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업계에는 “AI가 소프트웨어를 다 집어삼킨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실제로 몇 주 만에 SaaS 시가총액이 수천억 달러 증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ICONIQ에서 발행한 글(A Coming Age of Reason: Evolutionary Innovation and the New Layers of Agentic Software)을 읽으면서, 흐릿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정리되는 경험을 했어요.
글의 출발점은 역사입니다. 메인프레임에서 클라이언트-서버로, 다시 클라우드로 — 소프트웨어의 모든 플랫폼 전환은 대멸종이 아니라 참여의 확장이었다는 거예요. Siebel이 사라진 건 CRM이 필요 없어져서가 아니라 Salesforce가 클라우드 위에서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죠. 레거시 모니터링은 Datadog에게, 온프레미스 데이터 웨어하우스는 Snowflake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카테고리는 죽지 않았어요. 재발명됐을 뿐.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그 다음 전환입니다. AI Agent 시대에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하는 주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요. Agent는 온보딩 시간이 필요 없고, 시스템과 언어를 넘나들며, 24시간 작동합니다. 클라우드 전환조차 겸손해 보일 정도의 participation explosion이 시작되고 있어요.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AI로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되면, 평범한 제품의 설 자리가 사라져요. 하지만 동시에, 위대한 제품의 프리미엄은 역사상 가장 커집니다. 글에서는 이걸 “위대한 분류(Great Sorting)“이라 부르는데, 저는 이게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속도는 AI가 만들어주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조각들을 하나의 훌륭한 제품으로 엮어내는 건 여전히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니까요.
특히 와닿은 건 산호(Coral)-조류(Algae)의 비유입니다. 수년간 축적된 도메인 데이터와 워크플로우가 산호(Coral)처럼 기반을 이루고, AI Agent가 그 위에서 조류(Algae)처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구조. 핵심은 이겁니다 — Agent가 Data Context Layer를 하루아침에 만드는 건 불가능하고, 반대로 Data Context Layer가 최고 수준의 Agent를 만드는 것도 전혀 다른 역량이라는 것. 둘 사이의 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에요.
채널톡에서 이걸 매일 체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년간 쌓아온 수십만 고객사의 상담 데이터, CRM 컨텍스트, 운영 워크플로우 — 이게 산호예요. 기존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가 워크플로우를 표준화해서 효율을 줬지만 기업들을 비슷하게 만들었다면, AI 에이전트 ALF는 그 구조적 안정성 위에서 각 비즈니스의 맥락에 맞게 유연하게 작동합니다. 이 데이터 없이는 복제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에요.
AI 시대에 소프트웨어가 죽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소프트웨어가 죽는 겁니다. 그리고 그 sorting의 기준은 결국, 대체 불가능한 데이터 위에 얼마나 뛰어난 AI 경험을 올릴 수 있느냐가 될 거예요. 채널톡에서는 다음 세대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위대한 제품을 “Future Classic Product”라고 불러왔습니다. AI 시대에도 이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위대한 제품은 여전히 희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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