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사는 5년 뒤의 CEO를 키울 수 있다
Tech 기업의 People Leader들은 어떤 커리어 패스를 밟는지 조사하다가 한 사람의 LinkedIn에서 낯선 이력을 발견했다.
Francisco Partners Future Leaders Program at Stanford Graduate School of Business.
처음에는 Stanford GSB의 일반적인 최고경영자 과정인 줄 알았다. 찾아보니 달랐다. 개인이 지원하는 공개과정이 아니라, 기술기업 전문 사모펀드 Francisco Partners가 포트폴리오 기업의 차세대 리더를 선발해 Stanford GSB와 함께 운영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이었다.
투자사가 투자한 회사의 재무와 전략뿐 아니라, 그 회사에서 다음 세대를 이끌 사람까지 함께 키우고 있었다.
42개 회사에서 62명을 모았다
Francisco Partners의 공식 소개에 따르면 2025년 과정에는 42개 포트폴리오 기업에서 선발된 62명의 임원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1년간 이어지며 세 가지 주제를 다룬다.
- Leading the Business
- Leading Others
- Leading Self
시작은 Stanford 캠퍼스에서 진행하는 일주일간의 집중과정이다. 이후 Stanford 교수진의 수업과 Francisco Partners 운영팀의 실무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참가자들의 공개 기록을 보면 전략,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변화관리와 기업가치 창출을 배우고, 서로 다른 포트폴리오 기업의 리더들과 소규모 학습그룹을 만들어 실제 고민을 나눈다.
수료자에 따라 전체 기간을 9개월, 10개월 또는 1년으로 표현한다. 공개된 정규 교과과정이 아니므로 세부 구성은 cohort마다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며칠 강의를 듣고 수료증을 받는 과정은 아니다. 교육과 현업 적용, 동료 학습과 코칭을 장기간 묶었다.
Stanford라는 이름도 눈에 띄지만, 내게 더 흥미로웠던 것은 42개 회사에서 사람을 모았다는 점이다.
회사마다 비슷한 문제를 겪는 리더들이 있다. 처음 여러 명의 매니저를 관리하게 된 사람, 기술 전문가에서 경영진으로 올라선 사람, 인수 이후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 한 회사가 이들을 위해 수준 높은 장기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어렵다. 회사 안에서 비슷한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동료를 찾기도 쉽지 않다.
투자사는 할 수 있다.
포트폴리오를 가로질러 비슷한 단계의 CFO, People Leader, CTO와 사업책임자를 모을 수 있다. 한 회사의 시행착오를 다른 회사의 교재로 만들 수도 있다. 투자사가 가진 회사 목록이 리더들의 학습 네트워크가 되는 셈이다.
Partners Group은 사람을 직접 뽑는다
Francisco Partners가 포트폴리오 기업에서 이미 일하는 리더를 교육한다면, Partners Group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Private Markets Operator Development, PMOD는 MBA 졸업자나 5년에서 8년 이상의 경력자를 선발해 포트폴리오 기업의 미래 경영자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핵심은 교육이 아니다. Partners Group이 자기 브랜드로 인재를 채용하고, 이들을 여러 포트폴리오 기업에서 일하게 한다. 참가자는 CEO, 이사회와 고위 경영진 곁에서 실제 운영 과제를 수행하며 재무분석, 전략기획, 경영진 커뮤니케이션과 운영관리 역량을 쌓는다. Partners Group의 리더가 멘토링과 코칭도 제공한다.
기간은 더 놀랍다. PMOD는 사모투자의 일반적인 보유기간과 같은 5년에서 8년을 전제로 한다.
좋은 사람을 뽑아 몇 달 교육하고 돌려보내는 과정이 아니다. 여러 회사에서 실제 성과를 내게 하고, 투자기간 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언젠가 포트폴리오 기업의 고위 경영진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Partners Group의 문제의식도 현실적이다. 포트폴리오 기업의 C-level 한 명을 영입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아래에서 자라날 차세대 관리자층을 두껍게 만드는 일은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성된 CEO를 시장에서 찾는 데 그치지 않고, 5년 뒤 필요한 경영자를 미리 확보해 키운다.
PMOD가 찾는 사람의 조건에는 지적 호기심, 모호함 속에서 일하는 능력, 실행 편향, 감성지능, 리더십 잠재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포함된다. 완성된 직무 전문가보다 낯선 환경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사람을 움직여 결과를 만들 operator의 가능성을 보는 기준에 가깝다.
포트폴리오가 내부 인재시장이 된다
이 구조에서는 여러 포트폴리오 기업이 하나의 커리어 생태계가 된다.
한 회사에서 전략기획과 조직 전환을 경험한 사람이 다른 회사에서 해외 진출이나 인수 후 통합을 맡을 수 있다. 투자사는 여러 환경에서 그 사람의 성과를 관찰하고, 다음 역할을 설계하며, 더 큰 책임을 맡길 시점을 판단할 수 있다.
특정 회사의 투자기간이 끝나도 사람에 대한 학습은 투자사에 남는다. 한 회사에서 성장할 자리가 줄어든 좋은 인재를 다른 포트폴리오 기업의 더 큰 역할로 연결할 수도 있다.
투자사는 돈을 운용하는 곳인 동시에, 야심 있는 경영인재가 여러 기업을 경험하며 CEO와 이사회 수준으로 성장하는 커리어 플랫폼이 된다.
이 대목에서 질문이 달라진다. “포트폴리오 기업에 어떤 교육을 제공할까”가 아니다.
“포트폴리오 전체를 하나의 인재시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Blackstone은 회사 안의 경로를 만든다
Blackstone의 접근은 또 다르다. Career Pathways는 특정한 미래 CEO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더 넓은 인재풀에서 사람을 채용하고, 입사한 구성원이 중간관리자와 상위 직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실무도구를 제공한다.
학위 요건을 없앨 수 있는 직무를 찾고, 채용담당자에게 역량 중심 채용을 교육하며, 직무전환과 업스킬링, 멘토링과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Blackstone에 따르면 2020년 시작 이후 70개가 넘는 포트폴리오 기업이 참여했다.
세 사례는 대상도, 방법도 다르다.
Francisco Partners는 현직 차세대 임원을 모아 교육하고 연결한다. Blackstone은 포트폴리오 기업이 사람을 채용하고 성장시키는 시스템을 고친다. Partners Group은 미래 경영자를 직접 채용해 여러 회사에서 장기간 육성한다.
공통점은 하나다. 모두 인재를 비용이나 개별 회사의 HR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실행력과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투자 대상으로 본다.
한국에는 이런 투자자가 있을까
한국에도 대학과 경영기관이 운영하는 CEO 과정은 많다. 대기업에는 자체적인 임원교육과 핵심인재 육성 체계가 있다. 국내 PE와 VC도 포트폴리오 기업에 채용, 홍보, 영업, 재무관리와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바이아웃 PE는 운영 전문가를 투입하거나 경영진을 영입하기도 한다.
다만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국내 투자사가 여러 포트폴리오 기업의 유망 인재를 선발해 장기간 공동 육성하거나, 자기 브랜드로 미래 경영자를 채용해 여러 투자기업에서 성장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는 찾지 못했다. 공개되지 않은 내부 프로그램은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운영을 맡으며 좋은 리더 한 명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주 경험했다. 급한 자리가 생기면 채용부터 떠올린다. 지금 비어 있는 자리를 누가 채울지가 먼저다. 3년 뒤 이 조직을 이끌 사람을 어떻게 키울지는 중요하지만 좀처럼 긴급해지지 않는다.
개별 회사가 그 긴 호흡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투자사가 할 수 있다.
포트폴리오 기업의 차세대 CFO, People Leader, CTO와 사업책임자를 추천받아 cohort를 만들 수 있다. 현직 CEO와 Operating Partner가 멘토로 참여하고, 각 회사의 실제 경영 문제를 함께 다루게 할 수도 있다. 한 회사에서 역할을 마친 사람이 다른 포트폴리오 기업에서 다음 도전을 찾도록 연결하는 방법도 있다.
반드시 Stanford여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유명 대학의 수료증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일찍 발견하고 여러 회사의 경험과 기회를 연결하며 오랫동안 지켜보는 구조다.
기업가치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말은 너무 익숙하다. 그런데 투자 이후의 계획표에서 사람의 성장은 대체로 채용 인원이나 인건비 숫자로만 남는다.
투자사가 정말 포트폴리오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돕고 싶다면 이런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회사의 다음 세대 리더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FP는 학교를 만들었고, Partners Group은 경영자의 커리어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좋은 사례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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