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그로잉 업 – LG생활건강 멈춤 없는 성장의 원리⟫ (2019) 읽었다.
2005년 1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15년째 LG생활건강 최고경영자로서 매출, 영업이익, 주가 모든 숫자를 성장시킨 차석용 부회장의 경영능력은 경이롭다. 길어야 2-3년을 넘기기 어려운 게 (우리나라) 전문경영인(CEO)의 운명인데 말이다.
그러나 저 빛나는 성과와는 별개로 이 책은 조금 실망스럽다.
이 책을 펼치며 이른바 ‘차석용 매직’이 세밀하게 분석되어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좋은 결과는 이 결과를 초래한 모든 과정을 정당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냥 다 잘한 일이다. ‘이것도 잘 했고, 저것도 잘 했고… 그래서 이렇게 잘 되었다.’
그리고 차석용 부회장이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아무튼 그가 회계와 재무와 마케팅의 전문가라서 그렇다… 라는 식의 서술이 몇 번이나 반복된다. (물론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경영학의 외피를 쓴 기업홍보자료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가 LG생활건강에서 사외이사를 꽤 오랜 기간 했기 때문일까. 분석 대상과의 거리두기에 자주 실패한다.
급기야 에필로그에서는 임직원의 표현을 인용하여 차석용 부회장을 ‘반신반인’이라고 치켜세운다. 읽는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듣는 사람도 무안할 것 같은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참았을지…
회식, 골프(접대), 의전을 하지 않고, 오전 6시 출근, 점심은 사무실에서 혼자 먹고, 오후 4시 퇴근하여 번화가, 마트 등 소 비자 접점을 돌아다니다 일찍 귀가, 하루 7~8시간 푹 잔다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그와 비슷한 연령과 지위에서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 생활양식 만으로 그의 캐릭터와 포지션은 매우 희귀하고 가치 있다.
그런데 그 스토리는 이미 2017년 3월 조선비즈에서 기사화했고 그때 충분히 이슈가 되었다.
그때 나도 처음으로 ‘차석용’이라는 경영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보다 심도 있는 경영 이야기가 나오리라 기대했고, 저자의 전작인 ⟪배민다움⟫을 무척 재밌게 읽었던 터라 그 기대는 더욱 컸는데, 그게 충족되지 못해 아 쉽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약 1년 정도 임직원 인터뷰를 했다고 하는데 조사방법론의 한계인 듯 싶기도 하다.
외려 이 책의 엑기스는 맺음말 직전에 수록된 ⟨차석용 부회장과의 대화⟩이다.
특정 조직이나 파벌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사생활을 철저히 관리하고 ‘그레이프바인’(grapevine, 비공식 의사전달 통로)를 두지 않으려 하는 엄격함, OO상 받는 마케팅, 화려한 마케팅 말고 실제 매출을 올리는 마케팅을 하려는 실용성. 마지막으로, 똑똑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경영자가 되려는 진실된 마음 — 이건 정말 귀하다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