 장벽이 아니라,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고 성장을 촉진하는 촉매제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