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에게 보편적인 직무 기술서는 없다 (Sara Clemens, fmr. COO at Twitch)

    지난번 Riding Shotgun 책 정리Matt MacInnis(Rippling COO) 인터뷰에 이어, COO라는 포지션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는 인터뷰를 발견했다.

    Riding Shotgun이 책 한 권으로 던진 명제 — “There is no universal job description” — 가 실제 COO들의 발언에서 변주되는 게 흥미롭다.

    Sara Clemens는 두 종류의 COO 역할을 다 해본 사람이다.

    • Pandora에서는 Chief Strategy Officer로 시작해 본업 옆에서 신사업을 키우는 new business COO였고(라디오 회사에서 on-demand 음악 회사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음악 산업과의 관계를 새로 짜고 라이브 이벤트와 커머스를 platform에 통합),
    • Twitch에서는 product·engineering을 제외한 9개 function 전체 — go-to-market과 corporate functions — 를 맡은 CEO 옆 반쪽 형태였다.

    뉴질랜드 출신, 정부 정책 업무로 시작해 LinkedIn, Microsoft Xbox를 거친 커리어. 한 사람이 두 종류의 전혀 다른 COO 역할을 모두 거친 흔치 않은 케이스다.

    Twich의 CEO Emmet Shear와는 입사 전 공식 인터뷰부터 Dolores Park을 함께 걸으며 커피를 마시는 시간까지 수많은 대화를 통해 fit을 검증한 뒤에야 합류했다. 자기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CEO와 그 약점을 자기 강점으로 메우려는 COO의 만남이었다.

    • COO에는 보편적인 직무 기술서가 없다. Sara가 가장 자주 받는 오해는 “단일한 COO 직무가 있다”는 가정이다. 실제로 COO 역할은 회사 규모, 단계, 산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CEO 본인의 성향과 약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CEO가 잘 못하거나 흥미를 잃은 영역을 채우러 들어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COO는 카멜레온 — 단일 직책이 아니라 회사 상태에 맞춰 변형되는 leadership structure의 일부다. Riding Shotgun이 책 한 권을 들여 했던 진단을, Sara는 한 문장으로 한다 — “There simply isn’t a single COO role.”
    • COO에는 거칠게 세 가지 원형(archetype)이 있다. (1) 실시간 운영 처리량 자체가 사업의 본질인 회사 — Uber, DoorDash, Airbnb 같은 — 의 operations leader. 사람의 즉각적 개입이 사업 가치의 일부인 환경에서 작동한다. (2) 본업 옆에서 인접 사업을 키우는 new business COO. Sara가 Pandora에서 한 역할이다. (3) Product/Engineering 백그라운드의 CEO 옆에서 그 외 모든 것을 운영하는 not-product-or-engineering COO. Sara가 Twitch에서 한 역할 — Emmet이 product와 engineering을 맡고, 그녀가 9개의 다른 functions를 인터림 리더로 직접 운영하면서 채워넣었다. 같은 직책 이름이지만 일상의 시간이 어디로 흐르는지가 완전히 다르다.
    • 좋은 COO는 네 개의 축으로 평가된다. (1) 회사의 전략을 명확히 정의하고 모두에게 전파했는가, (2) 그 야망에 맞게 조직과 인재를 배치했는가, (3) 매일 들어오는 새 정보에 따라 기민하게 적응하는가 — slavishly stick하지 않으면서, 또 매번 흔들리지도 않으면서, (4) 그 변화 속에서 컬처를 함께 끌고 가는가. Sara 본인도 “네 가지를 다 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그래도 이 네 가지가 지향점이고, archetype에 따라 가중치가 달라진다 — operations leader는 (3)에 더 무겁고, new business COO는 (1)과 (4)에 더 무거운 식으로.
    • 전략의 실체는 “무엇을 할지”의 목록이 아니라 “무엇을 안 할지”의 목록이다.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더 중요하다고 Sara는 말한다. 회사가 커질수록 본업 옆에 자꾸 무언가가 bolt-on 된다 — 새 시장, 새 제품 라인, 새 파트너십. 이걸 막는 게 전략의 핵심 기능이다. 좋은 전략은 우리가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명확함을 준다. 그래야 회사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 “안 할 것” 명단 없이 hyper-growth를 하면, 빠르게 일하는 동력이 자기 자신을 흩뜨리는 동력으로 변한다.
    • Twitch는 “creators first”에서 “community first”로 전략 한 줄을 다시 썼다. 초기 Twitch는 marketplace의 supply side를 키워야 했기에 “creators first”가 맞았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회사의 본질이 community service로 진화했는데, 문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결과 trust & safety처럼 viewer 측에 영향을 주는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었다. 그래서 “community first”로 다시 썼다. 한 줄 바뀐 것뿐이지만 — 자원 배분이, 우선순위가, 투자 의사결정의 기준이 통째로 재조정됐다. 전략 statement가 단순 슬로건이 아니라 자원 배분의 진짜 input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 같은 질문에 회사 안 사람마다 다른 답이 나온다면, 그게 misalignment의 증거다. Sara는 이걸 회사가 효과적으로 스케일하지 못하고 있다는 the number one symptom이라 단언한다. 사람들이 같은 질문에 다 다른 답을 주는 회사는, 각 팀이 misaligned된 목표를 향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회사다. 그 결과는 손가락질과 busy work — 모두 바쁘지만 결과는 안 나오는 패턴. 이 진단을 그녀는 새 조직에 들어갈 때 가장 빨리 쓰는 도구라고 말한다. 첫 30~60일에 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던져보고, 답이 갈리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잡는 것.
    • 거대한 “전략 워크숍”은 회사 전체를 잡아먹는 화산이 되기 쉽다. 새 COO가 합류해 가장 자주 빠지는 함정이 이거다 — “흩어진 전략을 내가 다시 정렬해야겠다”고 며칠짜리 offsite을 잡는 것. Sara가 강조하는 건 그 반대다. 새 회사에 합류하면 우선 “여기는 분명 무언가를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전제로 그 history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회사를 만든 사람들의 어깨 위에 자신이 서 있다는 자각이 시작점이다. 그 다음에 전략은 별도 행사가 아니라 연간 사업계획 같은 기존 프로세스 안에 녹여 점진적으로 진화시키는 게 더 잘 안착한다 — organic하게.
    • “문제만 갖고 오지 말고 솔루션을 갖고 와라”는 격언은 perverse incentive를 만든다. 흔히 매니지먼트 명언처럼 인용되지만 Sara는 정면으로 부정한다. 이 격언이 만드는 결과는 이슈가 빨리 테이블에 올라오는 걸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회사는 issue가 나오는 즉시 raise하고, 더 많은 사람의 머리를 빨리 끌어들여 함께 푼다. 속도가 곧 경쟁우위인 환경에서 analysis paralysis는 가장 큰 적이다. 그리고 이슈를 빨리 raise하는 사람을 “해결책 없이 또 왔네”라고 처벌하는 시스템은, 결국 그 사람이 다음번 이슈를 늦게 raise하는 시스템이다.
    • 무관용(no-blame) 컬처는 도덕성이 아니라 운영 원칙이다. 이슈가 빨리 올라오게 하려면 “이슈가 있다”는 사실을 neutral fact로 받는 컬처가 전제되어야 한다. 누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그냥 일어난 일. “이슈를 raise하는 게 누군가를 비난하는 행위가 되는 회사”에서는 issue-raising velocity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회사 자체가 느려진다. 이건 친절함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 동료에 대한 불만이 들어오면, 그 동료까지 같이 부르라. Sara가 쓰는 구체적 기법. 누가 동료에 대한 complaint를 들고 오면, 먼저 “그 사람한테 직접 말해봤느냐”고 묻는다. 이미 말했다고 하면, “그럼 좋다, 둘이 함께 와서 같이 얘기하자”고 한다. 그 순간 대화의 지형이 바뀐다 — A가 B를 비난하는 자리에서 이걸 우리가 어떻게 풀지를 같이 정리하는 자리로. 이 단순한 운영 동작이 시간이 지나면 컬처를 만든다는 게 Sara의 주장이다. 동료 비난을 매니저에게 들고 가는 default 행동이, 동료에게 직접 말하는 default로 천천히 바뀐다. 컬처는 슬로건이 아니라 한 줄짜리 운영 규칙들의 누적이라는 관점.
    • 이슈가 생기면 첫 콜은 CEO가 아니라 동료(peer)다. Sara 본인이 Twitch에서 어떤 issue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이거였다 — Emmet에게 가지 않고, 같은 issue에 함께 묶여 있는 동료 임원에게 가서 “이걸 어떻게 풀지”를 먼저 정리하는 것. 동료끼리 풀어보고 안 되면 그 다음에 CEO에게 올라간다. 이 순서가 무관용 컬처의 실제 작동 방식이다. CEO에게 이슈가 도착할 때는 “동료끼리는 못 풀었다”는 메타 데이터가 함께 도착해야 한다.
    • 회사가 커지면서 느려지는 건 일부 물리법칙이지만, 가장 큰 marginal slowdown은 의사결정권의 모호함에서 온다. 20명을 같은 정보 위에 정렬시키는 것과 2,000명을 정렬시키는 건 난이도가 다르고, 전문화가 깊어질수록 회사 전체에 대한 awareness는 자연스럽게 얕아진다 — 거기까지는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Sara가 일관되게 진단하는 가장 큰 marginal slowdown 원인은 따로 있다. 누가 결정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한 결정들의 집합. 어느 대기업에서 그녀가 배운 농담 — “여기에서 무언가를 통과시키려면 누군가의 Yes를 받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No라고 안 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COO의 핵심 진단 작업 중 하나는 owner가 명확하지 않은 결정들을 찾아내어 거기에 ownership을 명시하는 일이다.
    • CEO-COO 협업은 “잘함/못함 × 좋아함/싫어함” 네 사분면 매핑에서 시작된다. Sara가 새 CEO와 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대화. CEO가 (1) 잘하는 것, (2) 못하는 것, (3) 즐기는 것, (4) 싫어하는 것을 따로 매핑한다. 그러면 협업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 CEO가 자기 superpower에 시간을 쓰게 만들고, COO가 그 외 영역을 메우는 것. 못하면서도 싫어하는 일에 시간을 쓰는 CEO는 그 일도 못하고 다른 일도 못한다 — 즐기지 않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Emmet과 Sara는 이 매핑을 입사 부터 시작했다. 그게 두 사람 사이의 complementary skillsets에 대한 합의의 출발점이었다.
    • 임원 둘이 팀 앞에서 다투지 마라 — 두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그러지 않듯이. Sara가 Emmet과의 협업에서 가장 일관되게 지킨 운영 원칙. 의견 차이는 회의 후에 따로 풀고, 팀 앞에서는 united front로 선다. 이게 단순한 위계 보호가 아니다. 임원 둘이 공개적으로 부딪히는 순간, 그 회사의 다른 모든 사람도 임원진 앞에서 부딪혀도 된다는 entitlement를 갖는다. 그래서 두 명의 임원이 팀 앞에서 한 목소리로 서고, 진짜 disagreement는 둘만의 자리에서 푸는 것 — 이게 컬처 신뢰의 토대다.
    • Hyper-growth 회사에서 COO의 일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change management다. Sara가 하는 가장 단정적인 명제 중 하나. Hyper-growth 환경에서는 every day brings new information, every day brings something to redo. 그러므로 COO를 뽑을 때 가장 결정적인 변별 변수는 변화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가, 변화로 에너지가 소진되는 사람인가이다. 후자라면 아무리 똑똑해도 hyper-growth에는 안 맞는다. 본능적으로 이 사람들은 변화의 양을 줄이려 하고, 결과적으로 회사 자체의 적응 속도를 떨어뜨리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Sara가 강조하는 한 가지 변별 신호 — *”End state를 한 번에 짓고 싶다”*는 임원은 위험 신호다. 좋은 hyper-growth 임원은 “지붕에 태양광 패널 자리를 비워두되, 오늘 밤은 막대기 두 개로 불을 피운다”는 트레이드오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Executive 면접 후반부에 가장 던지기 싫은 질문이 가장 던져야 할 질문이다. Executive 인터뷰는 수십 시간짜리 누적 투자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질문은 안 던져도 되겠지”라는 유혹이 커진다. Sara가 받은 가장 좋은 조언 중 하나 — 바로 그 질문이 답을 알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답이 자기 확신을 흔들 가능성이 큰 질문일수록 회피하게 된다. 그게 confirmation bias의 실제 작동 방식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질문일수록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던진다고 말한다. “이 질문에 답이 마음에 안 들면 나는 이 자리를 안 받을 것이다”라는 자기 점검까지 포함해서.
    • People 결정권은 입사 전에 합의해야 한다. 가장 직접적인 시나리오 질문 — “내 직속 임원을 CEO가 underperformer로 본다. 나는 development 영역이 있을 뿐이라고 본다. 자르는 결정은 누가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이 없는 채로 시작하면, 어느 시점엔가 정확히 그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순간 CEO와 COO 사이의 신뢰가 깨지면, COO 자리는 사실상 비어버린다. CEO가 자기 직속 임원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고 싶어한다면, 그게 사전에 합의된 게임 규칙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사후에 발견되는 게임 규칙으로 운영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
    • 좋은 strategic operator는 horizons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Sara가 자기 커리어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는 사람은 Xbox 시절 상사 Dennis Durkin이다(이후 Activision Blizzard COO/CFO). Dennis의 두드러진 능력은 5년 long-range plan 회의에서 일어나, 같은 날 한 거래의 가격 디테일로 들어가는 데 막힘이 없는 것이었다. Multi-billion-dollar 투자 토론과 한 deal의 details 사이를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mental flexibility. Sara가 정의하는 좋은 COO의 표준 능력치는 이거다 — 매일의 디테일과 5년 후의 그림이 한 머리 안에서 연결되는 것. Pure strategist는 운영 디테일에 막히고, pure operator는 horizon 너머를 못 본다. COO는 그 사이를 매일 왕복하는 사람이다.
    • CEO가 자기가 못하면서 싫어하는 일에 50% 시간을 쓰고 있다면, COO를 뽑을 시점이다. 가장 명확한 채용 신호. 이 시간을 더 잘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해질 때 COO가 들어와야 한다. 단, 단서가 있다. 이미 임원진의 60-70%가 잘 굴러가고 있는 회사라면 COO를 한 명 뽑는 대신 빈 자리 두세 개를 더 채우는 게 정답일 수 있다. 그래서 COO 채용은 단순히 “regulator를 한 명 데려온다”가 아니라 “내가 직접 채우기 어려운 세트의 functions를 한 명에게 위임한다”는 결정이다.

    이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가장 오래 멈췄던 지점은 세 가지:

    • 하나는 Matt MacInnis와 Sara Clemens가 같은 직책에 대해 강조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Matt은 조급함(impatience)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았다. 엔트로피와 싸우는 동력, A급 인재의 변별 변수, 사내 정치를 줄이는 메커니즘 — 그는 거의 모든 운영 원칙을 속도로 환원한다. Sara는 결이 다르다. 그녀의 핵심 변별 변수는 변화에서 에너지를 얻는가이다. 빠른 사람과 변화에 강한 사람은 같지 않다. 똑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두 임원 중 한 사람은 매일 바뀌는 가정에 흥분하고, 다른 사람은 매일 바뀌는 가정 때문에 소진된다. 둘 다 hyper-growth COO 자리에 강하게 끌리지만, 후자는 자기도 모르게 회사의 적응 속도를 떨어뜨리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채용 판단에서 이 둘을 구별하는 일이 — 단순한 “능력자”와 “조급한 능력자”를 구별하는 것보다 — 더 어렵고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게 Sara가 던지는 추가 layer다.
    • 다른 하나는 전략 = 안 할 것의 목록이라는 명제의 무게다. 회사가 커질수록 자기 정체성을 “하기로 한 것”으로 정의하는 게 자연스럽다 — 어느 분기에 어떤 신제품을 냈고, 어떤 시장에 진출했고, 어떤 파트너십을 맺었는지. 그런데 Sara가 던지는 시각은 정반대다. 정체성은 “안 한 것”의 누적에 더 가깝다. Twitch가 community first로 전략 한 줄을 다시 쓴 사례가 그 증거다 — 무엇을 새로 시작한 게 아니라, 무엇을 덜 우선시할지가 명확해진 순간 자원 배분이 통째로 바뀌었다. 단, 이 명제를 cleanly 받아들이기엔 한 군데 의심이 든다 — Sara의 인터뷰만으로는 그 wording 변경이 자원 재배분을 driven 한 건지, 이미 진행 중이던 변화를 기록한 건지가 분명하지 않다. 둘 다 일어나는 회사가 좋은 회사일 것이다.
    • 세 번째는 peer-first 콜이라는 운영 동작이다. 동료 비난을 매니저에게 들고 가는 default를 깨는 단순한 한 가지 — “그 사람한테 직접 말해봤어요?”, “그럼 셋이 같이 얘기합시다.” 이 운영 동작이 시간이 지나면 컬처를 만든다는 게 Sara의 주장이다. 컬처를 슬로건이나 가치 선언으로 짓는 게 아니라, 한 줄짜리 운영 규칙의 누적으로 짓는다는 점. 이건 Riding Shotgun의 absolute trust도, Matt MacInnis의 no-look pass도 결국 같은 가족에 속한다 — 임원 사이 한 줄짜리 운영 규칙들의 누적이 결국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를 결정한다.

    COO는 주목받지 않는 자리다 (Riding Shotgun의 표현으로 “comfortable outside the spotlight”). 그 자리에 있으면서 회사의 가장 빠른 적응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 매일의 디테일과 5년의 그림 사이를, 부모의 자리와 동료의 자리 사이를, 결정자와 운영자 사이를 막힘 없이 왕복할 수 있는가. 그 왕복 능력 자체가 직무의 본질이라는 점이,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다시 또렷해졌다.

  • People 리더의 운영 기술 — 좋아하지 않아도 존경받기 위해 (feat. Katie Burke, COO at Harvey)

    지난번 글(“AI 시대, People 리더가 경영의 중심에 서는 이유“)에서 Katie Burke의 CPO→COO 전환이 갖는 시대적 의미에 대해 적었다면, 이번엔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운영 기술(craft)을 갖고 있는지를 따라가고 싶었다.

    FirstRound Capital 유튜브 인터뷰에서 Katie가 풀어놓은 디테일은 People 리더의 일상적 결정과 트레이드오프를 들여다보는 데 좋은 재료였다.

    HubSpot에서 11년간 8,000명까지 스케일을 본 사람이, 같은 일을 50명도 채 되지 않던 AI 스타트업(현재의 Harvey)에서 다시 하면서 어떻게 본인의 플레이북을 의심하고 다듬고 있는지가 솔직하게 드러난다.

    Matt MacInnis 인터뷰 정리를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도 인사이트 단위로 메모:

    • 내부 메시지도 주의력 점유율(share of attention) 게임이다. Katie는 마케터 출신이라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처음부터 마케팅 문제로 봤다. 전통적인 HR 리더는 직원을 어차피 듣는 청중(captive audience)이라 생각하고 정보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직원도 자기 시간을 어디에 쓸지 매 순간 선택한다. 채용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고용주 브랜드(employer brand)는 흥미롭지도 차별화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전략적 차별화 요소로 다뤘다.
    • Hospitality 출신을 의도적으로 채용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게스트 경험과 직원 경험을 동시에 사고하는 데 단련되어 있다. 팬데믹 사흘 만에 사내 학부모를 위한 온라인 몬테소리 스쿨을 띄울 수 있었던 건,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통념 밖에서 사고했기 때문이다. People 팀의 다양성은 인구통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신 산업의 다양성이 더 즉각적인 결과를 낸다.
    • “테이블에 앉으려 하지 말고, 테이블을 만들고 메뉴를 짜라.” 자주 인용되는 말이지만, 운영자 입장에서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비즈니스가 먼저, 고객이 먼저, 직원 프로그램은 그 위에 쌓아 올린다(ladder up)’는 순서다. People 팀이 자기 아젠다를 따로 갖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 아젠다를 People 관점으로 풀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투명성(transparency)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게 아니다. “회사가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게 Katie의 정의다. 그래서 직원 ENPS 코멘트는 “Katie was terrible at that company meeting” 같은 거친 코멘트까지 전부 공개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성과로 해고됐다면 그 사유는 공개하지 않는다. 그 정보는 회사의 정보가 아니라 그 개인의 정보이기 때문이다. 투명성을 한 단어로 ‘다 공개’라고 받아들이는 사람과 이 정의를 가진 사람은 운영의 결이 완전히 달라진다.
    • 해고 사유를 팀에 공유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그 사람이 다른 회사에 가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 둘째, 사유를 가끔만 공개하면 공개하지 않을 때마다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나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일관되게 ‘우리는 이런 종류의 정보는 공유하지 않는다’고 정해두는 게 낫다. “그게 당신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처리되길 원하시겠어요?”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체로 납득한다고 한다.
    • HubSpot은 IPO 이후에도 모든 직원을 상장 회사의 미공개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지위(designated insider)로 만들고 정보의 속도(velocity)를 유지했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변호사와 뱅커들의 조언에 따라 정보 공유를 조였을 일이다. 결과적으로 직원들은 “mini MBA를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반직관적인 투자이지만,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라는 수확으로 돌아왔다. ‘다른 회사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주장은 사실 가장 약한 주장이다.
    • 개인이 한 말은 절대 옮기지 않는다. 대신 패턴화된 피드백(thematic feedback)은 옮긴다. 이게 Katie가 정의하는 CPO의 핵심 통화다. “경영진 사이에 이런 우려가 있다”는 말은 하되, “누가 그런 말을 했다”는 말은 안 한다. 한 번이라도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옮겨졌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다시는 나에게 오지 않는다. 정치를 하지 않는 CPO를 만드는 건 도덕성이 아니라 신뢰(trust)라는 화폐를 잃지 않겠다는 운영 원칙이다.
    • Failure Forum에서는 “내 최대 약점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가짜 실패는 금지였다. 진짜 실패만 올라간다. VP of Product가 단상에 올라가서 “고객 론칭을 망쳐서 고객지원팀을 3일간 마비시켰고, 고객에게 사과하는 만큼이나 우리 서포트 팀에게도 사과한다”고 말한 게 가장 좋은 예다. 이런 겸손은 빡빡한 인재 시장에서 비대칭적 충성도(disproportionate loyalty)를 만든다. 그리고 이 자리는 임원이 먼저 타석에 서야만 작동한다. 위에서 시범을 안 보이면 그냥 형식적인 자리가 된다.
    • Frequent flyer에 주목하라. 한 번씩 불평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조명, 책상 온도, 식이 제한 — 누구나 한두 가지에 대해 까다로운 의견이 있다.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많다. 진짜 신호는 ‘여덟 번 중 다섯 번 어떤 이슈가 터질 때마다 거기 있는 같은 사람’ 패턴이다. 그게 frequent flyer다. 사소한 불만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회사 안에서 사소한 불만들을 영속적으로 만들어내는 패턴이 진짜 문제다.
    • 입사 첫 주의 톤이 이후의 성과에 대한 선행지표(leading indicator)다. 신입 트레이닝 마지막 날 “개선 가능한 18가지 관찰사항”을 메일로 보내는 사람은 보통 3~6개월을 못 버틴다. 반면 “트레이너분 정말 훌륭했고, 다음번엔 이 세 가지가 추가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쓰는 사람은 다르다. 둘 다 피드백이지만, 사람이 새 환경에 들어왔을 때 디폴트로 어디로 기우는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다르다. Katie는 신입 첫 주 컴퓨터 셋업 instruction을 잘 따르는지조차 후일 sales rep의 성과/리텐션 leading indicator였다고 말한다.
    • 불평(Complaining) 대 해결(Fixing)의 비율을 보라. 어느 조직에나 ‘75% 불평, 25% 해결’ 비율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비율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매니저의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 새 회사에서 끊임없이 ‘at my last company we did X’를 읊어대는 사람도 위험 신호(red flag)다. 과거 경험에서 배우는 것과, 자기 이력서에 의존하는 것은 다르다.
    • Berrygate 사건. HubSpot에서 직원 복지로 신선한 베리를 제공했는데, 베리 소비량이 헤드카운트보다 비선형적으로 늘어난다는 finance 차트가 만들어졌다(!). 임원진이 모여 ‘우아한 해법’을 찾았다. 베리를 빼고 스무디 바를 열자! 고객도 와서 마실 수 있고, 스무디는 고객 이름을 따 만들고, 건강에 좋고, 무알코올 옵션도 된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회의 끝나고 자리에 돌아오니 내부 메신저에서 폭발이 났다. “직원 의견 수렴이 없었다”, “베리는 통째로 먹어야 식이섬유가 더 들어가는 거 모르냐”, “CFO는 왜 타운홀을 안 열었나” 같은 토론이 길게 이어졌다. Katie는 여기서 평소답지 않게 톤을 잡았다. “전사에 묻고 결정하지 않을 겁니다. 위너와 루저가 있는 결정을 할 거예요. 그리고 지난 45분간 이 채널에서 베리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면, 일이 부족한 겁니다.” 흥미로운 건, 이 강한 메시지가 가장 충성도 높은 직원들에겐 결집의 신호(“rallying cry”)가 됐다는 점이다. “드디어 누가 말했다. 사소한 불만을 권리처럼 여기는 분위기(“entitlement issue”), 진작에 짚었어야 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 Protein vs Sugar. 위의 Berrygate 에피소드가 알려주는 진짜 운영 원리다. People 리더의 임팩트는 ‘어떤 불만에 귀 기울일지’ 분류 능력에서 나온다. 문화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 우리가 이기는 데 방해되는 일, 진짜 갈등은 protein이다 —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베리에 대한 동요는 sugar다. 그런데 무서운 건 sugar 불만에는 ‘좋은 사람들도 끼어든다’는 점이다. 좋은 사람이 끼었다는 이유로 sugar를 protein으로 격상하면, 진짜 protein을 다룰 시간이 사라진다. (덧붙여 — 일이 충분히 빡세면 sugar 분쟁은 자연 감소한다는 게 그녀의 관찰이다. 사내 정치는 일이 부족할 때 생기는 부작용에 가깝다는 MacInnis의 관점과 거의 같다.)
    • 해고(layoff)는 90일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2~2.5년 가는 후유증(hangover)이다. 보드 멤버가 Katie에게 처음 이 말을 했을 때, 그녀는 “우리는 빠른 조직이라 그것보다 짧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초기 충격, 그 다음의 생존자 죄책감(survivor guilt), 그리고 ‘다음 라운드(해고 이벤트)가 또 올 것 같다’는 잠재적 두려움 — 이 세 단계는 회사 속도와 거의 무관하게 같은 시간이 든다. 그래서 해고는 일회성 비즈니스 결정이 아니라 다년에 걸친 문화적 결정이다. 인력 계획을 짤 때, 정규 인력과 외주/유연 고용 인력을 어떻게 섞을지 결정할 때, 이걸 맨 뒷주머니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해고를 결정한 임원은 그 영향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거리’에 자기 자신을 두어야 한다 — Katie는 해고 영향받은 사람 누구든 1:1로 욕할 수 있는 면담 시간(office hours)을 만들었다.
    • 인력 계획(headcount planning)은 본질적으로 어수선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라. Katie 본인도 “HCP를 정말 잘하는 조직에 있어본 적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AI 에이전트까지 들어오면 더 어수선해진다. 그래도 도움이 되는 세 가지 — (1) 인원수가 아니라 일부터 정의한다. (2) 같이 일하는 재무팀과 사업팀 사이에 ‘무슨 일이 어떤 수준으로 끝나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선이 있어야 한다. (3) 사람을 한 명 추가할 때마다 ‘오너십이 흐려질 가능성’도 같이 추가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헤드를 늘릴수록 프로세스 원칙(discipline)도 한 단계 늘려야 하는 이유다.
    • Federal vs State 모델로 가라. 레벨링, 타이틀, 보상 가이드라인 같은 건 federal(전사 공통)이어야 한다. 그 안에서 개별 사람을 누가 어느 레벨에 두는지는 state(부서장)이 결정한다. ‘각자 알아서 해, 나중에 정리하자’는 가장 어수선한 결과로 직진하는 길이다. Harvey는 약 300명 시점에 leveling exercise를 했다. 8,000명에 하나 300명에 하나, 누가 하든 똑같이 어수선하다는 게 그녀의 관찰이다. 자기 정체성을 건드리는 일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시점은 ‘덜 어수선한 시점’보다 ‘앞으로 더 커지기 직전’에 잡는 게 합리적이다.
    • 보상 체계(incentive) 설계는 단순함이 이긴다. 임원 보상이든 전사 보너스 프로그램이든, 변수가 6개로 늘어나는 흔한 패턴이 있다. ‘게이밍을 막으려고 변수를 더 많이 만든다’는 건 사실 환상이다 — 더 복잡할수록 게이밍 여지가 더 많아진다. Katie가 본인이 매번 하는 훈련은 보드와 함께 ‘각 변수의 실패 시나리오(failure mode)가 뭔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보너스 구조에는 보통 top line / bottom line 외에 창의적 옵션이 별로 없다. 그러면 “각 변수가 망할 때 우리는 어떤 트레이드오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정직한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직관에 반하는 관찰 하나 — 대부분의 매니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인센티브를 게이밍하지 않는다. 자기 팀(first team)을 위해 lobbying한다. 그래서 promotion calibration이나 보상 결정에서의 진짜 문제는 ‘개인 이기주의’가 아니라 ‘부서 이기주의’다. 이걸 헷갈리면 통제 메커니즘을 잘못된 곳에 설치하게 된다.
    • 평가 조율(calibration) 회의에는 원문 그대로의 발언(verbatim)을 들고 가라. 추상적인 ‘우리는 고성과 문화(high-performance culture)를 추구한다’ 토론은 누구의 행동도 바꾸지 못한다. Katie가 매 사이클마다 하는 것 — 익명화한 실제 리뷰 한 장을 띄워놓고 “이 사람이 지난 사이클에 어떤 등급을 받았을 것 같으세요?”라고 묻는다. 동등한 부담을 위해 본인 조직의 한 명을 의도적으로 포함시킨다. 그러면 임원들이 “지난 사이클에 우리 팀에 이걸 그냥 넘어갔다”는 걸 자각하는 겸손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성과 관리(performance management) 이론서에서 가져온 추상이 아니라, 자기 조직에서 작년에 매니저들이 실제로 쓴 발언 — 이게 행동 변화의 가장 강한 입력값이라는 게 그녀의 운영 관찰이다.
    • 새 임원이 합류하면 6주 전에 짠 계획부터 다시 본다. Harvey가 최근 Anique Drumright(전 Rippling/Loom/Uber, 현 Chief Product Officer)을 영입했을 때, Katie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그녀와 이틀간 붙어서 ‘6주 전에 짠 인력 계획이 그녀가 보기에도 여전히 유효한가’를 다시 검증한 것이었다. AI 시대의 연간 계획(annual plan)은 빠르게 낡는다 — Katie 본인도 합류 5주 차에 이미 다음 분기를 위한 재계획을 돌리고 있다. 매번 처음부터 다시 짜는 건 아니다. 다음 분기를 위해 어디를 조정할지만 정한다. 연간 계획이 ‘1년에 한 번 정해두는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지금 시점에선 위험하다.
    • 디렉터 → VP 전환의 핵심은 운영 체계(operating system)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흔히 뽑히는 답 — “이전보다 1:1을 더 많이 한다” — 이 사실 틀린 답(wrong answer)이다. VP가 됐는데 1:1만 늘어났다면 직무가 ‘더 큰 디렉터’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옳은 변화는 1:1을 줄이고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 — 실무자(IC) 인터뷰는 안 하고 매니저 인터뷰에만 집중한다거나, 매니저들이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구를 만들어준다거나. 디렉터가 직속 매니저들에게 캠프 카운슬러처럼 말하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천장이다.
    • VP → CXO 전환의 핵심은 두 가지 — 자기 인식(self-awareness)과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채용하는 능력이다. VP가 되면 “어, 나 이거 좀 잘하는 것 같은데”라는 자각이 생긴다. 그 시점부터 칭찬을 흡수하고 비판을 거르는 필터가 자동으로 켜진다. 이게 깨지지 않으면 임원이 못 된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일부러 데려오는 능력은, 어느 직급보다 임원에게 결정적이다.
    • 매니저는 그 분야에서 가장 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단단해야(technically sound) 한다. ‘나 엔지니어로 몇 년 하다가 그 뒤로는 평생 매니저였다’는 식의 직업적 관리자(professional manager)는 안 된다. 본인이 관리하는 사람들의 직무 전문성(craft)에 대해 위협이 되는 대화(dangerous conversation)를 할 수 있을 만큼은 알아야 한다. Principal/Staff 엔지니어와 동등하게 기술 토론(shop talk)을 할 수 있는 수준 — 그게 임계치다. 본인이 더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
    • 좋아함(Liked) 또는 존경(Respected) —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이게 Katie가 매니저를 정의하는 가장 단순한 프레임이다. 가장 존경받는 코치들은 좋아함보다 존경받음을 택했다. Jordan은 좋은 친구는 아니었지만 좋은 팀메이트였다 — 매 연습마다 동료들을 더 낫게 만들려고 굴었다. 그게 고약한(disagreeable) 사람과 어려운 동료의 차이다. 결정적 순간에 Steve Kerr에게 패스할 줄 아는가,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가 — 이 두 가지가 ‘함께 일하기 어렵지만 같이 가는 사람’과 ‘그냥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을 가른다.
    • 어색함의 여왕(Queen of Awkwardness)이 되어라. People 리더의 일은 어색한 침묵을 견디는 일이다. “Do you think that was your best work out there?”라고 묻고, 그 다음 침묵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게 비교할 수 없이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매니저가 그쪽을 택한다. 어색함에 머물러서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유는 이거고, 같이 어떻게 더 잘 할지 그려보자”고 끝까지 가는 능력 — 그게 혹독함(demanding)과 보살핌(caring)을 동시에 하는 사람의 운영 기술이다.
    • 자기 성과 평가(performance review)를 8년간 팀에 공유했다. 일부 가린(redact) 채로. 본인이 잘했다고 평가받은 것과, 본인이 더 잘해야 한다고 평가받은 것 모두. 팀에게 자기 개선 영역을 솔직히 말해달라고 요구하려면 본인부터 그래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다. 임원이 자기가 못한 일을 길게 적어 공유하는데 그 밑의 사람이 “저는 딱히 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하면, 그 자체가 자기 인식(self-awareness)의 부재다.
    • 임원의 타율은 .400이면 최상위권(best-in-class)이다. Katie가 CPO로 승진하고 나서 가장 어렵게 배운 것 중 하나는 완벽주의(perfectionism)를 내려놓는 일이었다. 학생 시절부터 그녀는 다 잘하던 사람이었다. 임원이 되니 게임이 달라진다. 매 회의마다 home run을 칠 수 없다. “그 미팅은 미스였어요, 더 잘했을 수 있었어요” 같은 평가를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능력이, 사실 임원으로서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건 Katie가 본인 자신에 대해서도, 자기 팀에 대해서도 통용시키는 기준이다. 모든 게 잘되어야 한다고 가정하는 People 리더가 가장 빨리 번아웃에 빠진다.
    • CEO와 의견 충돌(disagree)하는 법은 같은 장기 목표(long-term goal) 위에서 의견 충돌하는 것이다. Katie가 Winston(Harvey CEO)과 가장 자주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속도’다. 어디로 갈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갈지. 같은 종착지(destination)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견 충돌을 안전하게 만든다. 메커니즘도 합의해뒀다 — Winston은 즉시 소리지르는(yell) 걸 좋아하고, Katie는 본인 잘못이면 하룻밤 자고 처리하는 게 필요하다. 무엇에 대해 의견 충돌하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의견 충돌하는지에 대해 합의가 있어야 한다.
    • 보드 미팅은 그냥 또 하나의 접점(touchpoint)이다. 가장 중요한 결정에 대해 보드가 미팅에서 처음 자료를 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Katie의 운영 원칙은 ‘회의는 정리의 자리이지 발견의 자리가 아니다’이다. 큰 안건은 미리 보드 멤버 개별로 시드하고, 의견을 받고, 다른 포트폴리오 회사의 사례를 묻고, 그 모든 입력을 반영한 추천안을 회의에서 정리한다. 회의는 ‘the meeting’이 아니라 ‘a touchpoint’다. 신임 CPO가 자주 빠지는 함정은 ‘회의 자체에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이의 관계가 회의의 결과를 결정한다. (그리고 본인이 처음 CPO가 됐을 때 보드 멤버 Lorrie Norrington이 eBay CHRO에게 shadow시켜준 사례 — 새 CPO가 가져야 할 첫 행동은 ‘아는 척’이 아니라 ‘도와달라는 요청’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 보드와의 관계가 다른 임원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 CRO나 CTO도 물론 보드와 깊은 관계를 갖지만, CPO에게는 어색한 이중 관계(dual relationship)가 있다. 공개회사의 보상위원회는 CEO를 포함한 임원진 보상안을 정하는데, 그 추천을 만드는 사람이 그 임원진의 일원인 CPO다. 자기 보스의 보상안 토론 한가운데 앉아 있는 셈이다. 승계 계획(succession planning)도 마찬가지다 — 노미네이션 위원회와 함께 ‘현 임원진이 다음 단계에 적합한가’를 토론할 의무가 있다. 그게 본인의 동료 임원들이다. 이 이중 충성(dual loyalty)을 깔끔하게 운영하지 못하면 CPO 역할 자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비즈니스 감각보다 ‘구조적 윤리’ 감각이 이 자리의 결정적 자질이라는 게 그녀의 입장이다.
    • 승계 계획(Succession planning)은 ‘버스에 치이면?’이 아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승계 계획을 비상 대비처럼 다룬다 — “CEO가 갑자기 사라지면 누가?” Katie의 정의는 정반대다. “1년 뒤, 3년 뒤, 10년 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 역량(leadership skillset)은 무엇이고, 지금 우리에겐 그게 있는가?” 이 질문은 비상이 아니라 전략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면, 임원 채용은 자연스럽게 ‘지금의 갭’을 메우는 작업이 된다. CPO의 가장 껄끄러운 책임 중 하나는 보드와 CEO 앞에서 “지금 우리 임원진은 다음 단계의 회사를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본인 포함”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신뢰가 미리 쌓여 있어야 한다.
    • Resort has to match the brochure. 인터뷰에서 약속한 것이 입사 후 실제 경험과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Harvey의 문화는 “intense but reasonable”이다 — 9-to-4 회사가 아니지만, 출산휴가나 진료 예약은 진심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사과 없이 그렇게 말한다. Katie는 흥미롭게도 Amazon이 ‘좋은 문화(good culture)’를 가진 회사라고 본다. 그들이 치열한(cutthroat) 환경이지만 인터뷰부터 그걸 명확히 한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나쁜 건 장밋빛 환상(unicorns and rainbows)을 광고해놓고 들어오니 치열한 곳이다. 자기가 어떤 회사인지 명확히 말할 수 있는가 — 그게 대부분의 문화 문제의 진짜 시험대다.
    • “AI로 어떤 프로세스를 제거하거나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가.” Katie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People 리더는 1.5년 안에 도태될 거라고 말한다. AI를 개인 용도로만 가끔 쓰고 업무에 안 쓰고 있다면 이미 한참 뒤처져 있다는 뜻이다. 그녀가 드는 구체적 예 — Harvey에서 한 팀원이 자발적으로 만든 스크립트로 성과 평가를 5분만에 끝낸다, 온보딩 15단계를 3단계로 줄이는 게 새로운 기준이다, JD 작성은 Vault로 자동화한다. 핵심은 ‘기존 프로세스를 어떻게 빠르게 만들지’가 아니라 ‘없앨 수 있는 프로세스를 찾아서 없애는 것’이다.

    이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가장 많이 멈췄던 지점은 두 가지:

    • 하나는 ‘신뢰가 화폐다(Trust as Currency)’라는 점. CPO 일을 ‘직원 경험을 좋게 만드는 일’로 정의하면 결국 보모 국가(nanny state)로 흐른다. ‘비즈니스 아젠다를 People 관점으로 푸는 일’로 정의하면 정치하는 임원으로 흐를 위험이 생긴다. 이 둘 사이를 가르는 건 Katie가 말하는 신뢰(trust) 한 단어다. 개인이 한 말은 절대 옮기지 않는다는 단순한 운영 규칙. 한 번이라도 어기면 다시는 회복 안 되는 통화. 이게 있어야 직원에게도 임원진에게도 같이 솔직할 수 있다. 한 쪽에 솔직해지자고 다른 쪽 신뢰를 깨는 순간, CPO 자리는 그냥 정치 자리가 된다.
    • 다른 하나는 혹독함(demanding)과 보살핌(caring)이 같은 일이라는 주장. 표면적으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나는 당신에게 더 높은 기대를 갖고 있고, 당신이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메시지를 어색함을 감수하고 직접 전달하는 것 — 이게 진짜 보살핌이라는 정의는 설득력 있다. 좋아함을 택하는 매니저는 5년 뒤의 그 사람의 성장을 자기 임기(timeline) 안에서 거래하는 것에 가깝다. 존경받음을 택하는 매니저만 5년 뒤에 “그때 그 피드백 기억나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 Katie가 운영자로서 가진 ‘차이의 인식’이다. 어떤 불만은 protein이고 어떤 불만은 sugar다. 어떤 매니저는 혹독하고(demanding) 어떤 매니저는 그냥 고약하다(disagreeable). 어떤 투명성(transparency)은 신뢰를 만들고 어떤 투명성은 그냥 정보 노출이다. 어떤 사람은 frequent flyer이고 어떤 사람은 그저 한 번 까다로운 의견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차이를 명확히 분류하는 능력이 People 리더의 직무 전문성(craft)의 본질에 가까워 보인다.

    기차가 제시간에 달리는 것과 회사가 이기는 것 — Katie가 자기 COO 역할을 정의하는 두 마디다. 이 두 가지를 People 운영의 직무 전문성 위에서 풀어내는 사람이, 이 시대에 점점 경영의 중심에 서는 이유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 Legal Engineer와 Legal Engineering, 그게 대체 뭔가요

    LinkedIn에서 자꾸 보이는 그 직함

    요즘 LinkedIn 피드에서 변호사 출신인데 Legal Engineer라는 직함으로 이직하는 경우를 부쩍 자주 봅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Harvey, Legora, Sirion, Crosby 같은 회사들이 동시에 같은 직함으로 사람을 뽑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a16z에서 Growth Marketing Partner로 일하는 Tom Hollands가 올해 1월에 쓴 글을 봤습니다. 제목은 “Forward-deployed Job Titles”(의역하면 “현장에 전개된 직함들”). 그 글에서 Hollands는 직함이라는 게 단순한 명함의 문구가 아니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흥미로운 개념은 “title arbitrage”(직함 차익거래) 입니다.

    2011년에 Palantir가 그동안 “solutions engineer”, “integration engineer”로 부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Forward Deployed Engineer”(일명 FDE)라는 새 직함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내에서는 그들을 “Delta”(Delta Force에서 따온 별명)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들렸지만 결과적으로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동안 “고객 응대하는 보조 엔지니어”로 저평가받던 역할이 갑자기 회사의 핵심 인재로 격상됐기 때문입니다. 위 글에서 Hollands가 “title arbitrage”라고 부른 게 이런 현상입니다. 새 직함을 만드는 건 단순히 명함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새로 등장한 권력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는 일이라는 것. 원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Title arbitrage means creating new roles to signify new powers that are emerging within the organization, and therefore, new capabilities of the organization itself.” (직함 차익거래란, 조직 안에서 새로 등장하고 있는 권력을, 따라서 조직 자체의 새로운 역량을 가리키기 위해 새로운 역할을 만드는 일이다.)

    Hollands는 글에서 “Legal Engineer”도 같은 흐름이라고 봤습니다. AI를 일찍 받아들인 변호사들에게 새 정체성을 부여하는 직함이라는 진단입니다.

    Hollands의 진단에서 영감을 받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Legal Engineer가 정확히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고, 왜 지금 갑자기 이 이름이 떠오르고 있는지.


    17년 전에 이미 예언된 직업

    사실 Legal Engineer라는 말 자체는 꽤 오래됐습니다. 영국 옥스퍼드의 법학자 Richard Susskind가 2008년에 낸 책 The End of Lawyers? 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라고 여러 자료가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용한 정확한 표현은 “legal knowledge engineer”였습니다.

    여담이지만, The End of Lawyers? 라는 제목이 자극적이라 한국에서는 “변호사의 종말?” 정도로 옮겨질 법한데, Susskind 본인은 평생 “변호사가 사라진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가 말한 건 변호사가 지금 하는 일 중 일부가 다른 형태로 재편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 제목의 물음표가 핵심입니다.

    Susskind의 아이디어는 단순했습니다. 변호사의 일은 그동안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brain work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분해해보면 상당 부분이 시스템화·표준화·디지털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 분해 작업을 할 사람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 그게 legal knowledge engineer였습니다.

    이 개념이 진짜로 직업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에 Legal Operations(legal ops)라는 직군이 미국 대형 기업 법무팀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2010년대 후반에 CLM(Contract Lifecycle Management) 솔루션과 document automation 도구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의 수요가 슬슬 생겼습니다.

    판이 진짜로 바뀐 건 2022년 말 GPT가 등장한 다음입니다.

    Legora의 Alex Fortescue-Webb이 회사 블로그에 쓴 표현을 빌리면, GPT-3.5가 등장한 순간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It was immediately clear that the ability this technology had to work with language would be transformational for the legal profession.” (이 기술이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법조 직역을 transformational하게 바꿀 것이라는 점이 즉각 분명해졌다.)

    그 이전의 legal tech 도구들은 변호사 업무 흐름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들어와 있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은 다릅니다. 변호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댈 수 있고, 그래서 도입 자체가 워크플로우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Susskind가 17년 전에 그렸던 그림이, 갑자기 시장이 필요로 하는 직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Legal Engineer는 정확히 누구인가

    가장 깔끔한 정의 하나를 들고 와봤습니다. 미국의 legal tech 미디어 CaseFox의 표현입니다.

    “Together, the lawyer sets the legal judgment, and the legal engineer makes that judgment run at scale.” (변호사가 legal judgment를 정하면, legal engineer는 그 judgment가 scale 위에서 작동하게 만든다.)

    이 한 문장이 본질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Legal engineer는 변호사를 대체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호사의 판단이 시스템 위에서 반복적으로, 정확하게, 빠르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면 이런 일들을 합니다: 계약서 검토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하고, CLM 같은 도구를 회사에 맞게 설정하고, 법률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형태로 정제하고, 변호사들이 그 도구를 실제로 쓰도록 onboarding하고 트레이닝합니다. 어떤 사람은 코드를 직접 짜고, 어떤 사람은 low-code 툴로 워크플로우를 짜고, 어떤 사람은 AI에게 어떤 프롬프트를 줄지 설계합니다.

    영국 로펌 Osborne Clarke에서 일하는 Fiona Boag는 자기 일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I see my job as a translator between two fiefdoms. It is not about seeing an issue in isolation, but being able to contextualise to help broach the gap.” (내 일은 두 영토 사이의 번역가다. 문제를 따로 떼어 보는 게 아니라, 양쪽의 맥락을 읽고 그 틈을 메우는 일이다.)

    법조계와 기술 영역, 두 영토가 따로 굴러가고 있고, 그 사이에서 양쪽 언어를 다 알아듣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legal engineer가 어느 한쪽 출신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출신이 기술을 익혀서 가는 길도 있고, 엔지니어가 법무 도메인을 익혀서 가는 길도 있습니다. 시장은 양쪽을 다 받고 있습니다.


    세 회사가 보여주는 세 가지 모습

    Legal engineering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회사를 보면 가장 빠릅니다. 세 곳을 골랐습니다.

    Harvey, 변호사 출신을 Legal Engineer로 다시 정의한 회사

    Harvey는 미국의 legal AI 회사 중 가장 큰 곳 중 하나입니다. 회사 발표 기준으로 1,000개 이상의 고객사, 60개국, AmLaw 100(미국 매출 상위 100대 로펌) 중 절반 이상이 도입했다고 합니다.

    Harvey의 채용공고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Legal Engineer”라는 직군을 모집하는데, 자격 요건이 — top-tier 로펌이나 인하우스에서 일한 변호사입니다. 코딩 능력이 아니라 변호사 경력이 핵심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 Harvey 채용공고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Similar to the way Solutions Architects secure the ‘technical win’ in the sales process, Legal Engineers secure the ‘legal win’ by performing in-depth customer discovery and education on Harvey’s solutions through targeted meetings and demos that resonate with the customer’s day-to-day workflows specific to their legal practice area.” (Solutions Architect가 영업 과정에서 ‘technical win’을 확보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Legal Engineer는 고객의 실제 업무 흐름에 닿는 미팅과 데모를 통해 깊이 있는 발견과 교육을 수행함으로써 ‘legal win’을 확보한다.)

    즉 고객사 변호사들과 직접 만나서, “이 회사의 어떤 워크플로우에 우리 AI를 어떻게 끼워넣어야 진짜로 도움이 될지”를 함께 설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결국 그 변호사들의 일을 본인이 직접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Harvey는 변호사 출신만 뽑습니다.

    Harvey의 모델이 한국 변호사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봅니다. 변호사 경력 그 자체가 새로운 직업의 자격 요건이 될 수 있다는 것. 코딩을 못 해도, 시스템 설계 경험이 없어도, 변호사로서 진지하게 일해본 적이 있다면 그 경험 자체가 자산이 됩니다. Harvey는 거기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Crosby, 로펌 자체를 다시 만든 회사

    다음은 Crosby라는 회사입니다. 미국에 작년에 등장한 회사인데, 일하는 방식이 색다릅니다.

    첫째, Crosby는 그냥 SaaS 회사가 아니라 로펌입니다.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등록한 진짜 법무법인입니다. Crosby Legal Inc.라는 소프트웨어 회사 옆에 Crosby Legal PLLC라는 로펌이 따로 있고, 둘이 같이 굴러갑니다.

    둘째, 사무실에 들어가면 변호사 책상과 엔지니어 책상이 번갈아 놓여 있다고 합니다. 한 명이 어떤 조항을 보면서 막히면 옆에 엔지니어가 바로 듣고, 그날 안에 그걸 처리하는 작은 기능 하나가 추가되는 식입니다.

    셋째, 가격이 시간당이 아닙니다. 계약서 한 건당 정해진 금액(약 400달러)을 받습니다. Billable hour가 없습니다. 그리고 계약서 한 건 검토에 걸리는 중간값이 58분이라고 합니다. 3주에 1,000건씩 처리한다고 합니다.

    공동창업자가 두 명입니다. Ryan Daniels는 변호사 출신으로 Cooley에서 일하다가 Stanford Law에서 legal AI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John Sarihan은 Ramp(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핀테크 중 하나)의 초기 엔지니어였습니다. 변호사 한 명, 엔지니어 한 명. 이 조합이 만들어낸 것이 위 풍경입니다. Sequoia가 작년에 시드를 리드했고, 올해 가을 Series A로 2,000만 달러를 더 받았습니다.

    Crosby가 다른 legal AI 회사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은 “로펌에 파는 SaaS”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신 자기들이 직접 로펌이 됐습니다.

    이 모델이 흥미로운 건, 가격 구조까지 같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시간당 청구 대신 계약서 한 건당 고정가. 시간을 많이 써야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빨리 끝낼수록 더 많은 건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AI를 도입할 인센티브 자체가 가격 모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로펌의 시간당 청구가 왜 변화에 저항적인지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변호사 한 명이 1시간 걸리던 일을 AI로 10분 만에 끝내면, 시간당 청구 모델에서는 매출이 1/6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도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Crosby는 이 구조를 통째로 바꿔버렸습니다. 빠를수록 돈을 더 번다.

    고객 명단을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Cursor, Clay, UnifyGTM. 요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세일즈 스타트업들입니다. 이 회사들은 영업이 잘 되니까 계약서가 폭발적으로 들어오는데, 전통적인 로펌에 맡기면 며칠씩 걸려서 결국 매출 인식이 늦어집니다. Crosby는 그 병목을 한 시간 안에 풀어주는 회사입니다.

    LegalOn, 일본의 변호사 두 명이 만든 글로벌 회사

    마지막으로 일본의 LegalOn을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reference이기 때문에 좀 자세히 봅니다.

    LegalOn의 창업자는 Nozomu TsunodaMasataka Ogasawara 두 명입니다. 둘 다 일본의 기업법무 변호사 출신입니다. 2017년 도쿄에서 LegalForce라는 이름으로 창업했고, 202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LegalOn으로 리브랜딩했습니다.

    이 회사가 보여준 성과는 솔직히 좀 놀랍습니다.

    • 2025년 7월: Series E로 5,000만 달러 추가 조달, 누적 펀딩 2억 달러 이상. 리드 투자자는 Goldman Sachs Growth Equity.
    • 같은 시점에 OpenAI와 직접 전략적 협약 — 양사 엔지니어가 같이 일하면서 차세대 legal AI agent를 만들기로.
    • 2025년 10월: ARR(연간 반복 매출) ¥10B(약 670억 원) 돌파. 회사 발표 기준 일본에서 창업한 AI 회사 중 최단기간(6.5년) 도달.
    • 7,000개 이상의 조직 사용. 일본 상장사의 30% 이상, 일본 Fortune 500의 87%가 도입(이 수치는 회사 자체 발표라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번 멈춰서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습니다. 변호사 두 명이 만든 회사가 OpenAI와 동등한 협력 파트너로 인정받고, Goldman Sachs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는 것.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가진 변호사로서의 도메인 깊이가 일반적인 AI 회사가 따라잡기 어려운 자산이었기 때문입니다. LegalOn의 차별점은 변호사들이 직접 만든 50개 이상의 검토 playbook이고, 이건 generic한 LLM이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입니다.

    LegalOn의 Global CEO인 Daniel Lewis는 TechCrunch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state of the technology isn’t there yet, and replacing lawyers isn’t even our vision. Lawyers are still in the driver’s seat. The things AI can’t do perfectly today are, by definition, the things only people can do. And the lawyers who lean into that responsibility — to oversee, to edit, to exercise judgment — are the ones seeing the most extraordinary leverage from AI right now.” (기술 수준이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고, 변호사를 대체하는 건 우리의 비전조차 아니다. 변호사들은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오늘날 AI가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일은, 정의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에 — 감독하고, 편집하고, 판단을 내리는 — 기꺼이 뛰어드는 변호사들이 지금 AI로부터 가장 비범한 leverage를 얻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인터뷰를 처음 읽었을 때 좀 안심이 됐습니다. 이 사람들이 변호사를 잘 알고 있고, 변호사를 적으로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여기까지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이런 게 있나.

    답은 “있는데, 이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도가 맞을 것 같습니다.

    회사 단위로 보면 이미 꽤 진행되고 있습니다. 로톡을 서비스하는 로앤컴퍼니가 2025년 7월에 500억 원 규모의 Series C-2를 받았는데, 국내 리걸테크 단일 라운드 사상 최고액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슈퍼로이어라는 AI 서비스는 제14회 변호사시험 선택형 문항에서 합격자 상위 5%에 해당하는 점수(123문항 정답, 합격선은 96문항)를 기록했습니다. 이건 회사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비영어권 AI가 자국어로 변호사시험 객관식 합격선을 넘은 첫 사례입니다.

    BHSN은 변호사 출신 임정근 대표가 창업한 회사인데, 2025년 3월 Series B 100억 원에 이어 7월에는 삼성벤처투자가 전략적 투자에 참여했습니다. 비즈니스 리걸 AI 솔루션 ‘앨리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엘박스는 카카오브레인 LLM팀 리더 출신을 R&D 리더로 영입했고, 더존비즈온 같은 기존 SaaS 강자들도 리걸테크 에디션을 출시하며 진입했습니다.

    회사들이 자라고 있다는 건 분명한데, 흥미로운 지점은 이 회사들의 채용공고에 “Legal Engineer”라는 직군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있습니다. 변호사 출신으로 SaaS 영업팀장을 맡은 사람도 있고, LLM 엔지니어 출신 R&D 리더도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사실상 legal engineer가 하는 일을 일부씩 하고 있는데, 직군명은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게 글 도입부에서 짚었던 “직함이 없으면 그 일에 사회적 정당성이 따라오기 어렵다”는 지점과 정확히 닿아 있습니다. 일본 LegalOn의 창업자들은 본인들이 변호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산으로 삼아 글로벌 회사를 만들었는데, 한국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 경로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직함이 따라오지 않으면 시장이 그 직업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러면 보상도, 커리어 경로도 명확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어떨까

    지금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하는 일을 한번 들여다보면 거기에 두 종류가 섞여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judgment”. 사실관계를 종합하고, 위험을 판단하고, 의뢰인에게 어떻게 가는 게 맞는지를 결정하는 일. 다른 하나는 그 judgment를 문서로, 절차로, 결과물로 옮기는 일들.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이 AI에게 점점 옮겨가고 있다는 건 이미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게 변호사라는 직업을 위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에서 인용한 Daniel Lewis의 말처럼 judgment는 사람만 할 수 있고, 그 책임을 지는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다만 judgment와 typing이 섞여 있던 일이 분리되면서, judgment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과 그 judgment가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직업의 지형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두 길 다 매력적인 길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각도에서 같은 풍경이 보입니다. 회사의 법무 비용을 시간당으로 받고 있는지, 결과물 단위로 받고 있는지. Crosby 같은 모델이 한국에 들어오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런 옵션이 시장에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협상의 풍경을 바꿉니다. 사내 법무팀의 일 중에 “judgment”는 얼마이고 “처리”는 얼마인지를 한 번 구분해보면, 처리 영역에 도구를 도입했을 때 judgment 영역에 더 집중할 시간이 생기고, 그게 결국 사업의 의사결정 속도로 이어집니다.

    저는 변호사로 10년 이상 일했고 지금은 스타트업 COO로서 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영역이 섞여 있는 풍경에 익숙합니다. 그 경험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legal engineering은 새로운 직업명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사고방식에 가깝습니다. 법조 일을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 워크플로우로 보는 시각, 그리고 그 위에서 사람의 판단이 어디에 자리해야 하는지를 다시 그리는 시각. 이름은 아직 한국에 정착되지 않았지만, 일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5년쯤 뒤에 다시 현재를 돌아보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B2B 회사들은 왜 매년 수백억 원을 들여 F1 스폰서를 할까

    요근래 F1 모터 스포츠가 부쩍 친숙해진 느낌이다.

    넷플릭스 Drive to Survive 시즌 1이 풀린 2019년이 기점이었다. 드라이버 간 라이벌 관계, 감독실의 정치, 무전기로 오가는 욕설,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의 대역전. 이걸 마치 드라마처럼 편집해서 보여주니까, 쳇바퀴 같은 서킷을 도는 지루한 스포츠에서 서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2025년 여름 개봉한 Brad Pitt 주연의 영화 F1 더 무비가 결정타였다. 박스오피스 6억 달러 돌파, Apple 오리지널 영화 중 사상 최대 흥행을 했고, 한국에서도 누적 관객 500만 명을 넘겨 한국에서 2025년 개봉작 전체 중 5위의 성적을 거뒀다.

    F1 머신의 곳곳에 빼곡히 박힌 기업들의 로고를 보면서 왜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거액을 써가며 F1 스폰서가 되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특히 내 눈에 들어온 건 일반 소비자가 평생 살 일 없는 B2B 테크 회사들의 로고였다. Oracle, Atlassian, HP, Salesforce, Palantir, Splunk, Rubrik, Groq 등등.

    Williams는 아예 팀 공식 명칭을 Atlassian Williams F1 Team으로 바꿨다. HP와 Oracle은 각각 Ferrari와 Red Bull 팀의 타이틀 스폰서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F1 그랑프리는 모터 스포츠라기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엔터프라이즈 테크 컨퍼런스 같다.


    F1 머신은 “달리는 데이터센터”

    F1 머신 한 대당 300~500개의 센서가 달려있고, 여기서 초당 110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F1과 AWS가 공동으로 공개한 공식 숫자다.

    그랑프리 한 주말에 팀당 약 160TB의 데이터를 처리한다. 타이어 표면 온도, 엔진 회전수, 브레이크 디스크 마모도, 공기 저항, ERS(에너지 회수 시스템) 출력, 심지어 운전자의 심박수까지. 그 모든 데이터가 트랙 옆 가라지와 본사로 동시에 쏟아진다. 본사에서는 엔지니어 수십 명이 실시간 대시보드를 보면서 무전으로 드라이버에게 다음 코너 브레이크 5m 늦추라고 지시한다.

    당시 Aston Martin Red Bull Racing(현 Red Bull Racing)의 IT 인프라 책임자 Neil Bailey는 이런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한 시즌에 21번이나 데이터센터를 새로 짓는다. 항공편과 해상편으로 45톤의 장비를 매번 옮긴다. 트랙사이드 IT 엔지니어 두 명 중 한 명은 동시에 핏스톱 크루로도 뛴다.

    Red Bull도 마찬가지다. AT&T와의 파트너십 시절, 그랑프리 주말마다 트랙에서 영국 본사까지 1Gbps 전용 회선을 깔았다고 한다. 단, 3일 간 사용할 회선 하나를 위해서. McLaren은 매 레이스마다 140TB의 SSD 스토리지를 이동시킨다.

    이 정도 데이터 인프라를 굴리려면 클라우드, AI 시뮬레이션, 사이버보안, 네트워킹이 다 필요하다. Mercedes 표현으로는 F1은 “현대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의 궁극적 스트레스 테스트” 현장이다. 극한의 데이터 볼륨, 실시간 의사결정, 글로벌 운영, 제로 마진 오브 에러.

    그러니까 F1 팀은 더 이상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레이싱하는 데이터 회사이고, 이런 회사에 시스템을 파는 B2B 테크 회사들이 리버리(livery)에 줄을 서 있는 거다. 자기 제품이 가장 가혹한 조건에서도 작동한다는 살아있는 증명을 하기 위해서. 레퍼런스 마케팅의 끝판왕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회의실, 패독 클럽 출입권

    패독(paddock)은 F1에서 팀들의 트레일러와 호스피탈리티 시설이 모인 백스테이지 구역을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패독 클럽은 그랑프리마다 운영되는 초호화 VIP 라운지다. 이건 단순히 비싼 술집이 아니라, 1984년에 Paddy McNally와 Bernie Ecclestone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B2B 영업 인프라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시작했다.

    한 스포츠 마케팅 분석 기관의 자료는 이걸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패독 클럽은 환대 서비스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면서 가장 오해받는, 정교하게 설계된 B2B 네트워킹 플랫폼이다. C-suite, 임원, 의사결정자, 산업 영향력자들이 큐레이팅된 그룹으로 모이는 고성능 생태계다.

    코로나 시절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2020년 대면 행사가 불가능해지자, F1 운영진은 “버추얼 패독 클럽”을 출시했다. 파트너로 누구를 골랐을까? B2B 화상 회의의 대명사 Zoom이었다. 명시된 목표는 “B2B 기회 유지(maintain B2B opportunities)”. 럭셔리한 트랙 뷰가 핵심이 아니라, B2B 네트워크 그 자체가 핵심 상품이라는 게 명확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가격 감각을 위해 한 가지 더. 패독 클럽 풀 시즌 패키지는 인당 3,000~10,000 유로(약 4백~1천5백만 원) 선이고, 기업 단위 후원 프로그램은 6~7자리 금액(수억~수백억 원)이 들어간다. 그렇게 비쌀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VIP 호스피탈리티 게스트의 72%가 네트워킹을 통해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한 가지 더 있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영업팀 인센티브로 F1 그랑프리 트립을 건다. “이번 분기 1등 하면 모나코 그랑프리 보내줍니다!” 당연히 이런 트립의 좌석도 결국 후원사가 공급한다. F1은 글로벌 B2B 영업 인센티브 시장의 인프라이기도 한 셈이다.

    이게 B2B 후원의 본질이다. 타깃이 적기 때문에, 그 적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통째로 사는 게 더 싸다. 코카콜라가 F1 머신을 후원하면 콜라 100만 병을 팔아야 후원료를 회수한다. Atlassian이나 Splunk 같은 회사는 한 회사한테 수억 원짜리 계약 하나만 따면 끝난다.


    브랜드 임프레션, F1 팬들도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F1의 광고 노출(브랜드 임프레션)은 단순히 많기만 한 게 아니라, 퀄리티 높은 임프레션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F1 시청자는 평균적으로 다른 스포츠 시청자보다 나이가 많고, 소득이 높고,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직장인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이건 추측이 아니라 후원사들이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Mercedes F1 팀이 자기 청중을 이렇게 묘사한다: “고소득 개인, C-suite 임원, 산업 전반의 영향력 있는 의사결정자들.”

    후원 결정에 C-level 본인의 개인 취향이 크게 작용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CrowdStrike의 CEO George Kurtz다.

    CrowdStrike는 클라우드 기반 사이버보안 회사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보안 기업 중 하나고, S&P 500 지수에 가장 빨리 편입된 사이버보안 회사다. 이 회사의 CEO Kurtz는 단순히 F1 팬 정도가 아니다. 레이싱 커리어에서 우승 경력도 있는 진짜 업계 사람이다.

    심지어 George Kurtz는 2026년 1월, Mercedes F1 팀의 지분을 약 3억 달러(약 4,200억 원)에 매입해서 공동 소유주이자 기술 자문위원이 됐다. CrowdStrike가 Mercedes F1을 후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CEO 본인이 팀의 일부가 된 사례이다.

    이 영향력을 좀 더 넓혀서 보면, 각 기업의 IT 관련 의사결정권자들이 F1을 보면서 리버리에 새겨진 로고를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의사결정의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무의식적 편향(subconscious bias)이다.

    그러니까 리버리에 박힌 기업들의 로고는 일반 팬을 향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일반 팬의 회사에 있는 IT 결정권자, 그 결정권자에게 도구를 추천하는 매니저, 그 매니저 밑에서 도구를 직접 쓰는 실무자까지. 이 모든 레이어를 동시에 노리는 정밀 타격이다.


    리버리 로고는 메인스트림에 진입했다는 신호

    여기까지 보면 한 가지 패턴이 보인다. F1 머신의 리버리는 단순히 자동차 도색이 아니라, 그 시점의 글로벌 B2B 메인스트림 명단이다.

    2026년 시즌 리버리에 새로 등장한 회사들:

    • Rubrik (McLaren, 신규) — 데이터 백업·사이버 복원 전문 SaaS. 2024년 IPO, 시가총액 약 30조 원
    • Groq (McLaren, 신규) — AI 추론 전용 칩 스타트업. NVIDIA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신예
    • Cato Networks (Alpine, 신규) — SASE(보안 + 네트워크 통합 클라우드) 전문, 2024년 유니콘 진입
    • IndraMind (Alpine, 신규) — AI 기업 솔루션 신생 스타트업

    위 회사들의 로고가 리버리에 박혔다는 건 단순히 “후원료를 낼 수 있을 만큼 돈이 많다”는 뜻만이 아니다. 글로벌 C-suite의 의사결정 테이블에 자기 이름을 올릴 단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들이 올해 패독 클럽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5년 후 이들의 메인 고객이 될 수 있다.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 기업 중에 F1 리버리에 이름을 올린 회사가 아직 없다. 삼성도, 현대도, 네이버도, 카카오도. 한국 B2B 테크 회사 중에서는 더더욱.

    F1 머신 리버리에 한국 B2B 테크 회사의 로고가 새겨지는 날. 그건 단순히 한 회사의 마케팅 성공이 아니라, 한국에서 진짜 글로벌 B2B 테크 기업이 나왔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겠다.

    글로벌 C-suite의 의사결정 테이블에 한국 회사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뜻이고, 자기 제품을 가장 까다로운 환경에서도 작동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뜻이고, 한국 B2B 산업이 그런 회사를 배출할 만큼 성숙했다는 뜻이 될 거다.

    [참고: 한국 기업 중 과거 F1 머신의 리버리에 로고를 새겼던 역사는 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대한항공이 Benetton에, 2000년대 한진해운이 Renault에, 2010년대 초 LG가 Red Bull Racing에 로고를 새겼다.]

  • 기업 변호사에서 스타트업 COO까지 — 인터뷰 요약

    프릭스(PRIX)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로펌 변호사에서 대기업 신사업, 그리고 스타트업 COO까지 — 커리어 전환의 맥락과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위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왜 로펌을 떠났나

    로스쿨 졸업하고 법무법인에서 송무, 형사변호, 기업 자문 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의 일은 밸류체인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 있더라고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대응 논리를 만드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고, 비즈니스의 앞단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습니다.

    대기업에서 배운 것

    한화생명 드림플러스에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PM, 사업기획, 전략투자까지 다양한 역할을 경험했습니다. 법무팀이 아닌 곳에서 비즈니스 전반을 만져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 그런데 깨달은 건 ‘어떤 직무가 맞는가’보다 ‘어떤 스테이지의 조직에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성숙한 대기업에서는 신사업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전체 규모에 비해 너무 미미했고, 개인의 기여를 체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채널톡을 고른 기준 3가지

    그래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결심했고, 회사를 고를 때 세 가지 기준을 세웠습니다.

    1. 나의 머리로 납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2. 실무자를 넘어 매니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
    3. 명확한 확장성이 보이는 회사

    당시 채널톡은 시리즈 C 투자 유치 약 1년 후였고, 위 세 가지 기준에 모두에 부합했습니다.

    법무팀장에서 COO로

    처음에는 법무팀장으로 합류했습니다. SLA 원칙을 세우고, 노션 티켓 시스템을 도입하고, 첫 외부감사를 대비하는 등 법무 체계를 처음부터 만들어갔습니다. 그러다 Corporate Legal — 주주총회, 이사회, IR — 을 맡으면서 역할이 자연스럽게 넓어졌고, COO 포지션이 필요한 시점에 운영 총괄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변호사로서 훈련된 리스크 분석과 이해관계 조율 능력이 이 전환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COO로서 하는 일

    CEO가 비즈니스와 제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채용·법무·재무·정보보호·데이터분석·총무 — 운영의 전부를 맡고 있습니다. CEO의 추진력이 최대로 발휘되도록 안정성을 확보하고, 잠재적 리스크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입니다. 200명에서 300명, 500명으로 성장할 조직의 체질을 미리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요.

    채널톡에서 쓰는 닉네임이 Sam(샘)인데, 반지의 제왕의 샘와이즈 갬지에서 따왔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가 저한테는 각별합니다.

    “저는 반지를 직접 나를 수는 없지만, 반지를 운반하는 주인공 프로도를 업고 갈 수 있습니다.”

    리더십에 대해 생각이 바뀐 것

    예전에는 일터에서의 행복은 nice-to-have일 뿐이고, 성과가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팀원이 왜 지쳐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심으로 들어보는 게 먼저라는 걸 배웠습니다. 동기가 떨어진 사람에게 무작정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는 건, 퇴로를 막고 절벽으로 미는 것과 같습니다. 숨통을 열어주고, 그 다음에 높은 기준을 제시해야 합니다.

    리더십에 정답은 없고, 마치 변검을 하듯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솔루션을 드려야 합니다. 매일 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일하고 있고, 멤버들한테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하나만 남긴다면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절대 먼저 물러나지 않겠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의 “I didn’t quit, though.”란 말을 좋아합니다. 버티면 기회는 온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전문: PRIX 기업 법무 시리즈 #4 — 채널톡 박세희 COO

  • AI 시대, People 리더가 경영의 중심에 서는 이유 (feat. Katie Burke, Harvey COO)

    2026년 1월, Legal AI 유니콘 HarveyKatie Burke의 직함을 CPO(Chief People Officer)에서 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변경했다. HubSpot에서 11년간 CPO를 역임하고 Harvey에 합류한 지 1년여 만의 일이다.

    CHRO나 CPO가 COO가 되는 건 극히 드문 경로다. 대부분의 COO는 전략, 재무, 영업 출신이다. 그런데 Katie의 전환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단순한 타이틀 변경이 아니라 하나의 시대적 신호처럼 읽힌다.

    최근 몇 달간 Katie Burke의 인터뷰와 기고를 집중적으로 따라가면서, AI 시대에 기업의 People 리더십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테이블에 앉으려 하지 말고, 테이블을 만들어라

    Katie가 한 말 중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이 있다.

    “Don’t ask for a seat at the table — build the table and set the menu.”

    자리를 달라고 하지 말고, 테이블을 만들고 메뉴까지 짜라는 것이다. People 팀이 비즈니스의 ‘지원 부서’가 아니라 ‘전략의 입력값’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마케터 출신답게 내부 메시지도 “share of attention” 관점으로 본다. 직원은 captive audience가 아니라는 것.

    실제로 Katie가 Harvey COO로서 가장 먼저 한 일들은 전부 People 영역이었다. VP of Talent을 채용하고(Intercom에서 글로벌 스케일링을 경험한 Maggie Landers), Chief of Staff를 뽑아 운영 케이던스와 내부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세우고(Sarah Samson), HR 테크스택과 온보딩, 밸류 코드화를 도맡을 프로세스 빌더를 키웠다(Tia Thompson).

    사람 인프라가 탄탄해야 회사가 스케일한다. CHRO 출신 COO가 직접 증명하는 구조다.


    AI 시대, People 리더가 Pace Setter

    Katie는 명확하게 말한다.

    AI로 어떤 프로세스를 제거하거나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가? 1.5년 내에 이걸 답하지 못하면, People 리더로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Harvey에서는 팀원이 자발적으로 성과 리뷰를 5분 만에 완료하는 AI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팀별, 레벨별 개인화와 소비 기반 넛징(nudg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Klaviyo, ServiceNow의 CPO들이 Chief AI Officer를 겸직하는 추세도 언급한다.

    Business Insider 주최 HR 임원 라운드테이블에서 Katie가 한 말이 핵심을 찌른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우리 조직이 물에 발만 담그고 실험 중인 건지, 아니면 실제 임팩트와 변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지.

    그 차이를 만드는 패턴이 있다고 한다. 시니어 리더가 직접 에이전트를 빌드하고 해커톤에 참석하는 것. “공유할 수 있는 사례가 있어요”가 아니라,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는 것. 그리고 채찍만으로는 변환을 이끌 수 없다. 당근과 보상과 흥분이 있어야 한다.

    같은 자리에서 UiPath CPO Agnes Garaba가 더 과감한 질문을 던졌다. “오늘 HR 팀 전체를 날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상상력의 한계라고 했다.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니다. 조직 전환(organizational transformation)의 문제다. AI 시대의 People 리더는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설계자여야 한다.


    문화는 전략이다 — Demanding but Caring

    AI가 효율을 만들어줘도, 결국 사람의 기준과 문화가 성과를 결정한다. Katie가 가장 시간을 들여 이야기한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I think you can be liked or you can be respected. And you have to pick a lane.”

    좋아지거나, 존경받거나. 레인을 골라야 한다.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과 caring은 별개가 아니다.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가장 깊은 배려(caring)라는 게 Katie의 확신이다.

    나부터 솔직히 드러낸다. Katie는 자신의 performance review를 팀에 8년간 공유했다. 잘한 것과 못한 것 모두 포함해서. HubSpot에는 Failure Forum이라는 자리도 있었다. 임원이 전사 앞에서 진짜 실패를 고백하는 자리인데, “내 최대 약점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가짜 실패는 금지였다. VP of Product가 올라와서 “고객 론칭을 망쳐서 고객지원팀을 3일간 마비시켰다”고 사과했다. 이런 겸손이 쉽게 얻을 수 없는 충성도를 만든다고 Katie는 말한다.

    어색함에 머무른다. “Do you think that was your best work?”라고 묻고 침묵을 견딘다.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게 훨씬 쉽다. 누구나 그 유혹을 느낀다. 그걸 택하지 않는 것이 진짜 caring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하다. “나는 당신에게 더 높은 기대를 갖고 있고, 당신이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같이 그 코스를 그려볼까?”

    신뢰를 화폐로 쓴다. 개인이 Katie에게 한 말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 대신 패턴 피드백(thematic feedback)은 공유한다. “경영진이 이 부분에 우려가 있다”는 말은 하되, “누가 그랬다”는 절대 안 한다.

    “신뢰를 잃는 순간, 아무도 다시 나한테 오지 않는다. 순간의 권력을 잡으려고 신뢰를 희생하면 안 된다.”

    내가 가장 열심히 뛴다. Michael Jordan은 팀메이트들을 괴롭히고 자극했다. 하지만 가장 열심히 뛰었고, 결정적 순간에 Steve Kerr에게 패스할 줄 알았다. 높은 기준을 요구할 정당성은 work ethic에서 나온다. 가장 열심히 뛰지 않으면서 높은 기준을 요구하면, 그건 그냥 갑질이다.

    Harvey의 가치 중 하나는 “Jobs Not Finished”다. 좋은 것(good)과 위대한 것(great)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하지만 Katie가 말하는 이상적인 밸런스는 이렇다. 주 5일 중 3일은 도전적이고 힘든 날. 2일은 완전히 이기는 느낌이 드는 날.

    “People are at their best when things feel demanding but not completely overwhelming.”

    사람은 빡세지만 완전히 압도당하지는 않을 때 최고의 성과를 낸다.

    Katie가 받는 최고의 칭찬은 5년 뒤에 온다고 한다. “그때 그 피드백 기억하세요?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줬고, 자주 생각합니다.”


    기차가 제시간에 달리고, 이기는 것

    Katie는 자기 COO 역할을 두 마디로 정의한다.

    Trains on time and Harvey winning — those are the two things that matter. Everything else is going to get reshuffled.

    기차가 제시간에 달리는 것. 그리고 Harvey가 이기는 것. 나머지는 전부 리셔플된다.

    이 정의가 좋은 이유는, People 리더십의 본질과 정확히 겹치기 때문이다. 기차가 제시간에 달리려면 사람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하고, 온보딩이 돌아가야 하고, 케이던스가 있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흘러야 한다. 이기려면 높은 기준이 있어야 하고, 채용이 정확해야 하고, 문화가 전략과 정렬되어야 한다.

    Katie의 전환기 교훈도 솔직하다. HubSpot 500명 팀 리더에서 Harvey 200명 회사로 왔을 때, “시간이 남겠지”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렸다.

    “Your old copy-paste playbooks will never work.”

    이전 회사의 플레이북을 복붙하면 실패한다. 어떤 경력이든, 새 조직에선 초심자의 모자(beginner’s hat)를 써야 한다.


    몇 가지 생각

    Katie Burke를 따라가면서, People 리더십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HR은 채용하고, 보상 설계하고, 노동법 지키는 기능 조직이었다. 지금의 People 리더는 AI로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문화를 전략적 무기로 만들고, 조직의 운영 시스템 자체를 구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Katie의 CHRO에서 COO로의 전환이 자연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보딩, 밸류 코드화, 글로벌 확장, 내부 커뮤니케이션 — 전부 People 팀에서 시작된 일이다. 채용 인프라가 탄탄해야 회사가 스케일한다. 결국, 사람의 일이 곧 회사의 운영 시스템이다.

    테이블에 앉으려 하지 말고, 테이블을 만들고 메뉴를 짜라.

    가장 열심히 뛰는 사람이 가장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조직. 어색한 피드백을 견딜 수 있는 문화. AI가 아무리 효율을 만들어도, 그 위에 서 있는 건 결국 사람과 기준과 신뢰다.

    그것을 설계하는 사람이, 이 시대에 경영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 Stripe 28번째 직원에서 Linear COO까지, 실험이 전략이 되는 법 (Cristina Cordova, COO at Linear)

    Cristina Cordova. Stanford 정치학 전공. Stripe에 28번째 직원으로 합류해 7년 반 동안 파트너십 조직을 처음부터 만들었고(Shopify, Apple, Google), Notion에서는 Head of Platform & Partnerships로 API 런칭과 셀프서브 성장을 이끌었다.

    First Round Capital 파트너를 거쳐, 현재 Linear COO. 80개 이상 스타트업의 투자자이자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그녀가 SaaStr 무대에서 풀어놓은 이야기에서, 스타트업 COO가 가져가야 할 에센스를 뽑았다.


    1. 실험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전략의 씨앗이다

    초기에는 누구나 무능감에 시달린다. 다른 사람은 다 자기 할 일을 아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감각.

    “초기에 제가 잘했던 게 있다면, 이것저것 실험하면서 감을 찾아간 겁니다. 파트너 후보들에게 콜드 이메일을 정말 많이 보냈는데, ‘어, 이런 이메일에 반응이 오는구나’ 싶으면 바로 전부 그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Early on, what I did well was kind of like experimenting my way to something. I sent a lot of cold emails to prospective partners, and when I would notice like, ‘Oh, this kind of email seemed to work,’ I would change all of my emails to that.”

    그러다 페르소나별로 다른 메시지가 먹힌다는 걸 알게 되면, 타겟팅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핵심은 이 대목이다:

    “지금도 똑같은 걸 합니다. 다만 이제는 그게 전략이 된 거죠. 실험하고, 시도하고, 상대방이 제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것 — 그게 제 방식이 됐습니다.”

    “I still kind of do those things now, but now it’s like a strategy. Experimentation, trying things, thinking about different people and how they’re going to perceive your message — is just how I tend to do things.”

    같은 행동인데, 프레임이 달라졌다. 초기엔 “어둠 속에서 더듬는 것”이었고, 지금은 “의도적 실험 전략”이다. 바뀐 건 행위가 아니라 확신의 유무다.

    이건 COO에게 특히 중요한 메시지다. 경영의 상당 부분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시도하고, 되는 걸 반복하고, 안 되는 걸 버리는 과정이다. 그 과정 자체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게 전략 수립의 정석이다.


    2. 취약함을 보여라 — 팀이 따라온다

    Cristina의 초기 매니저가 해준 조언:

    “팀 앞에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뭘 확신하지 못하는지, 아직 뭘 파악하는 중인지 말하세요. 그 여정에 팀을 같이 태우는 겁니다.”

    “You kind of need to be a little bit more vulnerable with your team. Tell your team what you’re unsure of, what you’re still trying to figure out. Kind of bring them along in that journey.”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면, 팀원들이 “같이 풀자”고 나선다. 반대로 다 아는 척하면, 팀은 지시를 기다리는 수동적 집단이 된다.

    “그러면 팀원들이 아이디어를 들고 옵니다. ‘이 사람이 전략 다 짜서 시키겠지’ 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요.”

    “They’re coming to you with ideas versus just assuming that you have the strategy or just going to tell them what to do.”

    이건 리더십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 흐름의 설계다. 리더가 불확실성을 공유하면, 팀은 문제 해결자가 된다. 리더가 확실한 척하면, 팀은 실행자로 축소된다.


    3. 고객에게 투자하듯 베팅하라 — Shopify 이야기

    Stripe에 입사한 첫날, 첫 미팅. 파트너였던 Shopify가 다른 결제사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30명짜리 회사에서, 핵심 파트너를 잃는 상황.

    보통이라면 “다음 파트너를 찾자”고 넘어간다. Cristina는 그러지 않았다.

    “저는 그걸 ‘끝났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 살릴 수 있는가? 다른 결정을 하게 만들 수 있는가?”

    “I’m not someone who kind of takes that as the end all be all. The question is, can we save it? Can we convince them to make a different decision?”

    왜 떠나려 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경험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는지 제안했다. 문제는 엔지니어 3명을 코어 프로덕트에서 빼야 한다는 것. 30명 회사에서 엔지니어링의 약 15%를 한 고객에게 쏟는 결정.

    당시 Shopify는 50~60명짜리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또 다른 스타트업 하나” 잃는 것일 수 있었다.

    Cristina의 판단 기준:

    “마치 제가 투자자이고 그들이 피칭하는 것 같았습니다. 듣고 있으면서 ‘이건 투자하겠다’ 싶었습니다.”

    “It was almost like if I was an investor and they were pitching me their idea, I’d be like, I’d invest in that.”

    고객을 투자 대상처럼 평가했다. 이 회사의 전략이 맞는가? 비전이 설득력 있는가? 데이터를 보니 Stripe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가?

    “이미 손 안에 있는 새입니다. 그걸 날려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We have a bird in hand, and I do not want to let that fly away.”

    이게 전략적 고객 선별이다. 모든 고객을 동등하게 대할 수 없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이 고객에 엔지니어링 자원을 걸 가치가 있는가”를 투자자의 렌즈로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Shopify는 Stripe의 성장을 견인한 핵심 파트너가 되었다.


    4. 커뮤니티는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Notion에서 배운 것. 온보딩 경험을 개선하면서 직군별 템플릿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HR이면 경비 정책 템플릿, 엔지니어면 스프린트 보드.

    그러자 유저들이 알아서 템플릿을 만들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사람들이 알아서 템플릿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이게 진짜 커뮤니티의 핵심입니다 — 회사가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생겨나서 스스로 돌아가는 커뮤니티.”

    “You started to see that people in the community were starting to build those templates too. It’s kind of happening organically. And I think that’s a really key part of true community — not forced corporate ipsum community, but a community that actually existed and started on its own.”

    진짜 커뮤니티는 회사가 설계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움직임이다. 회사의 역할은 그걸 발견하고 증폭하는 것이지,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5.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 — “공짜로 풀어라”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Notion의 매출 중 20%가 개인 사용자(소비자)였다. 그걸 전부 무료로 전환했다.

    “그냥 무료로 풀기로 했습니다. 그 매출을 통째로 포기하고, ‘이 제품은 이제 무료입니다’라고 선언한 거죠.”

    “We decided, let’s just make that free. We just gave away all of that revenue and said, actually, the product is free now.”

    왜? 결혼 준비에 Notion을 쓰던 사람이, 회사에서도 Notion을 도입한다. 소비자 경험이 B2B 확장의 파이프라인이 되는 구조.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로드맵의 명확성이었다.

    “순수하게 소비자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건 재미있는 20% 사이드 프로젝트 정도입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시간을 쏟을 영역은 아닌 거죠.”

    “If it’s just a pure consumer play, that’s like your fun 20% side project. This is not something that we’re going to do as a significant portion of our time.”

    돈을 버리는 결정이 아니라, 집중을 사는 결정이다. 뭘 안 만들지 결정하는 게, 뭘 만들지 결정하는 것보다 어렵다. 매출 20%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B2B 회사다”라는 선언이 조직 전체에 정렬되었다.


    6. 세일즈 채용 — 면접이 아니라 함께 일해본다

    Linear의 모든 직군은 Work Trial을 거친다. 세일즈도 예외 없다. 3일간 유급으로 함께 일한다.

    두 가지를 본다:

    하나, 피치와 데모. 제품을 직접 배워서 데모를 하고 세일즈 덱으로 피칭한다.

    “놀라실 겁니다. 제품 데모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세일즈가 정말 많습니다. 중요한 건 뭔가를 외울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직접 제품을 만져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한 뒤 저에게 설명할 수 있느냐입니다.”

    “You’d be surprised. There are so many salespeople who have never demoed a product. So it’s not like, can you memorize something, but actually, can you navigate the product and understand how it works and then explain it back to me?”

    Cristina는 의도적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모르는 질문에 아는 척을 할 건가요? 아니면 ‘좋은 질문이십니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확인하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할 건가요? 저에게는 후자가 훨씬 나은 답입니다.”

    “Are you going to pretend that you know the answer to a question you don’t know? Or are you going to say, ‘Actually, that’s a good question. I’m not quite sure. I’ll get back to you’? That to me is a better answer.”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게 고객 앞에서도 신뢰를 만드는 사람이다.

    둘, 어카운트 플랜. 실제 고객 콜 녹음을 주고, 그걸 바탕으로 계정 전략을 짜게 한다.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 다음 스텝은 뭔지, 구조적 사고가 되는지.

    “회사와 총 4~5시간 대화하고, 앞으로 4~5년을 보낼 곳을 결정한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Isn’t it kind of silly that you spend maybe four to five hours with a company in total to decide where you’re going to spend the next four to five years of your life?”

    4~5시간 면접으로 4~5년을 결정하는 게 더 이상한 거다. 3일이 길어 보이지만, 잘못된 채용의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7. “의심이 드는 순간이 답이다” — 해고의 타이밍

    “이 지점까지 와서 다시 되돌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안 되겠다’ 싶은 그 순간이 오면…”

    “We have never reached this point and been able to come back from it. Once you know that someone isn’t working out…”

    매니저는 항상 결정이 가장 느리다. 직접 뽑고, 가르치고, 기대했으니까. 하지만 Cristina의 경험칙은 명확하다: “안 되는 것 같다”는 감각이 드는 지점에서 돌아온 적이 없다.

    더 흥미로운 건 성과 지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고객과의 콜 퀄리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딜은 따요. 실은 제품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 세일즈가 판 게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숫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The call wasn’t very good with the customer, and actually our product is doing the work here, not the salesperson. So it’s not even always about the metrics.”

    쿼터를 채우고 있어도, 실제 콜을 들어보면 제품이 팔아주고 있는 건지 사람이 팔고 있는 건지 구분이 된다. 후행지표(매출)가 아니라 선행지표(콜 퀄리티, 동료 영향력)를 봐야 한다.


    8. 4배 성과, 하지만 문화를 해치면?

    극단적 질문. 쿼터의 3~4배를 달성하지만, 내부적으로 브랜드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훌륭한 세일즈는 자기가 잘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사람까지 잘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A great salesperson is not just someone who sells, but someone who makes the people around them great too.”

    자기 성공을 공유하고, 동료가 더 잘할 수 있게 돕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매니저가 되고, 조직의 기울기를 높인다.

    “우리 창업자들은 ‘내가 창업자가 아니어도 여기 다니고 싶을까?’를 기준으로 회사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Our founders wanted to create a company that they would enjoy working at, even if they weren’t founders.”

    Linear 창업자들은 “창업자가 아니어도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려 했다. 이 기준이 채용과 해고의 최종 필터다. 성과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9.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

    Linear의 대형 딜 하나에 150번의 미팅이 들어갔다. 고객과 공유 Slack 채널을 만들어 DM으로 개인적 관계를 쌓는다.

    “내부에서 ‘Linear 정말 좋다’는 스크린샷을 찍어서 저희에게 공유해줍니다. 사실 저희가 알면 안 되는 정보인데, 관계가 있으니까 흘러들어오는 겁니다.”

    “People are sharing screenshots of people being like, ‘Oh, Linear is amazing,’ and they’re sharing it back to us. So we’re getting this internal knowledge that we probably shouldn’t have.”

    이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고객 조직 내부의 비공식적 온도를 읽는 것. 신뢰 기반의 정보 비대칭을 만드는 것.

    Cristina가 잃었던 큰 딜의 교훈:

    “더 했어야 했습니다.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조직 안에서 적절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지 못한 겁니다.”

    “We should have done more. This was knowable. It was that kind of loss of personal connection to the right people within the organization.”

    기술이 부족해서 진 게 아니다. 사람과의 연결이 부족해서 졌다. 그리고 그건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10. 논란은 전략이 아니다

    “제품 런칭할 때 의도적으로 논란을 만드는 회사가 많습니다. 하루치 트래픽을 끄는 데는 좋을 수 있죠. 하지만 처음엔 느려 보이더라도 의도를 갖고 성장하는 쪽이 결국 훨씬 유리합니다.”

    “There’s a lot of attention-grabbing controversy to launch your product. I generally think it’s a great way to maybe get one day website visitors. It’s much more advantageous to focus on what may feel like slower growth at first, that is more intentional.”

    자극적 런칭으로 하루짜리 트래픽을 사는 회사들. Cristina는 이게 장기 브랜드를 갉아먹는다고 본다.

    “‘사람들에게 레버리지를 준다’고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더 빠르게 스케일할 수 있게 해준다’고요.”

    “Why don’t you talk about giving people leverage, letting people scale faster?”

    “X 직군을 대체하겠다”는 메시지 대신, “사람에게 레버리지를 주겠다”고 말하라. 같은 제품이라도 프레이밍이 브랜드를 만든다.


    Takeaway

    • 실험은 전략의 전 단계가 아니라 전략 그 자체다. 패턴을 발견하고 반복하는 과정이 플레이북이 된다.
    • 고객을 투자자의 눈으로 봐라. 초기 스타트업에서 자원은 유한하다. “이 고객의 비전에 베팅할 가치가 있는가?”가 자원 배분의 기준이다.
    • 커뮤니티는 설계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걸 찾아서 증폭하라.
    • 채용은 면접이 아니라 협업이다. Work Trial 3일이 면접 5시간보다 낫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 “안 되는 것 같다”는 감각을 무시하지 마라. 매니저의 결정은 항상 늦다. 쿼터가 아니라 콜 퀄리티를 봐라.
    • 성과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동료를 성장시키는 사람이 조직의 기울기를 높인다.
    •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건 관계다. 150번의 미팅, 공유 Slack, 비공식적 온도 — 이건 자동화되지 않는다.
    • 브랜드는 논란이 아니라 일관성에서 온다. “대체”가 아니라 “레버리지”라고 말하라.

    출처: SaaStr 세션 — Cristina Cordova (Linear COO, 전 Stripe·Notion)

  • 명료함, 리더의 제1임무는 ‘일 잘한다’의 기준을 세우는 것

    이 책은 한 조직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 기준의 정의와 전달에 있어서의 ‘명료함’이라는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개념을 최대한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독자인 나는 이 노력이 꽤 성공했다고 느낀다.

    반면, 어떤 독자는 이 책의 설명이 충분히 명료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명료함이라는 개념어가 가지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조직의 추상적인 가치 기준을 최대한 명료하게 만들고 최대한 구체화 해서 구성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리더의 임무라는 것이다.

    역으로 위 역할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에게 리더의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불성실한 리더를 탓할 분들은 그럴 시간에 직접 명료함을 추구하여 리더로서 우뚝서시기를!

    또 하나 이 책에서 건진 용어가 있는데 바로 인간 등대. 문화의 수호자,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통해 인정 받는 사람, 결과와 행동 모든 측면에서 모범을 보이는 사람, 조직의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 상징적 인물을 일컫는다.

    레퍼런스가 있는 용어인지 찾아봤지만, 스티브 펨버튼(Steve Pemberton)이란 저자가 자신의 책 『등대 효과: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에 비범한 영향을 미치는 방법(The Lighthouse Effect: How Ordinary People Can Have an Extraordinary Impact in the World)』에서 인생 여정에서 우리를 아낌없이 인도해주는 멘토, 선생님, 친구, 동료들을 “인간 등대”라고 불렀다고 하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추가: 저자인 탁민 오님이 직접 확인해주신 바, ‘인간 등대’는 다른 레퍼런스 없이 직접 고안하여 사용하시는 개념이라고 한다.

    탁민 오, 명료함 – 1% 리더들만의 사람을 이끄는 기술

    책에서 찾은 문장들:

    • 직원들이 (리더인) 당신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성과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구성원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 구성원들이 그걸 모르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리더인 당신조차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조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리더의 불성실함’이 기준 없는 조직을 만든다.
    • 리더로서 당신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바로 이것이다. 조직 안에서 일을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하고, 인재 곡선 상에서 두 그룹을 구분하는 선을 최대한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 만약 당신의 팀, 조직, 회사에 질서가 부족하다면 증가하는 복잡성을 억누르고 질서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간섭하는 사람과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 비결이 바로 선명한 기준을 만드는 것, 명료함을 구축하는 것이다.
    • 명료함의 3단계: 1단계 – 리더의 머릿속에 어떤 기준도 없다. 2단계 – 리더에게는 명료한 기준이 있지만 구성원은 그걸 모른다. 3단계 – 리더와 구성원 모두 명료한 기준을 알고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동료는 누구인가? 그 사람의 어떤 행동 때문에 당신은 그를 최고의 동료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행동으로 인해 조직에 어떤 효과가 발생했는가? 그 행동에서 추출 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최고의 동료 5명, 보통의 동료 5명의 차이점을 분석해보라!)
    • 구체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감각을 이용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의 눈, 코, 입, 감각으로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 구체적인 것의 힘이다.
    • 리더십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구체화의 신일 것이다. 구체화하고 또 구체화하라. 더 이상 구체화하기 어려울 때까지 구체화하라. (…) 가능한 다른 해석이 없는 수준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 구체성의 4단계: 1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공통 가치가 없다. 2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가치 목록이 있다. 하지만 그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의되지 않았다. 3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가치 목록이 있다. 그리고 그 가치들에 부합하는 행동들도 정의되어 있다. 4단계 – 명료하게 정의된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를 구체적인 행동 레벨에서 정의한다. 그리고 그 행동을 고유한 기준에 따라 한 차원 더 구체화한다.
    • 어떤 조직은 리더의 타고난 약점을 보완하거나, 강점을 더 활용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치를 활용한다.
    • 구체화의 기술 5단계: 1단계 – 우선순위 가치를 정하라. 2단계 – 조직 가치의 의미를 한 문장의 글로 표현하라. 3단계 – 가치에 대한 기대 행동을 정의하라. 4단계 – 명료함 캔버스로 정리하라. 5단계 – 명료함 캔버스를 심화시켜 활용하라. (명료함 캔버스란 가치, 가치에 대한 설명, 그리고 행동 양식을 보여주며, 직급별/부문별로 작성된다.)
    • 명료한 조직은 무엇인가. 명료한 조직은 전력을 다해 인재 곡선의 중심을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회사다. 그러려면 인간 등대(조직에서 행동과 결과를 통해 다른 구성원의 모범이 되는 인물)의 리텐션에 집중해야 한다. 성과가 아닌 행동에 인정과 보상을 해야 한다. 구성원의 성과보다는 그들의 행동을 관리해야 한다. 성과는 가치관의 수단이다.
    • 리더는 참여하는 모든 회의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회사의 핵심 가치관이나 권장 행동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리더의 의무로 삼아야 한다.
    • 리더가 피드백 할 ‘행동’이란 조직의 핵심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한다면 조직의 핵심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 구성원의 업무에 대해 평가하고, 인정하고, 피드백 하는 일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임 중 하나다.
    • 당신이 리더라면 일대일 미팅을 조직의 핵심 가치관과 행동 기준을 알려주는 기회로 활용하라.
    • 당신은 채용 과정을 통해 지원자가 당신의 조직에서 권장하는 행동 양식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지 파악해야 한다. 채용은 본질적으로 지원자가 우리 조직의 인간 등대가 될 만한 잠재력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 리더는 세일즈맨이 아니라 마케터가 되어야 한다. 모든 리더는 조직 내에 명료함을 확산시키라는 미션을 받은 마케팅 담당자와도 같다. 명료함 마케팅이란 보통의 인재가 우리 조직에 들어와, 우리의 기준을 열렬히 사랑하고 지지하는 인간 등대로 발전하는 과정을 ‘설계’하는 일이다.
    • 오직 명료한 개인이 명료한 리더가 된다. 따라서 명료함의 원칙을 적용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 개인의 삶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은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아 중에서 어떤 존재를 내가 따라야 할 리더로 삼을지 결정하는 일이며, 그 존재가 누구인지 명료하게 만드는 일이다.
  • “고통과 고난을 드립니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말하는 AI 시대의 인재상과 채용 철학

    젠슨 황의 인터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이 사람은 경영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33년간 한 회사를 운영하면서 몸으로 부딪힌 것들을 말한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가 풀어놓은 인재관과 채용철학은,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사람을 뽑고 키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곱씹어볼 만하다.


    61명의 CEO가 있는 회사

    엔비디아의 경영진 구조는 독특하다. 젠슨 황에게 직속 보고하는 사람이 약 60명이다. 일반적인 CEO의 직속 보고 라인이 6~10명인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더 흥미로운 건 그가 이 60명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 60명은 모두 다른 회사에서 세계적인 CEO가 될 수 있는 인재들이다. 나는 이들 앞에서 끊임없이 추론한다. 말 그대로 항상.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은 그들 앞에서 내렸다. 그들 앞에서 추론 과정을 보여줬다. 성공도, 좌절도, 도전도, 역경도 모두 그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여러 면에서 엔비디아에는 61명의 CEO가 있는 것이다.”

    “There are 60 people who could be world-class CEOs for many other companies, and I reason in front of them constantly. Literally all the time, and every single decision I made, I’ve made in front of them. I’ve reasoned through it in front of them. I’ve spoken about successes and setbacks and challenges and adversity all in front of them. And so, in a lot of ways, Nvidia has 61 CEOs.”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구조적 설계다. 의사결정의 맥락이 60명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면, 그 조직은 CEO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게 된다. 회복탄력성이 구조에 내장된다.

    “엔비디아는 다른 어떤 회사와도 다르게 건설되었고, 그만큼 회복탄력성도 뛰어나다.”

    “Nvidia has just been built like no other company ever has been built, and it also speaks to our resilience like no other company will have.”

    CEO가 혼자 판단하고 결과만 전달하는 조직과, 60명이 판단의 과정을 함께 목격하는 조직. 둘의 차이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위기가 왔을 때 드러난다.


    “빈 의자가 잘못된 사람으로 채워진 의자보다 낫다”

    채용에 관한 젠슨 황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빈 의자가 잘못된 사람으로 채워진 의자보다 낫다. 그래서 나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회사는 계속 돌아갈 것이다.”

    “An empty chair is better than a chair filled with the wrong person, and so I’m never in a hurry. The company will keep moving on.”

    그는 CFO 콜레트(Colette)를 채용하기 전에 22명의 후보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녀가 첫 주에 “얼마나 오래 CFO를 맡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답은 이랬다 — “우리가 살아있는 한(For as long as we shall live).” 다른 답은 틀린 답이라고. 끝나는 시점은 오직 그녀가 엔비디아가 더 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할 때뿐이라고.

    이 철학이 작동하려면 전제가 하나 있다. 자리가 비어있어도 회사가 돌아가야 한다. 젠슨 황은 이 전제를 믿는다.

    “이 두 가지 아이디어 — 빈 의자, 그리고 회사는 계속 돌아간다 — 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적합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엄청난 시간을 벌 수 있다. 여러 가지 조건의 조합을 충족하는 사람, 단순히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는 것까지 포함해서.”

    “If you can convince yourself of what I just said, that these two ideas, the empty chair and the company is going to keep moving on, then it buys you enormous amounts of time until you find somebody that is a combination of a lot of things, including you just like them.”

    많은 스타트업이 이 반대를 한다. 자리가 비면 불안해서 빨리 채운다. “일단 뽑고 안 맞으면 바꾸자”는 논리다.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에서는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젠슨 황의 관점은 다르다. 잘못된 사람이 앉은 자리는 빈 자리보다 더 큰 비용을 만든다. 조직 문화가 오염되고,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결국 그 사람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비용이 발생한다.

    22명을 인터뷰하는 인내심. 그건 여유가 아니라 확신이다. 적합한 사람이 올 때까지 견딜 수 있다는 조직적 자신감.


    기업의 특성(Corporate Character)이라는 마법

    젠슨 황에게 “훌륭한 직원이나 리더를 만드는 요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놀랍게도, 나는 그 답을 모른다. 그들은 모두 똑똑하다. 모두 유능하다. 아무 CFO나 데려와 봐라. 유능할 것이다. 충분히 유능할 것이다.”

    “Surprisingly, I don’t have the answer. They’re all smart. They’re all competent. You find me a CFO somewhere, and I promise you, they’re competent. And they’re competent enough.”

    모든 후보는 똑똑하고 유능하다. 전 세계의 CEO들도 모두 유능하다. 그건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 그가 꼽는 건 다른 것이다.

    “엔비디아의 마법을 만드는 건, 함께 있는 사람들의 화학 작용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은 기업의 특성(corporate character)이다. 그 특성은 어딘가에서 온다. 그것이 위대한 회사를 정의한다.”

    “What makes the magic of Nvidia is a combination of the chemistry of the people that are together. But mostly, I would tell you that it’s just corporate character, and that character comes from somewhere. That’s what defines great companies.”

    엔비디아는 GPU를 발명했지만, 생산량 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GPU 회사다. 젠슨 황 본인도 이 아이러니를 인정한다 — “모든 사람이 우리보다 더 많은 GPU를 만든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Everybody makes more GPUs than I do. It sounds weird, but we are).” 기술이나 규모가 아니라, 역경 속에서 팀이 어떻게 함께하는지에서 마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Grace Blackwell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은 회사를 거의 파산시킬 뻔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Grace Blackwell을 생산에 올리는 과정은 회사의 등을 거의 부러뜨릴 뻔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건 100% 특성(character)의 문제다. 지능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다.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도 많다. 그건 100% 특성이다.”

    “Getting Grace Blackwell into production almost broke our company’s back, but we wouldn’t let it. That’s 100% character. That’s not intelligence. That’s not hard work. There are a lot of people that work hard. There are a lot of people that are super smart. That is 100% character.”

    여기서 주목할 건 그 다음 문장이다.

    “나는 거의 누구든 엔비디아에 데려오면, 우리가 그 사람에게 특성을 심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I actually kind of believe that you can bring almost anybody into Nvidia, and we will instill character into you.”

    즉, character는 채용 시점에 완성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 조직이 만들어낼 수 있다.


    실수해도 해고되지 않는 문화

    엔비디아의 인재 철학에서 가장 반직관적인 부분이 여기다.

    많은 회사에서 큰 도전을 겪으면 누군가가 뒤처지고, 비난받고, 해고되고, 나쁜 감정으로 떠난다. 젠슨 황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보통 이런 엄청난 도전을 겪고 나면 누군가가 나쁜 감정 때문에, 비난받아서, 해고되어서 떠난다. 게임이 끝나면 우리는 팀으로서 진 것이지만, 누가 패스를 떨어뜨렸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명확히 한다. 실제로 명확히 한다.”

    “Usually, what happens is you go through one of these incredible challenges, and then somebody leaves because of a bad feeling, or because they were blamed, and they were fired. At the end of the game, we lost as a team, but there’s no question who dropped the pass, and so we have to be clear about that. And we are clear about that.”

    실수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두 안다. 그것에 대해 명확히 한다. 하지만 그 다음이 다르다.

    “과거에 패스를 떨어뜨린 모든 사람들 — 나 자신을 포함해서, 나도 수많은 패스를 떨어뜨렸다 — 아무도 패스를 떨어뜨렸다고 해고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회사는 관용과 용서, 그리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문화, 성격을 발전시켰다. 팀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All the people who dropped passes in the past, including myself, and I’ve dropped plenty of passes — nobody’s been fired for dropping passes. And so this company has developed a culture, a personality, that tolerance and forgiveness and learning from mistakes. So long as the teammates gave everything of themselves, that’s good enough for me.”

    이건 관대함이 아니다. 전략이다.

    고난을 견디고 반복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려면, 실패의 비용이 개인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실패의 비용이 해고라면, 사람들은 도전을 피한다. 도전을 피하는 조직은 Grace Blackwell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젠슨 황은 회사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듯이, 팀원들도 회사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한다.

    “60명 모두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 그들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괜찮은 수준이었다. 회사가 고통 속에서 우리의 위대함을 끌어냈고, 놀라운 특성을 우리에게 단련시켰다. 이것이 이 회사의 마법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사람을 잃지 않고, 동시에 회사가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위대함이다.”

    “100% of those 60 people are different today than they were when they started. I can tell you they’re great today. We were fine in the beginning. We’re good in the beginning, like anybody else. And so, the company tortured greatness out of us, and the company forged incredible character into us. That’s the magic of this company, that you could do that, not lose the person, and the company not giving up on you. Simultaneously. That’s our greatness.”

    “사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회사가 포기하지 않는다(not lose the person, and the company not giving up on you, simultaneously)” — 이 한 문장에 엔비디아의 인재 철학이 압축되어 있다.


    고통과 고난이 비밀 소스

    젠슨 황은 고통과 고난(pain and suffering)이 엔비디아의 비밀 소스라고 대놓고 말한다. 인터뷰어가 “That’s our secret sauce?”라고 되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Yeah”라고 답한다. 엔비디아에서 일하는 것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도, “Pain and suffering is a big part of it”이라고 말한다.

    왜 이것이 매력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 젠슨 황은 20대의 에너지와 속도를 인정하면서도, 그 시절에 빠진 것들을 짚는다.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더 현명해지는 능력, 더 미묘해지는 능력, 더 전략적이 되는 능력, 더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그런 것들을 직접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배우는지 나는 모르겠다.”

    “The thing that I would say is completely missed is all of the ability to be wiser, to be more nuanced, to be more strategic, to think longer term. I don’t know how you learn those things by not living those things.”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으로 간접적으로 배울 수도 있지만, 고난을 견디는 끈기(grit)와 감정적 고통을 겪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둘째, 고통을 함께 겪으면 유대가 형성된다. 수만 명의 삶이 결정에 달려 있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과 취약성 — 이런 감정들을 직접 겪지 않고는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을 함께 겪은 팀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두려움은 회사를 운영할 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수만 명의 삶이 달려 있다. 상황이 잘 안 풀릴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불안을 느끼지 않고, 취약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 사실 그것은 나쁜 리더가 되는 것이다.”

    “Fear is a real thing in running companies. We have the lives of tens of thousands of people in the decisions we make. When things are not going well, to not feel fear, to not feel anxiety, to not feel vulnerability, makes you, in fact, a bad leader.”

    회사를 운영하면서 두려움, 불안, 취약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경고. 이건 약점이 아니라 리더의 필수 조건이다.


    엔비디아가 찾는 사람의 조건

    젠슨 황은 채용 기준을 길게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간결하게 말한다.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 싸가지 없는 사람이면 안 된다. 이기적이면 안 된다. 간단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일할 수 없다. 그게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다. 정말로 팀의 일원이 되고 싶어하고, 투명하고, 취약성을 드러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 모든 것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위대함을 단련시켜 줄 것이다.”

    “So long as I enjoy working with them — they can’t be a jerk. They can’t be self-serving. I can’t work with people that can’t answer simple questions. That’s my trigger. To the extent that they really want to be part of the team, they can be transparent, they can be vulnerable, and they can learn. They don’t have to know it all — they just have to learn it all. To the extent that all of that is true, we’ll forge greatness into them.”

    목록을 다시 보자. IQ도, 학력도, 경력도, 기술 스택도 없다. 전부 태도(attitude)와 성품(character)에 관한 것이다.

    특히 “간단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눈에 띈다. 그가 가장 못 참는 것도 이것과 연결된다.

    “중요한 순간에 내 질문을 듣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답하지 않는 사람.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답하지 않으면, 거의 즉시 화가 치민다.”

    “People who don’t listen to my question, understand my question, answer my question during important times. When we’re dealing with very hard situations and we need facts, if somebody doesn’t answer it, it triggers me almost instantaneously.”

    이건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진실에 빠르게 도달하려는 의지의 문제다. 자기 방어 대신 사실을 말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질문의 핵심을 파악해서 정직하게 답하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조직에서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경영을 해본 사람은 안다.


    “가장 똑똑한 사람”의 재정의

    젠슨 황에게 “가장 똑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는 한 명을 꼽을 수 없다고 답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전환을 한다.

    “똑똑하다의 정의는 지능적이고, 문제를 풀고, 기술적인 사람이다 — 하지만 그건 이제 기본값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공지능이 그 부분을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곧 증명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 궁극의 똑똑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AI가 가장 먼저 해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다.”

    “The definition of smart is somebody who’s intelligent, solves problems, technical — but I find that that’s a commodity. We’re about to prove that artificial intelligence is able to handle that part easiest. Everybody thought software programming is the ultimate smart profession. Look what is the first thing that AI is solving? Software programming.”

    지능, 문제 해결 능력, 기술적 능력은 상품(commodity)이다. AI가 가장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똑똑함은 다른 곳에 있다.

    나의 개인적인 똑똑함의 정의는, 기술적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적 공감 능력을 가진, 그 교차점에 있는 사람이다. 말하지 않은 것을, 모퉁이 너머를, 알 수 없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 모퉁이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이다.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선제할 수 있는 것, 단지 바이브를 느끼기 때문에. 그 바이브는 데이터, 분석, 근본 원칙, 삶의 경험, 지혜, 타인을 감지하는 것의 조합에서 온다. 그런 사람은 SAT에서 끔찍한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My personal definition of smart is someone who sits at that intersection of being technically astute, but human empathy, and having the ability to infer the unspoken, the around the corners, the unknowables. People who are able to see around corners are truly smart. To be able to preempt problems before they show up, just because you feel the vibe. And that vibe came from a combination of data, analysis, first principle, life experience, wisdom, sensing other people. That person might actually score horribly on the SAT.”

    AI 시대에 인재를 뽑는 CEO라면 이 정의를 곱씹어볼 만하다. 코딩 능력, 분석력, 문제 해결 속도 — 이런 것들은 점점 상품화된다. 남는 건 맥락을 읽는 힘, 말하지 않은 것을 듣는 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감지하는 힘이다.


    무지(Ignorance)라는 초능력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젠슨 황은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의 답이 인상적이다.

    “엔비디아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기 때문에, 엔비디아가 가능했다. 사실 엔비디아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엔비디아를 만들 수 없다. 그냥 안 된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설득할 수 없었다. 내가 더 잘 몰랐기 때문에.”

    “Nvidia would not be possible today if not for the fact that I was ignorant to the fact that it’s impossible to build Nvidia. In fact, it’s impossible to build Nvidia. You can’t build Nvidia. You just can’t. But nobody can convince me otherwise because I didn’t know any better.”

    그리고 지금 세대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설득할 수 없다. 그들은 너무 무지하다. 진실에 너무 무관심해서 낙관적이다. 그게 어떻게 나쁜 것인가? 나는 우리가 매우 냉소적이고, 너무 많이 아는 세대를 키우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이 본질적으로 냉소적이어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I think optimistic people, you can’t convince them that they can’t make it better. They’re so ignorant. They’re so oblivious to the truth that they are optimistic. How is that a bad thing? And I feel that we’re raising a generation of very cynical, too informed. They’re cynical not because they’re inherently cynical. They’re cynical because they just see so much stuff.”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회의적(cynical)이 된 세대. 이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의 내적 자원을 쌓고, 좋은 것만 볼 수 있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지금 아는 모든 것 — 좌절, 실망, 고난 — 을 그때 알았다면, 엔비디아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인정한다. “나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I would never do it).”

    이건 채용에도 시사점이 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왜 안 되는지”를 안다. 경험이 적은 사람은 “왜 안 되는지”를 모른다. 때로는 후자가 전자보다 더 멀리 간다. 물론 무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유능하고 근면한 사람에게 무지가 더해지면, “얼마나 어렵겠어?(How hard can it be?)”라는 태도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끝이 없는 것(no endgame)도 초능력이다.

    “엔비디아에는 엔드게임이 없다. 사람들이 묻는다, 젠슨, 계획이 뭐냐? 없다.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계획이다. 젠슨, 인생 목표가 뭐냐? 없다. 그냥 일하고,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좋은 일을 하고, 놀라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그것이 목표다.”

    “Nvidia has no endgame. People ask me, Jensen, what’s your plan? We don’t have one. Staying in business is our plan. Jensen, what are your life goals? I don’t have any. Just working, staying employed, being able to do good work, surrounded by amazing people. That’s the goal.”

    특정한 목표가 없다는 것. 이것이 33년간 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Takeaway

    젠슨 황의 인재 철학을 정리하면 몇 가지 원칙으로 수렴한다.

    • 채용에서는 인내하라. 빈 자리의 불편함보다 잘못된 채용의 비용이 크다. 적합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조직적 체력을 만들어라.
    • 똑똑함을 재정의하라. 기술적 능력은 상품화되고 있다. 맥락을 읽고, 말하지 않은 것을 추론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감지하는 사람을 찾아라.
    • 태도와 성품을 보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고, 투명하고, 취약성을 드러내고, 배우려는 사람. 이런 사람이라면 위대함은 조직이 만들어낼 수 있다.
    • 실패에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라. 실패의 비용이 해고라면, 사람들은 도전을 피한다. 도전을 피하는 조직은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 고통을 회피하지 마라. 고통과 고난은 성장의 원료다. 그것을 함께 겪은 팀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 의사결정의 맥락을 공유하라. CEO 혼자 판단하고 결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과정을 팀이 함께 목격하게 하라. 그것이 조직의 회복탄력성을 만든다.

    엔비디아를 만든 건 GPU가 아니다. GPU를 만든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젠슨 황이 33년간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칩이 아니라, 칩을 만드는 조직의 특성(character)이었다.


    *출처: Jensen Huang: Founder and CEO of NVIDIA (A Bit Personal with Jodi Shelton 인터뷰 영상)

  • 안드레이 카파시가 AI로 위키를 만든다길래, 나도 해봤다

    4,825개의 잔해

    나는 22년간 글을 썼다. 워드프레스에 1,153개, 브런치에 266개, 애플 노트에 729개, 노션에 2,677개. 총 4,825개.

    플랫폼을 옮길 때마다 이전 기록은 버려졌다. 워드프레스에서 브런치로 갈 때, 브런치에서 노션으로 갈 때. 옮기기 번거로워서가 아니다. 과거의 나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22년치 기록은 네 개의 섬으로 흩어져 있었다.

    올해 3월, 전부 한 곳에 모았다. Obsidian이라는 노트 앱에 4,825개 파일을 몽땅 넣었다. 이 앱은 메모를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기 때문에 AI가 직접 읽고 쓸 수 있다. 그게 핵심이었다.

    2004년에 쓴 법학 에세이와 2024년에 쓴 팀 운영 메모가 같은 검색창에 뜬다. 묘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뭘 할 수 있는가? 파일이 많다고 지식이 되는 건 아니다.


    정리의 함정

    처음에는 정리하려고 했다. 폴더 구조를 잡고, 분류 기준을 만들고, 하나씩 넣었다. 인간의 본능이다. 어지러운 걸 보면 정돈하고 싶어진다.

    일주일 만에 깨달았다. 이건 끝이 없다. 4,825개를 사람이 하나씩 읽고 분류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한다고 해도, 정리는 정리일 뿐이다. 서랍에 잘 넣어둔 것과 그 서랍을 꺼내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필요한 건 정리가 아니었다. 연결이었다.


    AI를 붙이다

    내 노트 폴더 전체를 AI에게 열어줬다. Claude Code라는 도구를 쓴다. 터미널 — 컴퓨터에 명령어를 직접 치는 검은 화면 — 에서 내 파일을 직접 읽고, 검색하고, 새로 쓸 수 있다. 채팅창에 텍스트를 복사해서 붙여넣는 게 아니라, AI가 내 컴퓨터에 있는 4,825개 파일을 제 손으로 뒤진다. 이 차이가 크다.

    처음엔 단순한 질문부터 했다.

    “내가 리더십에 대해 쓴 글 다 찾아줘.”

    AI가 22년치 기록을 훑었다. 워드프레스 시절 쓴 리더십 에세이, 브런치의 육아 글 속에 숨어 있던 리더십 단상, 노션의 미팅 노트에서 한 줄짜리 메모까지.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올라왔다.

    점점 역할이 커졌다. 매일 밤 10시에 AI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그날의 일정, 이메일, 업무 메시지를 수집해서 하나의 리포트로 엮는다. 쌓아둔 메모를 적절한 폴더로 분류한다. 그리고 하루의 패턴을 읽어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이번 주에 약속 3개를 밀었는데, 혼자 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이걸 Chief of Staff — 비서실장이라고 부른다. 단순 비서가 아니다. 페이스메이커이자 코치다.


    카파시가 쓴 글

    이쯤에서 안드레이 카파시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카파시는 테슬라의 AI 총괄을 맡았고, OpenAI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사람이다. AI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엔지니어 중 하나다. 그가 최근 X(트위터)에 올린 글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는 관심 있는 연구 주제마다 AI로 개인 위키를 만들고 있었다. 논문, 아티클, 데이터셋 같은 원재료를 모아서 AI에게 주면, AI가 그걸 읽고 요약하고, 글끼리 연결하고, 주제별로 묶어서 백과사전처럼 엮어준다. 사람은 재료를 던지기만 하고, 구조를 짜는 건 AI가 한다.

    그가 이 과정을 표현한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Incrementally compile a wiki.”
    위키를 점진적으로 컴파일한다.

    컴파일은 프로그래밍 용어다. 사람이 쓴 코드를 컴퓨터가 실행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작업을 말한다. 카파시는 이 단어를 지식에 적용했다. 흩어진 원재료를 AI가 연결되고 탐색 가능한 형태로 번역해주는 것. 코드를 컴파일하듯이 지식을 컴파일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My own explorations and queries always add up.”
    내 탐색과 질문이 항상 누적된다.

    AI에게 뭔가를 물을 때마다, 그 질문과 답이 위키에 편입된다. 다음에 비슷한 걸 물으면 AI가 이전 결과까지 참고해서 더 깊이 들어간다. 쓰면 쓸수록 창고가 풍성해지는 구조. 지식이 복리로 쌓인다.

    이 글을 읽고 내 작업을 돌아보니, 나도 이미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카파시의 글에는 내가 아직 안 하고 있던 것 세 가지가 있었다.


    세 가지를 바꿨다

    1. 지도를 만들었다

    4,825개 파일에는 구조가 없었다. 파일은 많은데, 어떤 파일이 어떤 주제와 관련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없었다.

    AI에게 전체를 훑게 하고, 주제별 지도를 만들었다. 리더십, 투자, 스타트업 운영, 사고 프레임, AI — 다섯 장의 지도. 각 지도는 해당 주제와 관련된 모든 글의 링크를 담고 있다. 목차가 없던 백과사전에 목차가 생긴 것이다.

    2004년에 쓴 철학 에세이와 2026년의 경영 회고가 같은 지도 위에 놓인다. 나는 몰랐는데 AI가 찾아낸 연결이다. 그리고 매일 밤 AI가 새로 생긴 글을 알맞은 지도에 자동으로 꽂아 넣는다. 지도는 살아 있다.

    2. 건강 검진을 돌렸다

    코드에는 린터(linter)라는 게 있다.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작성하면 자동으로 훑어서 오류, 누락, 규칙 위반을 잡아주는 도구다. 코드의 맞춤법 검사기 같은 것이다. 카파시는 이걸 자기 위키에도 적용했다. AI에게 위키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게 한 것이다.

    나도 똑같이 했다. AI에게 내 기록 창고 전체의 건강 검진을 시켰다. 끊어진 연결, 빠진 정보,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은 외톨이 파일, 분류 기준 위반. 6,700개 파일 중 94%가 다른 글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외톨이였다. 대부분은 옛 기록이라 괜찮지만, 최근 글 중에서도 상당수가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채 떠돌고 있었다.

    검진은 “이 글이 어디에 이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강제한다. 연결이 없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3. 순환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AI에게 조사를 시키면, 결과를 읽고 끝이었다. 대화창을 닫으면 사라진다. 다음에 같은 주제가 필요하면 처음부터 다시.

    이제는 AI가 내놓은 모든 결과가 노트 파일로 저장된다. 분류가 붙고, 지도에 편입된다. 다음에 비슷한 주제를 물으면 AI가 이전에 조사한 것까지 참고해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

    카파시가 말한 “탐색과 질문이 항상 누적된다”는 구조. 이게 완성되자 체감이 확 달라졌다. 한 달 전의 리서치가 오늘의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도구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

    이 작업을 하면서 확인한 게 하나 있다. AI 시대의 기록 관리에서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노트 앱을 쓰는지, 어떤 AI를 쓰는지는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세 가지 구조다:

    1. 누적 — 모든 탐색과 질문이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2. 연결 — 기록과 기록 사이에 줄이 있어야 한다. 혼자 떠 있는 메모는 죽은 메모다
    3. 순환 — 결과가 다시 재료가 되어야 한다. 한쪽으로만 흐르면 소비, 양쪽이면 투자다

    22년간 나는 1번만 했다. 쓰고 쌓았다. 2번과 3번이 없었기 때문에 4,825개는 잔해였다.

    AI가 해준 건 2번과 3번이다. 연결과 순환. 잔해가 지식의 지도가 되었다.


    기록은 있는데 연결이 없다면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건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라고.

    그 말을 기록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AI 시대에 가장 아까운 건 기록이 없는 게 아니라, 기록은 있는데 연결이 없는 것이다.

    당신이 10년간 노션에 쌓아둔 메모, 에버노트에 모아둔 글, 구글 문서에 흩어진 회의록. 그것들은 잔해가 아니다. 아직 컴파일되지 않은 원재료다. 사람이 쓴 코드가 컴파일을 거쳐야 프로그램이 되듯이, 흩어진 기록은 연결을 거쳐야 지식이 된다.

    컴파일러는 이미 있다.

  • 일을 해체하면 조직이 보인다 — AI 시대, 팀 구조의 첫 번째 질문

    잘못된 질문

    “AI를 어디에 쓰지?”

    회의실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CTO가 기술 데모를 보여주고, 팀장들이 “우리 팀에서는 이걸 쓸 수 있겠다”고 말한다. 회의록 요약, 고객 문의 자동 응답, 리포트 자동화. 하나씩 붙인다. 한두 달 뒤 돌아보면 — 기존 프로세스 위에 AI를 얹었을 뿐, 일하는 방식은 하나도 안 바뀌었다.

    이건 마차에 엔진을 다는 것이다. 마차의 구조를 유지한 채 동력만 바꾸면 더 빨라지긴 하지만, 자동차는 아니다. 자동차를 설계하려면 질문 자체가 달라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일 = 지식 + 방식

    이 프레임에서 출발하자.

    모든 일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지식 —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그리고 방식 — 그걸 실제로 실행하는 것. 지금까지 둘 다 사람이 했다. 도메인 전문성도 사람, 실행도 사람. SOP를 만들어서 실행의 편차를 줄이긴 했지만, SOP를 실행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AI가 바꾸는 건 이 후반부다. SOP가 명확한 실행은 AI agent가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에게 남는 건 무엇인가?

    방식을 한 단계 더 쪼개면 답이 보인다.

    구분설명AI가 할 수 있는가?
    방식 — 반복SOP화 가능한 프로세스 실행Yes. AI agent의 영역
    방식 — 판단예외 처리, 의사결정, 설계부분적. AI가 보조하되 사람이 최종
    방식 — 관계1:1, 코칭, 협상, 신뢰 구축No.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식 자체 — 도메인 전문성, 맥락, 경험에서 오는 판단 — 이건 여전히 사람의 것이다.

    핵심은 이거다: 각 역할에서 “방식-반복”을 빼면 뭐가 남는가? 그 남는 것이 그 사람의 진짜 가치다.


    반복을 빼면 진짜가 보인다

    구체적으로 보자.

    HR 담당자의 업무를 해체해보면 — 급여 계산, 연말정산 처리, 인사 데이터 관리. 이건 전부 “방식-반복”이다. AI agent가 급여대장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이상치만 사람이 승인하면 된다. 온보딩도 체크리스트와 계정 세팅은 AI가 하고, 사람은 새로운 동료와의 관계 형성에 집중한다.

    그러면 뭐가 남는가? 매니저 육성, 조직 문화 설계, 평가 체계 구축. 이건 방식-판단과 방식-관계의 영역이다. 방식-반복을 빼면, HR 담당자는 “급여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 설계자”가 된다. 사실 원래부터 그게 본질이었는데, 반복 업무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리크루터도 마찬가지다. 소싱, 스크리닝, 인터뷰 코디네이션, 파이프라인 관리 — 전부 자동화 가능하다. 남는 건? 채용 기준 설계, 채용 매니저와의 조율, 후보자 클로징. 인재 전략가의 일이다.

    재무 담당자는 어떤가. 전표 처리, 월 결산, Billing, 데이터 취합 — AI agent의 몫이다. 남는 건 캐시 플로우 시나리오 설계, 전략적 예산 배분, 경영진에게 숫자 너머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 재무 전략가.

    패턴이 보이는가? 방식-반복을 빼면, 모든 역할이 한 단계 올라간다. 실행자에서 설계자로. 처리자에서 전략가로. AI가 “How”를 가져가면, 사람에게 “What”과 “Why”가 남는다.


    두 가지 전환 모델

    이걸 실제 조직에 적용하면 두 가지 경로가 있다.

    모델 A: 도메인 전문가 + Agent Fleet

    급진적 접근. 기능별 팀을 해체하고, 각 도메인의 전문가 한 명이 AI agent fleet을 관장하는 구조.

    HR팀 3명이 아니라, People Architect 1명 + AI agent들. 리크루팅팀 5명이 아니라, Talent Strategist 2명 + AI agent들. 각 사람이 “실행자”가 아니라 “설계자+감독자”가 된다.

    모델 B: 레이어 전환

    점진적 접근. 기존 팀 구조는 유지하되, 횡단 AI 레이어를 깐다. 기존 실행 인력이 점진적으로 “AI 관리자”로 역할을 전환한다. AI agent의 output을 검증하고, 예외를 처리하고, prompt를 설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모델 A로 수렴한다.

    어느 쪽이든 도착점은 같다. 다만 모델 B가 한 가지를 더 관리한다 — 사람의 전환.


    구조보다 어려운 세 가지 질문

    솔직히 말하면 위의 구조 재편은 쉬운 부분이다. 진짜 어려운 건 구조 너머에 있다.

    1. 채용의 역설

    연 100명을 뽑기 위해 리크루터 5명이 필요하다. AI-native로 소싱과 스크리닝이 자동화되면, 리크루터 2명이 100명을 더 잘 뽑을 수 있다. 하지만 잠깐 — AI-native 조직이면 100명이 필요한가? 다른 팀도 인원이 줄면 채용 수요 자체가 줄어든다.

    채용 자동화가 채용 수요를 줄이고, 줄어든 수요가 다시 채용팀 규모를 줄인다. 자기참조적 축소. 이걸 위기로 볼 수도 있고, 해방으로 볼 수도 있다. 적은 인원으로 더 정교한 채용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나쁜 게 아니다.

    2. 정체성 위협

    이게 진짜 장벽이다.

    3년간 급여 처리의 전문가로 일한 사람에게 “이제 AI가 급여를 처리합니다”라고 하면, 그건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 이유의 위협이다. AI 도입에 대한 저항은 기술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게 아니다. 내가 쌓아온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

    그래서 AI-native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는 시스템 아키텍처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다. 전환 경로가 없는 AI 도입은 조직 파괴다. 급여 전문가가 조직 설계자로 가는 경로, 소싱 담당자가 인재 전략가로 가는 경로 — 이걸 먼저 그려야 한다.

    3. “팀”이라는 단위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팀”이라는 조직 단위 — 이것도 재검토 대상이다.

    현재 조직은 기능별로 팀이 나뉜다. HR팀, 재무팀, 법무팀. AI-native에서는 프로세스별 agent + 도메인별 사람이 더 자연스럽다. “HR팀”이 아니라 “People 도메인을 책임지는 한 사람 + 그가 감독하는 agent fleet”이 하나의 단위가 된다.

    이건 조직도의 기본 단위가 바뀌는 것이다. 작지 않은 변화다.


    첫 번째 질문을 바꿔라

    AI 시대의 조직 설계는 결국 “일을 어떻게 해체하느냐”에서 시작한다.

    지식과 방식을 분리하고, 방식을 반복·판단·관계로 쪼개고, 반복을 AI에게 넘기면 — 사람에게 남는 것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 윤곽이 새로운 조직의 설계도다.

    “AI를 어디에 쓰지?”라고 묻는 한, 마차에 엔진을 다는 것을 넘어서기 어렵다. 자동차를 설계하려면 질문이 달라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조직만이 AI-native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답 속에는 반드시 — 구조 너머에서 —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이 함께 있어야 한다.

  • 위대한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희소합니다 — AI 시대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이 업계에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다 집어삼킨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실제로 몇 주 만에 SaaS 시가총액이 수천억 달러 증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ICONIQ에서 발행한 글(A Coming Age of Reason: Evolutionary Innovation and the New Layers of Agentic Software)을 읽으면서, 흐릿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정리되는 경험을 했어요.

    글의 출발점은 역사입니다. 메인프레임에서 클라이언트-서버로, 다시 클라우드로 — 소프트웨어의 모든 플랫폼 전환은 대멸종이 아니라 참여의 확장이었다는 거예요. Siebel이 사라진 건 CRM이 필요 없어져서가 아니라 Salesforce가 클라우드 위에서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죠. 레거시 모니터링은 Datadog에게, 온프레미스 데이터 웨어하우스는 Snowflake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카테고리는 죽지 않았어요. 재발명됐을 뿐.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그 다음 전환입니다. AI Agent 시대에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하는 주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요. Agent는 온보딩 시간이 필요 없고, 시스템과 언어를 넘나들며, 24시간 작동합니다. 클라우드 전환조차 겸손해 보일 정도의 participation explosion이 시작되고 있어요.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AI로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되면, 평범한 제품의 설 자리가 사라져요. 하지만 동시에, 위대한 제품의 프리미엄은 역사상 가장 커집니다. 글에서는 이걸 “위대한 분류(Great Sorting)“이라 부르는데, 저는 이게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속도는 AI가 만들어주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조각들을 하나의 훌륭한 제품으로 엮어내는 건 여전히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니까요.

    특히 와닿은 건 산호(Coral)-조류(Algae)의 비유입니다. 수년간 축적된 도메인 데이터와 워크플로우가 산호(Coral)처럼 기반을 이루고, AI Agent가 그 위에서 조류(Algae)처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구조. 핵심은 이겁니다 — Agent가 Data Context Layer를 하루아침에 만드는 건 불가능하고, 반대로 Data Context Layer가 최고 수준의 Agent를 만드는 것도 전혀 다른 역량이라는 것. 둘 사이의 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에요.

    채널톡에서 이걸 매일 체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년간 쌓아온 수십만 고객사의 상담 데이터, CRM 컨텍스트, 운영 워크플로우 — 이게 산호예요. 기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가 워크플로우를 표준화해서 효율을 줬지만 기업들을 비슷하게 만들었다면, AI 에이전트 ALF는 그 구조적 안정성 위에서 각 비즈니스의 맥락에 맞게 유연하게 작동합니다. 이 데이터 없이는 복제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에요.

    AI 시대에 소프트웨어가 죽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소프트웨어가 죽는 겁니다. 그리고 그 sorting의 기준은 결국, 대체 불가능한 데이터 위에 얼마나 뛰어난 AI 경험을 올릴 수 있느냐가 될 거예요. 채널톡에서는 다음 세대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위대한 제품을 “Future Classic Product”라고 불러왔습니다. AI 시대에도 이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위대한 제품은 여전히 희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