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남다르게 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말랑말랑 생각법, ‘그것’을 ‘그것’이라 부르지 않아야 해

1/ 진흙 반죽처럼 말랑말랑해질 때가 있다. 온몸이 눈물로 절여졌을 때, 뭔가가 망가져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올 때, 나도 모르게 내 약점이 흘러나올 때, 그런 때를 자주 만난다면(또는 만든다면) 우리는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진흙에 입김을 불어넣자 숨 쉬는 사람이 탄생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8-9)

2/ 자신을 드러내는 건 모험이야. 잃는 것과 얻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될 뿐 아니라 죽음과 생명의 기운을 동시에 얻게 되니까. 소심하고 지질한 사람에겐 죽을 것 같은 일이겠지만 절대 죽지는 않아. 등골에 흥미진진한 액체가 흐르고 쪽팔려 곁땀만 날 뿐이지. (19)

3/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의 속은 점점 퇴색해. 고유의 생각과 이유가 잊히지. 반면, 문화의 겉은 굳건한 스타일로 명맥을 유지해. 인간은 겉에 매료되고 영향을 받고 따라 하는 존재거든. 그런데 가끔 껍데기를 깨고 본질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형식에 도전을 내밀며 우리를 놀라게 하지. (69)

모든 인간에게 창의성이라는 씨앗이 선물로 주어져 있다.

4/ 포트폴리오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어. 그 문장에는 나만의 설명, 나만의 새 이름, 나만의 정의가 담겨 있지. 똑떨어지는 단어는 아닐지언정 ‘—한 그 무엇’이라는 장엄한 말이야. (…) 포트폴리오라는 이름을 몰라야, 아니, 잊어버려야 새롭게 네이밍 할 수 있어. ‘으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세상 모든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진다. 지워진다. 지워진다. 내 눈은 밝아진다. 밝아진다. 밝아진다. (126-127)

5/ 내가 잘 모르는 것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동료를 붙들고 말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는 왜 그토록 만들어지기 어려울까? 참 신기해. 내 약점을 끊임없이 감추고 상대를 방어하며 지내야 하는 조직은 누가 처음에 만들고 설계했으며, 그런 조직의 공기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소프트웨어는 왜 단번에 바꾸기 어려울까? / 이유는 간단해. 정말 단순해. 우두머리 때문이야. 그 조직을 처음 잉태하고 키운 조직의 리더라 불리는 우두머리 때문이지. 우두머리의 철학, 사고방식, 꿈, 야망, 욕망, 세계관, 습관, 주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이 합쳐져서 조직 전체에 뿌려지는 씨앗이 되는 것 같아. (135)

6/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 사이에서 ‘그동안 해왔던 관습을 깨고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보려는 실험과 도전을 시시때때로 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금세 나만의 숭고한 에너지를 다 잃어버리고 말 거야. 상대가 원하는 것만 척척 해내는 일도 대단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꼭 있거든. (바로 당신?!) (147-148)

(c) ELLE DECOR

7/ 사람들이 의자라는 단어밖에 모르기 때문에 의자라는 프레임으로 새로운 것을 부를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프레임이야. 알고 있는 단어에 묶여서 생각하고 그 단어로 부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 비밀을 아는 것 같다. “의자를 창의적으로 잘 만들었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사실은 의자 만든 거 아니지롱. 앉는 것을 만들었을 뿐이지롱’ 하면서 자신만의 정의를 떠올리며 ‘키득키득’ 웃지.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익숙한 단어가 있기 때문에 굳이 자신만의 정의를 말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 무언가를 남다르게 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어. 바로 그것을 그것이라고 부르지 않는 습관을 기르는 거야. (162-163)

8/ 한 명의 훌륭한 크리에이터가 다수의 제너럴리스트를 계몽하고 이끌면서 창의 조직을 만들 수도 있지만, 다수의 제너럴리스트가 모여 서로 기운을 북돋우면서 창의 조직을 만들 수도 있어. 다만 끊임없이 규칙을 지키고 보살펴야 겨우 창의 조직을 유지할 수 있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무반응으로 먹먹한 공기를 만든다거나, 여럿이 보는 앞에서 누군가를 꼭 집어 훈계하면 창의 공기로 가득했던 숲은 가루처럼 바스러지거든. 내가 많이 망가뜨려서 잘 알아. (169)

창의 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9가지 팁

  1. 여럿이 앉을 때 위아래 위계가 절대 드러나지 않는 공간을 찾는다. 찾을 수 없다면 만든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약간 뒤죽박죽 어수선한 공간이 좋다.
  2. ‘뭐 이리 어색해요, 이야기 좀 해봐요’라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도록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색함은 더 신나서 만개하기 때문이다. 사회자를 정해 철저히 준비하거나 순발력 있는 사람을 리더로 세운다. 대화의 흐름이 원활히 흘러가도록 이끄는 누군가(모더레이터, 퍼실리테이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없는 조직은 슬픈 조직이다.
  3. 쓸데없고 바보 같은 말, 말도 안 되는 장난기 섞인 말 들이 오가게 하라. 그런 말들은 웃음을 불러일으키고 공기를 순진하게 바꾼다.
  4. 비언어적인 소통을 자주 할수록 풍성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말 못 하는 사람에겐 종이와 펜을 주고,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망토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려준다. 손을 잡아주고 옆에서 붙어 앉아서 ‘그래, 그래, 맞아’ 하고 맞장구치며 끄덕이는 걸 반복한다.
  5. 토론할 때는 미리 제비뽑기해서 무작위로 찬성팀과 반대팀을 만든다.
  6. 퇴근할 때 인사하지 않는다. 일을 다 끝내면 기체처럼 증발하자.
  7. 생각을 눈에 보이게끔 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 커다란 보드, 칠판, 낙서할 수 있는 유리창 같은 것들을 주변에 놓아두고 수시로 뭐든 그리고 붙이고 떼고 누구나 그것을 건드릴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꾸민다. 뭔가 계속 바뀌는 것이 보여지고 느껴지게 주변 환경을 만드는 게 좋다. 일부러라도 누군가가 계속 지우고 붙이고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오늘 뜯은 과자 봉지라도 어딘가에 붙여놓자.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도 안 건드리고 결국, 생각도 멈춘다.
  8. ‘보고’ 말고 ‘공유’ 하자.
  9. 집단 창작 시스템은 알게 모르게 꽤 많은 공이 들어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티가 잘 나지 않으면서 노력을 멈추면 바로 사그라지는 희한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멈춘 흐름을 다시 활성화하는 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가서 금방 포기하고 낙담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이 책, 170-174.

9/ 리더는 회의의 중심을 잘 잡고 서로 막힘이 없도록 계속해서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해. 어쩌면 그게 다인 것 같아. (182)

저자: 한명수

10/ 손가락 끝만 보다가 손가락 저쪽에 예쁜 달이 뜬 걸 보니 얼마나 행복했겠어. 그런 달 보는 이야기를 아무도 해준 적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을까? 우리 삶 자체가 이유를 묻지 않아도 잘 사는 공기로 꽉 차 있다는 게 문제일까? 가이드와 규칙은 시간이 지나면 끄트머리만 남고, 그것을 만든 이유와 맥락은 증발하는 게 세상 순리여서 그런 걸까? / 어쩄든 가이드나 규칙은 단순해야 좋아. 지켜야 하는 항목이 많을수록 자율성이 확실히 줄어들기 때문이야. (…) / 자율(자유 아님)과 원칙이 균형 잡힌 절충점은 없을까? (258-259)

스스로 규칙을 잘 지키면서,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를 찾아보게 하면서, 더 나은 규칙을 만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가이드 만드는 법

  1. 가이드 첫 페이지에 ‘가이드의 한계점’을 고백하는 거야. 완벽하지 않음을 스스로 밝히면 겸손한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최선을 다해 만들었지만 불완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당신의 역할이 필요함을 요청하는 거지. 읽는 이의 입장에선 지시사항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2. 가이드 마지막 페이지에 ‘가이드의 규칙’을 당신이 깨주길 원한다고 용기를 북돋는 멘트를 넣어주면 아주 좋지. 실제로 내가 일하는 영역에서 여러 제작 가이드를 만들 때 이런 메세지를 넣어. “이 가이드를 보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당신을 응원한다. 여기 있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깨는 것이 당신의 목표가 되기를 바란다. 규칙이 깨져 더 멋진 결과물이 나온다면 당신을 본받아 이 가이드를 업데이트하고 싶다”라는 투의 글을 잘 다듬어 넣어달라고 가이드 담당자에게 꼭부탁해.
이 책, 260-261.

한명수, 말랑말랑 생각법, 김영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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