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테니스 레슨을 받는 코트 옆에 우레탄 트랙이 하나 있다. 배수지 위에 조성된 근린체육시설이다. 트랙 한 바퀴에 320m 정도 된다.
오늘 레슨 시작 전에 시간이 남아서 워밍업 삼아 2~3km 달렸다. 종아리 부상 이후 첫 러닝이었다. 페이스는 6’30’’/km 수준으로 가볍게 뛰었다.
트랙을 돌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앞지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당장은 그 빠르기에 기가 눌린다.
그러나 대개는 얼마 안 가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게 빠르게 치고 나갔지만 숨을 고르느라 멈춰 서거나 다시 느리게 걷기 때문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떠올랐다.
이 우화에서 달리기 경주 중에 감히 낮잠을 잔 토끼는 그 안일함과 자만심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일시적인 우위에 안주했다간 금새 후발 주자에게 따라잡힌다는 살벌한 경고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토끼는 왜 경주 중에 잠을 잤을까.
빨리 달린 만큼 빨리 지쳐서 그랬던 게 아닐까. 느릿느릿 기어오는 거북이를 무시하며 단잠을 청한 것이 아니라 경주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해서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부족한 체력에 페이스 조절 실패… 그런 토끼를 안일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점에서 한화이글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 이지풍씨가 쓴 《뛰지 마라, 지친다》(한빛비즈, 2022)라는 제목의 책을 봤다. 제목부터 딱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이어서 바로 구입했다.

이 책에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없지만) 야구계에서 흔히 패배의 원인과 실패의 원인을 기본기 부족, 체력 부족, 투혼 부족으로 돌리는 문화에 대해 “너무 쉽게, 아주 게으르게 해결책을 찾으면 몸과 마음이 편한 만큼 나중에 더 큰 고통이 찾아올 것”이라고 점잖게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나 역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달리기든 공부든 일이든 무엇이든 지칠 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 모든 게 결국 장기 평균선으로 회귀할텐데 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의 장기 평균선을 우상향 시킬 수 있다는 근거와 확신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지칠 때까지 해도 좋다는 이야기다.
사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토끼가 안일했던 부분이 없지 않다. 상대인 거북이가 어떤 강점을 가졌는지 알아볼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장기인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경주 시합에 응했기 때문이다.
다시 달리기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적정한 거리를 적당한 페이스로 꾸준히 오래 멀리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지치면 안 된다. 즐거움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책을 읽는 과정은 아주 즐거웠다. 추천한다. (책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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