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손기정평화마라톤 10km 코스를 달리고 왔습니다(기록: 1시간 5분 32초). 1시간 남짓 서울 잠실 도로 위를 달리면서 제가 느끼고 생각했던 걸 아래에 공유합니다.
사람들은 다 다른 자세로 달린다
달리기 코치들은 달리는 폼(자세)에 대한 강조를 무척 많이 합니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미 다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기만의 폼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도로에서 이론상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자세이지만, 무척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분을 보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이상한 자세라도 내 몸, 체형, 주법에 맞으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자세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꾸준히 달려왔다면 충분한 훈련도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달리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지요. 외려 훈련을 게을리 하면서 책 속에나 있는 이상적인 달리기 자세에 집착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속한 조직이나 회사가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모습과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옳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달리는 자세가 다르듯이 기업마다 조직마다 일 해 온 역사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엉성한 자세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 충실하게 달리고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달리고 있는 사람 모두가 러너는 아니다
저도 처음엔 달릴 수 있다면, 달리고 있다면 누구나 러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고 자기 자신을 미식가라고 지칭할 수 없듯이, 달리기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와 체계적인 훈련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러너라고 말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기록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가 아닙니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구하고 훈련하고 있는지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감히 러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지금의 저처럼 내킬 때 내키는 대로 뛰는 중이라면 스스로를 러너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달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달리는 모두가 러너는 아닙니다. 특정 업무를 하고 있다고 나 자신이 그 업무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화 로드맵을 갖고 자신만의 학습 계획과 피드백 루프를 가진 사람이 진짜 전문가 입니다.





10km 달리기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출발선에 서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이번 대회의 코스맵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평소에 훈련을 하지 않은 탓에 당일 컨디션이 어느 수준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고, 달리는 도중에도 지금 내가 오버 페이스인지 언더 페이스인지 판단도 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뛰어본 거리라는 이유로 가볍게만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허겁지겁 결승선에 들어오고 나서야 좀 더 준비해서 달리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정기적으로 하는 가벼운 미팅이라도 아젠다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큽니다. 회의 때 오프너를 준비하고 말고도 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줍니다. 사소한 일도 그게 일이라면 정성스럽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과감함과 더욱 중요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집착적인 포커스가 낫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내년 봄을 목표로 훈련을 재개하려 합니다. 다음 달리기 글은 그런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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