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l Engineer와 Legal Engineering, 그게 대체 뭔가요

LinkedIn에서 자꾸 보이는 그 직함

요즘 LinkedIn 피드에서 변호사 출신인데 Legal Engineer라는 직함으로 이직하는 경우를 부쩍 자주 봅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Harvey, Legora, Sirion, Crosby 같은 회사들이 동시에 같은 직함으로 사람을 뽑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a16z에서 Growth Marketing Partner로 일하는 Tom Hollands가 올해 1월에 쓴 글을 봤습니다. 제목은 “Forward-deployed Job Titles”(의역하면 “현장에 전개된 직함들”). 그 글에서 Hollands는 직함이라는 게 단순한 명함의 문구가 아니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흥미로운 개념은 “title arbitrage”(직함 차익거래) 입니다.

2011년에 Palantir가 그동안 “solutions engineer”, “integration engineer”로 부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Forward Deployed Engineer”(일명 FDE)라는 새 직함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내에서는 그들을 “Delta”(Delta Force에서 따온 별명)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들렸지만 결과적으로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동안 “고객 응대하는 보조 엔지니어”로 저평가받던 역할이 갑자기 회사의 핵심 인재로 격상됐기 때문입니다. 위 글에서 Hollands가 “title arbitrage”라고 부른 게 이런 현상입니다. 새 직함을 만드는 건 단순히 명함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새로 등장한 권력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는 일이라는 것. 원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Title arbitrage means creating new roles to signify new powers that are emerging within the organization, and therefore, new capabilities of the organization itself.” (직함 차익거래란, 조직 안에서 새로 등장하고 있는 권력을, 따라서 조직 자체의 새로운 역량을 가리키기 위해 새로운 역할을 만드는 일이다.)

Hollands는 글에서 “Legal Engineer”도 같은 흐름이라고 봤습니다. AI를 일찍 받아들인 변호사들에게 새 정체성을 부여하는 직함이라는 진단입니다.

Hollands의 진단에서 영감을 받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Legal Engineer가 정확히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고, 왜 지금 갑자기 이 이름이 떠오르고 있는지.


17년 전에 이미 예언된 직업

사실 Legal Engineer라는 말 자체는 꽤 오래됐습니다. 영국 옥스퍼드의 법학자 Richard Susskind가 2008년에 낸 책 The End of Lawyers? 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라고 여러 자료가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용한 정확한 표현은 “legal knowledge engineer”였습니다.

여담이지만, The End of Lawyers? 라는 제목이 자극적이라 한국에서는 “변호사의 종말?” 정도로 옮겨질 법한데, Susskind 본인은 평생 “변호사가 사라진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가 말한 건 변호사가 지금 하는 일 중 일부가 다른 형태로 재편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 제목의 물음표가 핵심입니다.

Susskind의 아이디어는 단순했습니다. 변호사의 일은 그동안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brain work으로 여겨졌지만, 사실 분해해보면 상당 부분이 시스템화·표준화·디지털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 분해 작업을 할 사람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 그게 legal knowledge engineer였습니다.

이 개념이 진짜로 직업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에 Legal Operations(legal ops)라는 직군이 미국 대형 기업 법무팀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2010년대 후반에 CLM(Contract Lifecycle Management) 솔루션과 document automation 도구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의 수요가 슬슬 생겼습니다.

판이 진짜로 바뀐 건 2022년 말 GPT가 등장한 다음입니다.

Legora의 Alex Fortescue-Webb이 회사 블로그에 쓴 표현을 빌리면, GPT-3.5가 등장한 순간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It was immediately clear that the ability this technology had to work with language would be transformational for the legal profession.” (이 기술이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법조 직역을 transformational하게 바꿀 것이라는 점이 즉각 분명해졌다.)

그 이전의 legal tech 도구들은 변호사 업무 흐름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들어와 있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은 다릅니다. 변호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댈 수 있고, 그래서 도입 자체가 워크플로우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Susskind가 17년 전에 그렸던 그림이, 갑자기 시장이 필요로 하는 직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Legal Engineer는 정확히 누구인가

가장 깔끔한 정의 하나를 들고 와봤습니다. 미국의 legal tech 미디어 CaseFox의 표현입니다.

“Together, the lawyer sets the legal judgment, and the legal engineer makes that judgment run at scale.” (변호사가 legal judgment를 정하면, legal engineer는 그 judgment가 scale 위에서 작동하게 만든다.)

이 한 문장이 본질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Legal engineer는 변호사를 대체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호사의 판단이 시스템 위에서 반복적으로, 정확하게, 빠르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면 이런 일들을 합니다: 계약서 검토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하고, CLM 같은 도구를 회사에 맞게 설정하고, 법률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형태로 정제하고, 변호사들이 그 도구를 실제로 쓰도록 onboarding하고 트레이닝합니다. 어떤 사람은 코드를 직접 짜고, 어떤 사람은 low-code 툴로 워크플로우를 짜고, 어떤 사람은 AI에게 어떤 프롬프트를 줄지 설계합니다.

영국 로펌 Osborne Clarke에서 일하는 Fiona Boag는 자기 일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I see my job as a translator between two fiefdoms. It is not about seeing an issue in isolation, but being able to contextualise to help broach the gap.” (내 일은 두 영토 사이의 번역가다. 문제를 따로 떼어 보는 게 아니라, 양쪽의 맥락을 읽고 그 틈을 메우는 일이다.)

법조계와 기술 영역, 두 영토가 따로 굴러가고 있고, 그 사이에서 양쪽 언어를 다 알아듣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legal engineer가 어느 한쪽 출신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출신이 기술을 익혀서 가는 길도 있고, 엔지니어가 법무 도메인을 익혀서 가는 길도 있습니다. 시장은 양쪽을 다 받고 있습니다.


세 회사가 보여주는 세 가지 모습

Legal engineering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회사를 보면 가장 빠릅니다. 세 곳을 골랐습니다.

Harvey, 변호사 출신을 Legal Engineer로 다시 정의한 회사

Harvey는 미국의 legal AI 회사 중 가장 큰 곳 중 하나입니다. 회사 발표 기준으로 1,000개 이상의 고객사, 60개국, AmLaw 100(미국 매출 상위 100대 로펌) 중 절반 이상이 도입했다고 합니다.

Harvey의 채용공고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Legal Engineer”라는 직군을 모집하는데, 자격 요건이 — top-tier 로펌이나 인하우스에서 일한 변호사입니다. 코딩 능력이 아니라 변호사 경력이 핵심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 Harvey 채용공고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Similar to the way Solutions Architects secure the ‘technical win’ in the sales process, Legal Engineers secure the ‘legal win’ by performing in-depth customer discovery and education on Harvey’s solutions through targeted meetings and demos that resonate with the customer’s day-to-day workflows specific to their legal practice area.” (Solutions Architect가 영업 과정에서 ‘technical win’을 확보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Legal Engineer는 고객의 실제 업무 흐름에 닿는 미팅과 데모를 통해 깊이 있는 발견과 교육을 수행함으로써 ‘legal win’을 확보한다.)

즉 고객사 변호사들과 직접 만나서, “이 회사의 어떤 워크플로우에 우리 AI를 어떻게 끼워넣어야 진짜로 도움이 될지”를 함께 설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결국 그 변호사들의 일을 본인이 직접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Harvey는 변호사 출신만 뽑습니다.

Harvey의 모델이 한국 변호사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봅니다. 변호사 경력 그 자체가 새로운 직업의 자격 요건이 될 수 있다는 것. 코딩을 못 해도, 시스템 설계 경험이 없어도, 변호사로서 진지하게 일해본 적이 있다면 그 경험 자체가 자산이 됩니다. Harvey는 거기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Crosby, 로펌 자체를 다시 만든 회사

다음은 Crosby라는 회사입니다. 미국에 작년에 등장한 회사인데, 일하는 방식이 색다릅니다.

첫째, Crosby는 그냥 SaaS 회사가 아니라 로펌입니다.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등록한 진짜 법무법인입니다. Crosby Legal Inc.라는 소프트웨어 회사 옆에 Crosby Legal PLLC라는 로펌이 따로 있고, 둘이 같이 굴러갑니다.

둘째, 사무실에 들어가면 변호사 책상과 엔지니어 책상이 번갈아 놓여 있다고 합니다. 한 명이 어떤 조항을 보면서 막히면 옆에 엔지니어가 바로 듣고, 그날 안에 그걸 처리하는 작은 기능 하나가 추가되는 식입니다.

셋째, 가격이 시간당이 아닙니다. 계약서 한 건당 정해진 금액(약 400달러)을 받습니다. Billable hour가 없습니다. 그리고 계약서 한 건 검토에 걸리는 중간값이 58분이라고 합니다. 3주에 1,000건씩 처리한다고 합니다.

공동창업자가 두 명입니다. Ryan Daniels는 변호사 출신으로 Cooley에서 일하다가 Stanford Law에서 legal AI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John Sarihan은 Ramp(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핀테크 중 하나)의 초기 엔지니어였습니다. 변호사 한 명, 엔지니어 한 명. 이 조합이 만들어낸 것이 위 풍경입니다. Sequoia가 작년에 시드를 리드했고, 올해 가을 Series A로 2,000만 달러를 더 받았습니다.

Crosby가 다른 legal AI 회사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은 “로펌에 파는 SaaS”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신 자기들이 직접 로펌이 됐습니다.

이 모델이 흥미로운 건, 가격 구조까지 같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시간당 청구 대신 계약서 한 건당 고정가. 시간을 많이 써야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빨리 끝낼수록 더 많은 건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AI를 도입할 인센티브 자체가 가격 모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로펌의 시간당 청구가 왜 변화에 저항적인지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변호사 한 명이 1시간 걸리던 일을 AI로 10분 만에 끝내면, 시간당 청구 모델에서는 매출이 1/6로 줄어듭니다. 그러면 도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Crosby는 이 구조를 통째로 바꿔버렸습니다. 빠를수록 돈을 더 번다.

고객 명단을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Cursor, Clay, UnifyGTM. 요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세일즈 스타트업들입니다. 이 회사들은 영업이 잘 되니까 계약서가 폭발적으로 들어오는데, 전통적인 로펌에 맡기면 며칠씩 걸려서 결국 매출 인식이 늦어집니다. Crosby는 그 병목을 한 시간 안에 풀어주는 회사입니다.

LegalOn, 일본의 변호사 두 명이 만든 글로벌 회사

마지막으로 일본의 LegalOn을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reference이기 때문에 좀 자세히 봅니다.

LegalOn의 창업자는 Nozomu TsunodaMasataka Ogasawara 두 명입니다. 둘 다 일본의 기업법무 변호사 출신입니다. 2017년 도쿄에서 LegalForce라는 이름으로 창업했고, 2022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LegalOn으로 리브랜딩했습니다.

이 회사가 보여준 성과는 솔직히 좀 놀랍습니다.

  • 2025년 7월: Series E로 5,000만 달러 추가 조달, 누적 펀딩 2억 달러 이상. 리드 투자자는 Goldman Sachs Growth Equity.
  • 같은 시점에 OpenAI와 직접 전략적 협약 — 양사 엔지니어가 같이 일하면서 차세대 legal AI agent를 만들기로.
  • 2025년 10월: ARR(연간 반복 매출) ¥10B(약 670억 원) 돌파. 회사 발표 기준 일본에서 창업한 AI 회사 중 최단기간(6.5년) 도달.
  • 7,000개 이상의 조직 사용. 일본 상장사의 30% 이상, 일본 Fortune 500의 87%가 도입(이 수치는 회사 자체 발표라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번 멈춰서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습니다. 변호사 두 명이 만든 회사가 OpenAI와 동등한 협력 파트너로 인정받고, Goldman Sachs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는 것.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가진 변호사로서의 도메인 깊이가 일반적인 AI 회사가 따라잡기 어려운 자산이었기 때문입니다. LegalOn의 차별점은 변호사들이 직접 만든 50개 이상의 검토 playbook이고, 이건 generic한 LLM이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입니다.

LegalOn의 Global CEO인 Daniel Lewis는 TechCrunch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state of the technology isn’t there yet, and replacing lawyers isn’t even our vision. Lawyers are still in the driver’s seat. The things AI can’t do perfectly today are, by definition, the things only people can do. And the lawyers who lean into that responsibility — to oversee, to edit, to exercise judgment — are the ones seeing the most extraordinary leverage from AI right now.” (기술 수준이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고, 변호사를 대체하는 건 우리의 비전조차 아니다. 변호사들은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오늘날 AI가 완벽하게 할 수 없는 일은, 정의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에 — 감독하고, 편집하고, 판단을 내리는 — 기꺼이 뛰어드는 변호사들이 지금 AI로부터 가장 비범한 leverage를 얻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인터뷰를 처음 읽었을 때 좀 안심이 됐습니다. 이 사람들이 변호사를 잘 알고 있고, 변호사를 적으로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여기까지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이런 게 있나.

답은 “있는데, 이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도가 맞을 것 같습니다.

회사 단위로 보면 이미 꽤 진행되고 있습니다. 로톡을 서비스하는 로앤컴퍼니가 2025년 7월에 500억 원 규모의 Series C-2를 받았는데, 국내 리걸테크 단일 라운드 사상 최고액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슈퍼로이어라는 AI 서비스는 제14회 변호사시험 선택형 문항에서 합격자 상위 5%에 해당하는 점수(123문항 정답, 합격선은 96문항)를 기록했습니다. 이건 회사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비영어권 AI가 자국어로 변호사시험 객관식 합격선을 넘은 첫 사례입니다.

BHSN은 변호사 출신 임정근 대표가 창업한 회사인데, 2025년 3월 Series B 100억 원에 이어 7월에는 삼성벤처투자가 전략적 투자에 참여했습니다. 비즈니스 리걸 AI 솔루션 ‘앨리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엘박스는 카카오브레인 LLM팀 리더 출신을 R&D 리더로 영입했고, 더존비즈온 같은 기존 SaaS 강자들도 리걸테크 에디션을 출시하며 진입했습니다.

회사들이 자라고 있다는 건 분명한데, 흥미로운 지점은 이 회사들의 채용공고에 “Legal Engineer”라는 직군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있습니다. 변호사 출신으로 SaaS 영업팀장을 맡은 사람도 있고, LLM 엔지니어 출신 R&D 리더도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사실상 legal engineer가 하는 일을 일부씩 하고 있는데, 직군명은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게 글 도입부에서 짚었던 “직함이 없으면 그 일에 사회적 정당성이 따라오기 어렵다”는 지점과 정확히 닿아 있습니다. 일본 LegalOn의 창업자들은 본인들이 변호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자산으로 삼아 글로벌 회사를 만들었는데, 한국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 경로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직함이 따라오지 않으면 시장이 그 직업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러면 보상도, 커리어 경로도 명확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어떨까

지금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하는 일을 한번 들여다보면 거기에 두 종류가 섞여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judgment”. 사실관계를 종합하고, 위험을 판단하고, 의뢰인에게 어떻게 가는 게 맞는지를 결정하는 일. 다른 하나는 그 judgment를 문서로, 절차로, 결과물로 옮기는 일들.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이 AI에게 점점 옮겨가고 있다는 건 이미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게 변호사라는 직업을 위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에서 인용한 Daniel Lewis의 말처럼 judgment는 사람만 할 수 있고, 그 책임을 지는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다만 judgment와 typing이 섞여 있던 일이 분리되면서, judgment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과 그 judgment가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직업의 지형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두 길 다 매력적인 길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각도에서 같은 풍경이 보입니다. 회사의 법무 비용을 시간당으로 받고 있는지, 결과물 단위로 받고 있는지. Crosby 같은 모델이 한국에 들어오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런 옵션이 시장에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협상의 풍경을 바꿉니다. 사내 법무팀의 일 중에 “judgment”는 얼마이고 “처리”는 얼마인지를 한 번 구분해보면, 처리 영역에 도구를 도입했을 때 judgment 영역에 더 집중할 시간이 생기고, 그게 결국 사업의 의사결정 속도로 이어집니다.

저는 변호사로 10년 이상 일했고 지금은 스타트업 COO로서 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영역이 섞여 있는 풍경에 익숙합니다. 그 경험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legal engineering은 새로운 직업명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사고방식에 가깝습니다. 법조 일을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 워크플로우로 보는 시각, 그리고 그 위에서 사람의 판단이 어디에 자리해야 하는지를 다시 그리는 시각. 이름은 아직 한국에 정착되지 않았지만, 일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5년쯤 뒤에 다시 현재를 돌아보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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